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18장 12-23절 | 갈리오와 소스데네, 에베소로 간 바울

2024. 6. 9. 11: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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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도행전 18:12-23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이나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시라는 것입니다(18:5). 그렇게 해서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18:8). 예수님께서는 바울을 혼자 두지 않으시고 바울에게 환상 중에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또한 바울을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을 격려하시면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셨습니다(18:10). 바울이 더 힘을 내서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보내신 사도로서의 직분을 고린도에서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갈리오의 판결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2절에는 갈리오가 등장합니다. 갈리오는 네로의 스승이자 후기 스토아 철학자로 여러 작품을 남긴 세네카의 형입니다. 갈리오는 네로 황제 때 아가야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총독이므로 그 지방을 관장하는 왕과도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갈리오를 성격이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고린도의 델피 신전의 벽에 보면 글라우디오 황제의 편지가 새겨져 있는데 거기에 "나의 친구 갈리오"라는 문구가 나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1쪽). 

    함께하시며 보호하시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갈리오의 권세를 이용해서 바울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빌라도의 힘을 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했던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14-15절). 이것으로 바울을 보호하신다는 주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18:10). 바울은 예수님의 격려를 받고 일 년 육 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과 함께 하시면서 바울을 보호하셨습니다. 이렇듯 복음 전도사역은 혼자 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역입니다. 

    갈리오의 지혜로운 판결 

    갈리오는 법정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한정했습니다.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법정에서 고소할 수 있습니다(14절). 여기서 부정한 일(ἀδίκημα)은 불의하게 법을 어겨서 남을 해치는 행동이라는 뜻이고 불량한 행동(ῥᾳδιούργημα πονηρόν)은 사악한 범죄를 뜻합니다. 이런 일들은 로마법에 저촉이 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유대교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라면 이것은 로마 법정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언어는 종교상의 교리를 가리키고 명칭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2쪽). 이것은 "너희 법" 즉 율법에 관한 것입니다. 즉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는 갈리오가 무슨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15절). 갈리오는 자기가 관여할 수 있는 일과 관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습니다(16절). 이것은 법정에서 하나의 판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법정에 고소하지 못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세상 법정도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서 법정 앞에서 때렸습니다(17절). 그런데 이것은 명백하게 부정한 일이요 불량한 행동이었습니다(14절). 그런데 갈리오는 이것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갈리오는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것은 허락하자는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정치인들은 군중의 말에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갈리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회당장 소스데네

    소스데네는 고린도전서 1장 1절에 등장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쓴 편지에서 바울과 함께 발신자로 나오는 것입니다. 소스데네는 법정 앞에서 유대인에게 매를 맞는 수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에서는 좋은 평판과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인정 받는 일꾼이었습니다. 

    수리아로 돌아가는 길에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의 고소를 겪은 후에 바울은 수리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바울과 함께 갔습니다(18절). 브리스길라는 아굴라의 아내인데도 그 이름이 남편보다 앞에 나옵니다. 이것은 그 여자의 신앙이 그의 남편보다 앞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부부는 바울 못지않게 그리스도를 사랑했습니다(롬 16:3-4, 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3쪽).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음

    바울은 일정기간 머리를 깎지 않는 서원을 했었습니다. 민수기 6장에 보면 나실인의 서원이 나옵니다. 나실인의 서원은 일정 기간 자기 몸을 구별해서 여호와께 드리는 것입니다(민 6:2). 서원 기간에는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으면 안 되었고(민 6:3-4)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머리를 길러야 했습니다(민 6:5). 그 때에는 시체를 가까이 해서도 안 되었습니다(민 6:6-7). 나실인은 기간이 차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회막 문에서 머리를 밀고 머리털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두었습니다(민 6:13-18). 이 서원 예식에서 바울은 제사를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 제사로 모든 제사 제도가 완성되고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는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18절 하). 

     

    에베소에서

    머리를 깎은 바울은 바다를 건너 소아시아에 있는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서 동행한 사람들을 거기에 머물게 하고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과 변론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에베소에 머물고 바울은 회당에서 전도한 후에 에베소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작별하고 에베소를 떠났습니다(21절). 바울은 어디에 가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고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라고 전했습니다. 바울의 회당 전도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의 관례요 원칙이었습니다. 이런 원칙은 바울이 변론을 좋아해서 세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동족인 유대인들을 사랑해서 세운 원칙입니다. 바울의 동족 구원을 위한 열심은 말할 수 없이 뜨거웠습니다(롬 9:1-5; 10:1, 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4쪽). 

    갈리오와 소스데네, 에베소로 간 바울

    에베소에 있었던 신자들은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기를 청했습니다(20절).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21절에서 몇몇 사본은 "작별하여 이르되" 다음에 "나는 어떠하든지 예루살렘에 있어 절기를 지켜야 하리라"라는 문구가 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4쪽). 이것으로 볼 때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머물러 달라는 청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고 합니다(21절 하). 이 말대로 바울은 얼마 후에 다시 에베소로 와서 3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20:31).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아무리 주님의 종을 체류시키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안 된다고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다시 올 수 있는 기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될 줄 알았습니다. 그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신자의 생활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4쪽). 

    안디옥으로 돌아옴, 제3차 전도 여행 시작

    바울은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서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고 하는데(22절 상) 이것은 그가 예루살렘 교회로 갔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부를 물은 바울은 안디옥을 돌아갔습니다(22절 하). 안디옥에서 얼마 있은 후에 바울은 다시 떠나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면서 거기에 있는 제자들을 굳건하게 했습니다(23절).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을 신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일로 시작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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