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20장 1-16절 | 마게도냐와 헬라를 거쳐 드로아에서

2024. 6. 13. 10: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반응형

목차


    사도행전 20:1-16

    찬송가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하나님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넘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19:8-9). 그 결과 아볼로와 열두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 지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처럼(19:3-7)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전해지자(19:20) 에베소의 영적 지형이 변화되었습니다. 질병과 악귀가 떠나갔습니다(19:12). 마술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책을 모조리 불살랐습니다(19:19).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의 생계가 어려워졌습니다(19:25-27). 그래서 그들을 주동으로 해서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19:23). 이렇게 복음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는 언제나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게도냐와 헬라를 거쳐서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바울은 작별하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서 권했습니다(1절). 또 마게도냐 지방을 다니면서도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했습니다(2절). 권하다(παρακαλέω)라는 말은 보혜사(παράκλητος)와 같은 뜻의 말입니다. 격려하고 위로하고 안심시킨다는 뜻의 말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말의 뜻을 "권면하다"라고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씁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신자들의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권면한다. 인간의 권면이 성령님의 감동하시는 은혜와 동반하는 한, 그것은 하나님의 권면과 동일시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입을 통해 하실 말씀을 하시기 때문이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4쪽)." 맞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서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믿음을 굳건히 하도록 격려하고 위로하고 서로를 안심시켜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런 마음으로 서로 권면할 때 성령님의 은혜의 역사가 많이 일어납니다. 

    석 달 동안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함

    바울은 석 달 동안 헬라에 머물렀습니다(2-3절). 박윤선 목사님은 그 장소를 고린도라고 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석 달 동안 머물면서 로마서를 썼을 것이라고 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84쪽). 바울은 에베소에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19:21). 이런 마음이 로마서에 담겨 있습니다(롬 1:13). 바울의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습니다. 그는 로마로 가기 전에 예루살렘에 먼저 가려고 했습니다(19:21; 롬 15:25). 그래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습니다(3절). 마게도냐로 다시 돌아서 가는 길은 시간이 더 걸리는 길이었지만 가는 길에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유익을 줄 수 있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 일부러 악도들의 수중에 자기의 몸을 내어줄 필요는 없다고 주석합니다. 그러면서 신자가 환난을 구차스럽게 면하고자 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일부러 위험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고 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5쪽). 

     

    사도행전 20장 바울의 마게도냐 이동경로

    각 지방 교회를 대표하는 일곱 사람

    4절에는 일곱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입니다. 바울은 이 일곱 사람에게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한 금액을 전달하라는 사명을 맡겼습니다(롬 15:25-26; 고후 8:1-2; 9:1-2). 박윤선 목사님은 바울이 이 구제금을 관리하지 않은 것은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초대 교회의 사도적 결정에 준하는 일이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5쪽). 또한 이 명단에 대해서 브루스(F. F. Bruce)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이 일곱 사람이 각 지방의 교회를 대표한다고 설명합니다. 소바더와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는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하고 가이오와 디모데는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하고 두기고와 드로비모는 아시아 교회를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출신이 그러합니다. 그러면서 다음의 말을 덧붙입니다. "이처럼 그 때에 공적인 일을 위하여는 공평하게 여러 지역 교회의 인사들이 참여하여 협력하였다(고후 8:16-23 참조, 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5쪽)"

     

    이 일곱 사람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나머지 일행을 기다리고(5절) 바울 일행은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서 5일을 걸려 드로아에 도착해서 7일을 머물렀습니다(6절). 왜 따로 떨어져서 이동했는지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렌스키(Lenski)의 추측을 받아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여행 중에도 절기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유대인으로서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서 빌립보에 머물렀다가 절기를 지키고 드로아에 갔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5쪽).

    우리

    6절에 "우리"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누가가 거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여기에서 또 다시 렌스키(Lenski)의 견해를 빌립니다. 누가는 5년 전에(16:40) 자기 고향인 빌립보에 남아서 의사 영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바울을 돕기 위해서 다시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6쪽). 그들은 빌립보에서 드로아까지 배로 5일이나 걸렸습니다. 이 길은 이틀이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5일이나 걸린 것은 풍세가 고르지 못해서였을 것이라고 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6쪽).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그들은 드로아에서 그 주간의 첫 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습니다(7절). 주간의 첫 날은 주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아주 초기부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예배일로 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떡을 떼려고 모였다는 것은 성찬을 의미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6쪽). 

     

    그 주일 예배는 밤 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바울은 이튿날 떠나야했기 때문에 말씀을 밤중까지 계속했습니다(7절). 그는 열정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묻고 답하는 공부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9절에 "강론하기"라는 말(διαλέγομαι)은 논리적으로 묻고 답한다는 뜻을 가지는 말입니다. 집 주인은 등불을 넉넉히 밝혀 놓았습니다(8절). 바울의 강론을 잘 듣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유두고의 소생

    그런데 유두고라는 청년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3층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일어켜보니 죽었습니다(9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사람이, 그것도 젊은이가 졸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란스럽게 떠들었습니다. 바울은 강론을 멈추고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몸을 안고 떠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걱정으로 떠드는 것은 일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엎드려서 청년의 몸을 안은 것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한 행동과 비슷한 행동입니다(왕상 17:21; 왕하 4:34 참조). 바울은 그를 살리려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7쪽). 그러면서 "생명이 그에게 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유두고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그의 생명이 회복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을 나타내신 것은 성도들에게 위로를 베푸시기 위함이었습니다(12절). 

     

    박윤선 목사님은 바울의 이 행동에 대해서 그 청년을 위한 바울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다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7쪽). 그러면서 하나님의 권능은 믿음과 사랑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장면을 참고 구절로 제시합니다(마 14:14, 15:32-38). 바울은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났습니다(11절). 이야기하다(ὁμιλέω)라는 말은 담소를 나누면서 대화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들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떠나서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3-16절에는 지명이 많이 나옵니다. 앗소는 드로아의 항구입니다(13절). 미둘레네는 레스보스 섬의 도시입니다(14절). 기오와 사모는 섬들입니다(15절). 밀레도는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 항구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0장 바울의 이동경로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20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려고 했습니다(13절). 바울은 전날 밤새 이야기하면서(11절)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런데도 걸어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박윤선 목사님은 바울이 홀로 걸어가면서 한적한 기회에 주님과 교통하기 위해서 그랬을 거라고 추측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8쪽).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홀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