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24장 1-23절 | 벨릭스 앞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는 바울

2024. 6. 22. 17: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24:1-23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가이사랴에 무사히 도착한 바울

    천부장은 바울을 밤 9시에 가이사랴로 보냈습니다. 먼저 64km 정도 떨어져있는 안디바드리로 밤새 이동시켰습니다(23:31). 안디바드리에서 40km 떨어진 가이사랴까지는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했습니다(23:32). 그렇게 해서 바울은 유대인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23:12-15).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던 천부장을 사용하셔서 바울을 안전하게 가이사랴로 옮기셨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바울은 총독 벨릭스의 명대로 헤롯 궁에서 지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이 유대인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천부장의 편지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잘 지키도록 명령했습니다(23:35). 

    바울을 고발하니라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닷새 후에 바울을 고발하는 자들이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이틀이 걸려서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그만큼 빠르게 호송된 것입니다. 이들도 서둘러서 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대동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장로들도 함께 왔습니다. 올 사람을 뽑아서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온 것을 생각하면 이들도 굉장히 서둘러서 온 것입니다. 참고로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약 100km 정도 거리입니다. 

     

    변호사라고 번역된 말(ῥήτωρ)은 연설가, 강연자라는 뜻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을 잘하기 때문에 변호사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아나니아가 더둘로를 동원한 이유는 선을 악이라고 하려면 궤변에 능한 자라야 되겠기 때문이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38쪽). 

    더둘로의 아첨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더둘로는 먼저 벨릭스에게 아첨하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그의 말의 분량을 보면 절반 정도가 벨릭스에 대한 아첨입니다. 이것이 아첨인 이유는 벨릭스가 선한 정치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태평을 누리고" 이 말은 벨릭스 총독이 많은 강도들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때문에 유대 민족이 얼마 동안 평안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38쪽). 그는 치안을 위한다면서 강도로 분류된 400명을 죽였습니다. 더둘로는 벨릭스의 포악한 학살을 치안 유지라는 것으로 칭찬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벨릭스의 선견을 칭찬했습니다. 선견이라는 말(πρόνοια)은 미리 안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황제나 신의 예지에 대해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대단한 아첨의 말인 것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38쪽). 개선되었다는 말(διόρθωσις)은 개혁되었다, 고쳐졌다, 말 그대로 개선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대다수 유대인들은 벨릭스의 폭정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더둘로는 그것을 가리켜서 유대인이 고쳐졌다라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둘로는 그것과 같은 말을 지금 벨릭스에게 하고 있습니다. 악을 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 벨릭스

    역사가 요세푸스는 벨릭스를 가리켜서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제거하려고 암살자까지 동원한 잔인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의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벨릭스가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세를 휘두른 사람이라고 하면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척 스윈돌은 벨릭스가 양심 없는 기회주의자였다고 하고 성공회 지도자 F. W. 파라(Farrar)는 벨릭스가 노예 중에 가장 사악했고 모든 시대에서 가장 악했고 모든 도시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것은 벨릭스가 노예 출신으로 총독까지 오른 것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이렇게 벨릭스는 악했습니다. 그런데 더둘로는 아첨하는 말로 악을 선이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더둘로가 바울을 고소하는 죄목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1)(6하반-8상반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더둘로가 악을 선이라고 하면서 벨릭스에게 아첨하는 이유는 바울을 고발하여 죽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무고한 바울을 죽이는 악한 일을 하기 위해서 악을 선하다고 일컫고 있습니다. 더둘로가 바울을 고소하는 죄목은 네 가지입니다. 1) 염병이요 2) 소요하게 하는 자요 3)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요 4) 성전을 더럽게 하려고 한 자.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38-439쪽). 

     

    "염병"이라고 함은 불평을 퍼뜨려서 평화를 깨뜨리는 자를 말함이다. 그 다음으로 "소요하게 하는 자"라는 말이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죄와 허물을 폭로시키는 선지자들을 가리켜 "소요하게 하는 자"라고 불러오고 있다(왕상 18:17; 계 11:10). 

    소요하게 하는 일에 관하여

    교회가 소란스럽지 않은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명백한 잘못이 계속 터져나오는데도 계속 그것을 덮고 어물쩡 넘어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합 시대에 모든 백성이 바알에게 비를 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도 그 죄를 지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를 회개하자는 자숙안이 상정되었을 때 어물쩡 넘어간 일이 있습니다(신학정론, 2024. 6, 16-21쪽).  이런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계속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39쪽). 

     

    바울을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하였으니, 이것도 더둘로의 궤변이다. 어찌 하여 예수님의 진리를 "이단"이라고 했는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한다고 한 것도 사실대로 된 고소가 아니다.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려 한 일이 없다. 그는 다만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신약시대에는 어디서든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으신다고 하였을 것이다(요 4:23; 롬 7:6). 이 사상은 성전을 더럽힘이 아니고 도리어 구약 성전의 의의를 바르게 설명한 것뿐이다. 

     

    더둘로는 진리를 이단이라고 하면서 궤변을 늘어 놓았습니다. 바울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또한 성전과 성전 예배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올바르게 전했습니다. 이것으로 흔들린 것은 당시 부패한 기득권자들입니다. 이 일은 부패한 시대에 진리를 전할 때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6절과 8절 사이

    사본에 따라 6절과 8절 사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율법대로 재판하려고 했으나 7 천부장 루시아가 와서 그를 우리 손에서 강제로 빼앗아 갔나이다 8 그리고는 그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각하께 가라고 명하였나이다" 더둘로는 이어서 바울을 심문하시면 이 네 가지 고소내용을 다 알 수 있을 거라면서 아첨으로 고발을 끝맺습니다. 처음과 끝을 아첨으로 끝맺으며 술수를 부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함께 간 유대인들, 즉 대제사장과 장로들도 합세해서 더둘로의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9절). 

     

    가이사랴 해변과 원형 극장

    바울의 변론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총독은 바울에게 머리짓으로 말하라고 표시했습니다(10절). 이것은 그의 사람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직임에 있어서만 높은 사람이지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지금 행하는 재판에서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에 높임을 받는 것이지 그가 다른 사람과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하대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벨릭스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할 때 폼페이에서 용암에 덮여 죽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

    바울은 벨릭스에 대해서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맡은 직임이 재판의 직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된 것을 내가 알고" 이 말은 벨릭스의 높음이 그 직임 때문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의 사람 됨됨에 의지하지 않고 그를 재판장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해서 자기 사건에 대해서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10절 하). 

     

    바울은 더둘로가 고소한 죄목에 대해서 자기에게 죄가 없음을 밝힙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바울의 변론을 정리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0쪽). 

     

    바울은 변사 더둘로가 고소한 첫째와 둘째 죄목인 소요 사건과 관련된 죄가 자기에게 없음을 솔직하게 말하였다. 1) 벨릭스가 유대의 총독으로 여러 해(6년) 동안 재임하였으니(10절) 유대의 풍습을 잘 알 것이고, 따라서 바울의 행동이 정치적 성격을 띠지 않았음을 알 만하다고 함. 2) 그 자신으로 말하면 유대 밖에 다른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유대(예루살렘)에 온지 열 이틀 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 짧은 시일 동안에 유대에서 무슨 소요 사건을 일으킬 만한 여유도 없었다고 함(11-12절). 따라서 3) 유대인들 측에서는 원고로서 확실한 증거를 갖춘 고소 자료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13절).

    바울은 자기가 복음과 관계 없는 이 세상 일로 인하여 국법에 걸릴 일이 전혀 없음을 변증하였다. 이것은 전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자기 변호였다. 그런 변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전도자가 복음과 관계 없는 세상 일로 인하여 오해를 받고 고난 받을 필요는 없다.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바울은 더둘로가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한 것에 대해서 변론합니다(14절). 그들이 이단이라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조상에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님은 조상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루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데 구약이 오시리라고 증언하고 있는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부활의 소망을 말합니다. 부활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만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조상의 하나님과 율법과 선지자로 말하고자 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시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칼빈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0-441쪽). 

     

    칼빈은 바울의 세 가지 신조(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긴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믿는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음을 믿는다)가 실상 서로 관련성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길게 말하였다. "바울이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믿는다고 한 그 말씀은 실상 그 위의 문장("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란 문장)을 받아서 해설하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저 하나님을 섬긴다고만(14절 상) 하지 않고 그 섬기는  방법을 말했으니, 곧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의하여 섬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와 같이 율법과 선지자, 곧 성경을 믿는다고 말한 뒤에는 부활의 소망을 말하였다. 이는 부활의 소망이 육체적 지각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근거한 것이라는 의미다." 곧, 바울이 전하는 부활 소망이 진리인 이유는 그의 가진 신관이 이스라엘 조상들의 신관과 일치한 까닭이다.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바울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즉 부활 소망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합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롬 7장 참조).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을 그대로 덮어두지 않고 회개하였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3쪽). 박윤선 목사님은 양심은 인간에게 있는 도덕 의식으로 하나님의 음성 자체는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을 믿는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함으로 또한 회개함으로 거리낌이 없어진다고 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3쪽). 성도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항상 회개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17절 이하는 더둘로가 고소한 네 번째 죄목인 성전을 더럽게 하려고 했다는 것에 대한 변론입니다.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왔습니다(17절). 여기서 제물(προσφορά)은 제사를 드릴 때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율법에서 명한 대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례를 행했습니다(18절). 결례(ἁγνίζω)는 정결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바울은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다 행하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성전에서 무슨 특별한 모임이나 소동도 없었습니다(18절). 다만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을 특별히 언급한 이유는 이들이 주동이 되어서 바울을 고소하고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바울을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그들이 총독 앞에 와서 고발해야 한다고 합니다(19절).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 온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더둘로와 장로들이 바울이 공회 앞에 섰을 때 무슨 옳지 않은 일을 한 것이 있는지 고발하라고 합니다(20절). 바울은 공회 앞에서도 부활에 대해서 심문을 받는다고 말했을 뿐이었습니다(21절, 23:6). 이 부분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5쪽). 

     

    바울은 자기가 끌려 다니며 심문 받는 것이 무슨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부활 신앙을 증거한 까닭이라고 밝힌다. 그는 부활 신앙을 전하기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쳤다. 그가 법정에서도 말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것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영생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이런 복된 부활은 없다. 

    능력있게 전해진 복음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벨릭스는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알았습니다(22절). 그는 바울이 말한 것보다 더 자세하게 이 도에 대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바울에게 죄가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알면서도 판결을 바로 하지 않고 연기했습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 올 때까지 연기한 것입니다. 

     

    그는 백부장에게 바울을 지키라고 하면서 자유를 주라고 합니다. 또한 바울의 친구들이 바울을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합니다(23절). 가이사랴에는 빌립을 비롯해서 성도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다는 것을 듣고 바울을 찾아와서 여러 가지로 돕고자 했을 것입니다. 벨릭스는 그러한 도움을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절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울에게서 뇌물을 받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24:26). 

     

    이 사건을 보면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얼마나 능력 있게 전해졌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은 당시 벨릭스의 귀에 까지 들렸습니다. 대충 들린 것이 아니고 자세하게 들렸습니다. 그는 바울이 말한 것보다 이 도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회의 저 밑바닥에 있는 하층민에서부터 총독, 더 나아가 황제에게까지 부활의 복된 소식은 능력 있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음이 로마 전역에, 모든 계층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기독교를 세계 종교로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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