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18장 24절 - 19장 7절 |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들

2024. 6. 10. 10: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18:24-19:7

    찬송가 195장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에베소로

    사도 바울은 안디옥으로 돌아와서 얼마 있다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시작으로 제3차 전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18:23). 누가는 그 초점을 에베소로 옮깁니다. 바울의 목적지가 에베소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라고 말하면서 에베소를 떠났습니다(18:21).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에 에베소를 목적지로 삼고 육로로 가면서 교회들을 굳건하게 했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그렇게 가는 동안 바울의 목적지인 에베소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베소에서는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알렉산드리아 출신

    에베소에 아볼로가 왔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도서관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그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 아래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를 도서관장으로 임명하고 전 세계 학자들을 초빙해서 세계 최고의 도서관을 만들려고 했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고대 세계에서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경이 번역된 장소도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아볼로는 이 도시 출신으로서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했습니다(24절).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했고 주의 도를 배워서 열심히 예수님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고 가르쳤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았습니다. 즉 세례 요한의 수준에서 예수님을 증언할 뿐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가장 큰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11).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일들과 그 의미를 아는 것에 있어서 세례 요한 수준의 지식은 당시에는 빈약한 지식이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5쪽).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아볼로는 에베소에 와서 회당에서 담대히 말했습니다. 그것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들었습니다. 듣고 아볼로를 데리고 가서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서 가르쳤습니다(26절).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있어서는 먼저 배워서 바로 아는 자들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찍이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유대인들에게 "그 그리스도가 예수시라"라고 밝히 증언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것을 듣고 먼저 안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아볼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아볼로는 바울이 전한 것으로 성경을 더 밝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식보다 은혜가 앞서야 함

    아볼로는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아가야로 건너가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27절).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아볼로가 예수님을 완전히 알게 된 후에는 지식보다 은혜가 앞섰다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6쪽).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지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지식에 은혜가 항상 앞서야 합니다. 

    그 그리스도는 예수시라

    아볼로는 성경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습니다. 이 말은 18장 5절과 같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예수시라"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밝히 증언한 바로 그 내용입니다. 아볼로는 바울과 똑같이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으로서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그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시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예언하고 약속한 그 그리스도가 예수시라고 구약 성경의 내용으로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아볼로를 논리로나 지식으로나 이기지 못했습니다(28절).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들

    진리 지식이 빈약한 제자들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아볼로가 아가야 지방으로 가서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거기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1절). 여기서 어떤 제자들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기독신자이면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형제들이라고 해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9쪽). 제자라는 단어(μαθητής)는 사도행전에서 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로 쓰였습니다(6:1. 7; 9:19; 11:26). 그런데 여기서는 배우는 사람,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서에서 그런 뜻으로 나옵니다(마 10:24; 눅 6:40). 오순절 성령 강림을 경험하기 전에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도 제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 나오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고 따르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하게 모르는 사람들,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에 따르던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은 그들의 믿음이 빈약한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고 답했습니다(2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칼빈을 인용하면서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성령을 전혀 몰랐을 리는 없다고 하면서 성령의 은사들이 신약 시대에 특수하게 임하는 사실을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9쪽). 즉 성령의 존재를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오셔서 임재하신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 시대가 이미 도래했지만 이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회개로 돌이켜야 하는 방향

    그들이 어떤 시대에 살았는지가 뒤의 말씀에서 명확해 집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는 요한의 세례 시대였습니다(3절).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4절). 요한은 회개의 세례로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선포한 회개는 그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방향이 향해야 할 곳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믿어야할 분

    그들은 이제 믿어야할 대상이 명확해졌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개의 세례 수준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회개를 도덕의 수준에서 생각합니다. 내가 더 바르게 살아야지 그렇게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회개란 그 마음의 방향을 돌이켜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바울이 했던 것처럼 질문을 해야 합니다.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질문을 해보면 여전히 자기를 의지하고 사는 신자들이 많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5절). 이제 그들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의지하는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주인과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εἰς)"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6절). 그들은 이전 시대에서 성령 시대로 옮겨졌습니다. 

    방언 문제

    이 본문에 근거해서 어떤 이들은 신자마다 다 방언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바울이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전 12:30)"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방언 문제로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에게 사람마다 다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그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방언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지만 방언을 받은 사람은 고린도전서 14장의 규례대로 혼자 있을 때 해야 합니다(고전 14:2, 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80쪽). 방언에 이어 나오는 예언은 장래를 미리 알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서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행 11:28; 21:9-11; 고전 14:3).

    주기적으로 복음을 설교해야 함

    1-7절의 본문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교회 안에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엇이 믿는 것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빈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개를 하지만 자기 수양 느낌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교역자들은 성도들 중에서 누가 진리 지식에 빈약한가 살펴서 그들을 가르치려고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9쪽). 바빙크도 복음 설교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본문의 바울처럼 질문을 사용하는 것도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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