매일성경 | 사도행전 11장 19-30절 |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

2024. 5. 26. 11:21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11:19-30

    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날까지


    이방 땅에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음을 겸손하게 보고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음이 아무런 차별이 없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11:18). 그 후에 이방 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일이 기록됩니다. 그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베니게와 구브로

    스데반의 순교 후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 박해로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던 성도들은 흩어졌습니다. 성도들은 흩어지면서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간 곳은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입니다. 베니게는 이스라엘 북서쪽 해안 도시 두로 위쪽 지방을 뜻합니다. 베니게와 페니키아가 같은 말입니다. 페니키아는 상인들로 유명한 곳입니다. 베니게 서쪽, 지중해에 있는 섬이 구브로입니다.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그 섬에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섬을 키프러스(Cyprus)라고 부릅니다.

    안디옥

    안디옥은 지금으로하면 튀르키에에 속한 안타키아입니다. 베니게보다 더 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당시에는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는데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그 때 당시 인구가 50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수리아 지방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이 안디옥에 주재했습니다. 안디옥은 교통이 편리했습니다. 오론테스(Orontes) 강 안쪽에 도시가 있었고 실루시아(Seleucian)라는 항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선교여행할 때 이 항구를 이용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261쪽). 

     

    베니게, 구레네, 구브로, 안디옥, 다소

    주의 손이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사람들은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습니다(19절). 아직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했습니다(20절).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부에 있는 도시입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은 흩어졌던 유대인들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입니다(2:10). 이들은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했습니다(20절 하). 그러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21절). 여기서 "주(κύριος)"는 70인 역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여호와께서는 이미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할 것을 계획하신 분이십니다. 이 말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상 땅에 오신 여호와이십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262쪽).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사람들이 주 예수님의 뜻을 행하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결과 사역에 열매가 크게 맺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박해로 인해서 촉발된 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 고난을 받습니다. 고난을 받는 길에서 주의 손이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그 결과는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바나바를 파송함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서 복음 전도의 놀라운 열매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거기로 파송했습니다(22절). 바나바는 거기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것이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시기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은혜에 대한 마땅한 반응은 감사와 기쁨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시기하는 사람은 그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이용하는 사람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263). 

     

    바나바는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습니다(23절).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προσμένειν)라는 말은 현재, 능동태, 부정사로 쓰였습니다. 헬라어로 동사 현재형은 계속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있기를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바나바가 이 권면을 한 모든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여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주님으로 모시는 삶은 복음을 듣고 동의를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역자의 천성보다

    누가는 바나바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그 결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간 후에 큰 무리가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역자는 여러 가지 천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천성이 있고 바울과 같은 천성이 있습니다. 이 천성 중에서 선함은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는 천성입니다. 바나바는 그런 천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역자는 천성으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어떤 천성이든지 하나님 손에 그것이 들려 있어야 합니다. 바나바의 선함은 사람을 바나바에게로 끌지 않았습니다.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24절 하)" 주님께로 끌었습니다. 어떤 천성을 가졌든지 거기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사역자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 이끌지 않고 오직 주님께 이끕니다. 주여! 저에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사울을 찾으러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갑니다(25절). 그를 안디옥으로 데리고 옵니다. 데리고 온 이유는 큰 무리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26절). 바나바는 사울이 안디옥에 있는 수많은 이방인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잘 알아본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교회에서 일 년간 큰 무리를 가르친 결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생기게 됩니다. 이 칭호는 유대인들의 칭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칭호는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칭호였습니다. 이들은 신자들을 조롱하는 뜻으로 이런 호칭을 신자들에게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호칭은 후에 영광스러운 호칭이 되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것을 십자가에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형틀이 후대의 모든 신자들에게 영광의 표지가 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능욕은 영광이 된다고 그의 주석에서 말씀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266쪽).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초대 교회에는 일시적으로 선지자 직분이 있었습니다(27절). 이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언 사역을 했습니다(28절). 지금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완성하여 주셨기 때문에 사도직과 선지자직은 종결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현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성경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선지자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28절). 세속 역사가들도 이 흉년을 기록할만큼 큰 흉년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 때, 이삭 때, 야곱 때 한 번씩 흉년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이처럼 흉년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가보를 사용하셔서 흉년을 예고하신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갖도록 뜻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흉년 닥치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 원인을 알려고 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 일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는 일입니다(29절). 부조는 헬라어로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입니다. 집사라는 말과 같은 어원의 말입니다. 여기서는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원조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다 먹은 음식을 채워주듯이 그렇게 부족한 것을 채워준다는 뜻입니다. 

     

    큰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먹을 것에 부족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활에 궁핍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 때 안디옥 교회가 나서서 그 궁핍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잘 살 수 있도록 채워준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복음과 가르침을 받았고 물질로 예루살렘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 일은 어려운 일이 다가왔을 때 교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 이런 일이 다가왔는지 물어봅니다. 원인을 자꾸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으시다는 것을 믿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를 보내서 영적인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그러자 나중에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 물질적인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이러한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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