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20장 17-27절 | 밀레도에서 만난 에베소 장로들에게

2024. 6. 14. 19:1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20:17-27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바울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3년 가까이 사역했던 에베소를 그냥 지나쳐왔습니다(20:16). 에베소를 들를 시간이 없었던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그가 있는 밀레도로 불렀습니다(17절).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교역자의 삶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어떻게 행했는지를 여러분이 잘 안다고 합니다(18절). 교역자는 아무리 자기 자신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시간이 걸릴지언정 모두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사는 사역자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 탄로난 것을 자기만 모르고 외식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복음 사역에 전력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혜 베푸신 사람만이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다만 은혜를 구할 따름입니다.

     

    밀레도에서 만난 에베소 장로들에게

    모든 겸손과 눈물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행한 것이 무엇인지 19-21절에 나옵니다. 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을 첫째로 꼽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특히 사역자는 자기가 주님의 종인 것을 늘 의식하고 있어야 된다고 하면서 그리할 때에 그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석합니다. 우리가 겸손을 소유하지 못하면 우선 주님의 종된 자격을 상실한다고 하면서 "종된 자로서야 그 어느 순간인들 자신을 높일 수 있으랴!"라고 합니다. 이어서 "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비결도 겸손에 있고, 그것을 유지하는 비결도 겸손에 있다."라고 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8쪽).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주 예수께서 주인이시고 사역자는 종입니다. 그 어떤 종도 주님 앞에서 스스로를 높일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잘 알고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의 위치를 잘 지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바울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울이 흘린 눈물은 자기 연민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물은 다른 이의 영혼을 사랑하는 애끓는 눈물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롬 9:1-3). 또한 그는 신자들의 영적 형편이 병들었을 때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9쪽). 

    고독이 주는 유익

    바울은 또한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시험을 많이 당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여러 간계를 꾸몄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성도가 받는 시험 중에도 특별히 사람들의 모해를 당하는 시험은 그 괴로움이 심하다. 그것을 당하는 자는 고독의 쓴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고독이야말로 그 당하는 자로 하여금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며, 주님만 믿도록 해 주는 양약이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9쪽).

     

    교역자는 누구보다 외롭습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자리가 바로 교역자의 자리입니다. 성도를 믿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료 교역자도 믿을 수 없을 경우가 많습니다. 교역자 주변 사람들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닙니다.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격은 교역자를 고독하게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교역자에게 좋은 약이 됩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역자가 특별히 영적으로 특출나기 때문에 자꾸 하나님을 찾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역자를 그렇게 인도하시고 홀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고독을 약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설교에 대하여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는 거리낌 없이 전했다고 합니다(20절). 여기서 유익한 것은 구원에 유익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유익한 것을 가르쳤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99쪽). 설교를 세속 강연처럼 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일반적인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과 재정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씁니다. 그러나 목사가 설교할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목사는 복음 진리를 설교해야 합니다. 복음 진리를 설교할 때에는 그것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즉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 없이 전해야 합니다. 

    복음 진리

    바울이 전한 것은 복음 진리였습니다. 그것이 21절에 나옵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는 당시 말씀을 알아듣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 오직 예수님이심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시기에 합당하시다. 그 이유는 1) 그는 계시되신 하나님이신 까닭이며, 2) 그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사이에 중보자이신 까닭이며, 3) 그는 언약의 성취자로서 아멘이시니(고후 1:20), 곧 진리이신 까닭이며, 4)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신 까닭이며, 5) 그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까닭이다(고전 1:30). 출처: 박유선, 사도행전 주석, 399-400쪽.  

     

    복음 진리를 전할 때에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명확하게 전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라고 전해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은 성령님께 매여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유는 성령님께서 그를 보내시기 때문입니다(22절). 거기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23절). 바울이 이것을 아는 이유는 각 성에서 선지자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바울을 향해서 예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때 아가보도 같은 것으로 예언했습니다(21:10-14). 하나님께서 고난을 미리 알리시는 이유는 고난을 당할 때 놀라지 말고 잘 견디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00쪽). 

    바울의 목표

    하나님께서 고난을 미리 알리신 결과 바울은 굳게 결심했습니다. 바울의 굳은 결심이 24절에 나타납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사명을 경주하는 것이 비유합니다. 경주하는 사람은 목표점을 향해서 전력으로 달려 나갑니다. 바울의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바나로 가고자 합니다(롬 15:23, 28). 서바나가 바울의 목적지입니다. 서바나는 당시의 땅 끝입니다. 지금으로하면 스페인입니다. 창세기 10장에 70 족속이 나옵니다. 바울은 이 족속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동쪽에 있고 서바나는 서쪽 끝에 있습니다. 창세기 10장 4절의 달시스, 역대상 1장 7절에 다시스로 나오는 곳이 바로 서바나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들렀다가 로마로 가고자 하는 것(19:21)은 로마에서 다시 서바나로 가기 위함입니다. 이 목표를 위해서 바울은 결박과 환난을 뚫고 생명을 바치면서 가고자 합니다. 

    복음전도에 전심전력함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2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그 땅의 영적 지형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그 땅에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다시는 못 볼 것이라고 합니다(25절). 그는 그만큼 충분히 에베소에서 사역했고 사역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자기가 깨끗하다고 합니다(26절). 이것은 그가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과 책임을 완수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멸망에 대해서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에베소에서 다 전했습니다(27절). 여기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과 죽임 당하신 그가 다시 살아나신 것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뜻합니다. 바울은 이 모든 진리를 에베소에서 다 전했습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