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24장 24절 - 25장 12절 | 벨릭스에 복음을 전했지만, 베스도 앞에서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

2024. 6. 23. 12:1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24:24-25:12

    찬송가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바울의 변론과 벨릭스의 반응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자기의 무죄를 변론했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에게 네 가지 죄목을 적용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1) 염병이라는 것과 2) 소요하게 하는 자라는 것, 3)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것, 4) 성전을 더럽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24:5-6). 이에 대해서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나사렛 예수님의 부활이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과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한 것이라고 하면서 반박했습니다(24:14-15). 또한 그는 자신이 소란하게 하려 하거나 성전을 더럽히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만약 그랬다면 자기들을 그렇게 고발한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벨릭스 앞에 와서 고발했을 거라고 합니다(24:19). 바울의 말을 들은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풀어주지 않았습니다(23절). 

    복음을 들은 벨릭스 하지만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며칠이 지난 후에 벨릭스는 그의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렀습니다. 바울을 부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를 듣기 위함이었습니다(24절). 역사가들에 의하면 벨릭스는 세 명의 왕실 출신 여인들과 결혼했다고 전해집니다. 벨릭스의 첫 아내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손녀인 모레타니아의 드루실라입니다. 두 번째 아내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 딸이자 헤롯 아그립바 2세의 여동생인 드루실라입니다. 이 드루실라가 24절에 나오는 유대 여자 드루실라입니다. 이 여자는 유대 여자로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의 분쟁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벨릭스는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24:22).

     

    이런 배경을 가진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바울에게서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고(24절 하)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들었습니다(25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6쪽). 

     

    바울은 벨릭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24절) 또 복음을 믿는 사람이 행해야 할 도덕("의와 절제")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절제"는 극기생활이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의 말대로 벨릭스는 노예의 근성을 가진 자로서 잔인성과 방종성으로 왕 같은 권세를 부렸다고 한다(Morgan).

    바울은 이런 인물에게 "의와 절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심판"에 대해서도 말하였는데 그 말씀은 불의하고 잔인한 벨릭스의 마음을 두렵게 하였다. 진리가 바로 전파될 때에는 악인이라도 두려움을 느낀다. 이때에 벨릭스는 회개할 기회를 연기하였으므로 바울의 전도를 듣고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어떤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는 옳은 일을 행하려 함에 있어서 연기하기를 잘하는 나약한 자의 표본이다(22, 25절). 그가 바울을 놓아줄 수 있는 기회에 놓아주지 못하고 구류하여 둔 것도(27절) 역시 의를 행함에 결단성이 나약한 처사였다. 

    나약한 벨릭스

    벨릭스는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로 과단성을 보였습니다. 400명을 강도 죄목으로 한 꺼번에 처형한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그런데 의를 행함에 있어서는 계속 연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윤선 목사님은 그를 나약한 자의 표본이라고 평했습니다. 강함과 약함이 여기에서 갈립니다. 벨릭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강했지만 그 속은 나약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자주 불러서 같이 이야기했습니다(26절). 그가 바울을 자주 부른 것은 진리에 대한 갈급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기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37쪽). 

     

    벨릭스 총독은 바울의 무죄함을 알면서도 그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구금하여 두었다(22-27절). 그는 부패한 관리의 표본이었으니 직무에 태만한 자요, 뇌물을 받는 자요, 공정하지 않은 자였음이 드러났다. 

    부패한 정치가의 전형

    벨릭스가 바울을 구류하여 둔 지도 2년이나 흘렀습니다(27절 상). 그가 2년이나 바울을 구류하여 둔 이유는 자기 이익을 위함이었습니다. 먼저는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26절). 그 다음으로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27절). 그는 자기 지위를 굳히기 위해서 바울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를 부패한 정치가의 전형이라고 평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6쪽).

     

    "벨릭스"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가 하여 바울을 놓아주지 않고 계속 구류하여 두었으니, 하나님을 모르는 부패한 정치가는 자기의 지위를 굳히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는다(마 27:11-27 참조). 

     

    벨릭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가 아니었습니다. 불신자 중에서도 자기 직임을 의롭게 감당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돈으로 이익을 얻는 것과 자기 지위를 굳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2년이 지난 후에 벨릭스가 가고 베스도가 그가 맡은 직임을 이어 받았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벨릭스가 해임된 이유는 계속된 유대인의 폭동과 소란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황제였던 네로는 2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에게 베스도를 추천한 이는 네로의 스승 세네카입니다. 그가 베스도를 추천한 이유는 베스도의 온화한 성품과 합리적 태도를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스도가 2년 만에 갑자기 죽고 그 후임으로 온 루시오스 알비누스는 베스도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지만 벨릭스에 대해서는 그의 악행과 부정을 실랄하게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베스도는 신임할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베스도의 부임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베스도는 부임한 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벨릭스가 벌여 놓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했습니다. 바울을 공의로 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에서 암살하기 위해서 그렇게 청한 것입니다. 그 제안은 신임 총독으로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그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4-5절). 당시 유대인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8쪽).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음모를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지 오래였음이 알려진다. 그들은 옳은 사람을 죄목 없이 죽이려 하되 암살하려고 하였다. "베스도"는 벨릭스의 후임으로 와서 만 2년도 못 되어 죽었다(주후 60-62년). 이 때의 "대제사장"은 아그립바가 세운 이스마엘이란 사람이었다. "높은 사람들"은 장로들을 가리켰다. 베스도의 "호의"란 말(χάριν)은 베스도의 '은혜'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법망으로써는 도저히 바울을 잡을 수 없었으므로 그들이 이제는 베스도 개인의 은혜에 의하여 바울을 잡으려고 하니, 그것이야말로 불의한 방법으로 의인을 해치고자 함이다. 이때에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동원된 것만 보아도 베스도를 접촉하는 그들의 방법이 공정한 법보다 사람들의 권력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베스도의 대답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원문에 보면 베스도의 대답 전에 그러나라는 말(μὲν)이 붙어 있습니다. 베스도의 의견이 유대인과 반대라는 것입니다. 베스도가 그들에게 거절한 이유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있기 때문이고 자기도 곧 가이사랴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4절). 무엇하러 여기까지 불러 와야 하느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너희 중에 유력한 자들은 자기와 함께 가이사랴로 가서 고발하라고 합니다(5절). 유대인들은 유력한 사람들을 동원해서 베스도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9쪽). 

     

    그는 관리로서 의리와 준법 정신을 굳게 지닌 점에 있어서 모본이다. 그는 무언 중에 그때의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듯하였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부패하면 이 세상에 속한 자에게서 부끄러움을 당할 정도로 비열하다. 

     

    5절에서 "옳지 아니한 일"의 헬라어 원문의 무엇이란 말(τί)을 의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원문 그대로 "만일 무엇이 있거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박윤선 목사님은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49쪽). 

     

    가이사랴 해변 유적지

    가이사랴에서 재판이 열림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팔 일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이틀에 걸쳐서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 "팔 일 혹은 십 일"은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십 일이 지난 후 다음 날 베스도는 바로 재판을 열었습니다. 그는 일 처리를 매우 신속하게 진행했습니다(6절). 

     

    바울이 나왔을 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를 대지는 못했습니다(7절). 그들의 고발은 증거가 없는 거짓 고발이었습니다. 

    바울의 변론과 상소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발에 대해서 변명하기를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8절). 유대인들이 바울을 이 세 가지에 대해서 고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증거가 없는 고발이었습니다. 바울의 변론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50-451쪽). 

     

    바울은 "율법"을 무시한 적이 전혀 없었고, 도리어 율법이 그리스도 신앙에 의하여 완성된다고 말할 뿐이었다(롬 3:31). 또 그는 "성전"을 무시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서 결례를 행한 바 있었다(21:26). 그의 이와 같은 행사는 성전을 존중한 증표이다. 또 그는 "가이사"에게 대하여 거스리는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도리어 신자들로서는 그에게 순종해야 될 것을 가르쳤다(롬 13:1). 그런데 그가 가이사를 반대하는 소요를 일으킨다고 한 것은 유대인들의 거짓된 선전에 불과하였다(24:5). 사실상 소요 사건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반대하기 위하여 일으켰던 것이다(21:27-28).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불의에 대한 기독신자의 처세 원리이다. 곧, 기독신자는 그를 해하려고 공격해 오는 불의한 훼방에 대하여 항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복음을 증거함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바울이 만일 위의 세 가지(율법, 성전, 가이사)에 대하여 범죄한 자로 판명되었다면 복음을 전하는 그의 신분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복음에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전도자는 그 신분까지도 복음을 그대로 순수하게 보여주는 복음의 기치가 되어야 한다.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라고 물었습니다(9절). 유대인들이 얼마나 베스도를 압박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베스도는 신임 총독으로서 유대인들의 요청을 계속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 그 의사를 물어 본 것입니다. 사실 베스도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바울에게 의사를 물은 것만으로도 그는 칭찬 받을만 합니다. 

    가이사에게 상소함

    바울은 베스도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가이사에게 상소했습니다(10-11절). 바울은 로마의 법대로 재판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상소한 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네가 ...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언하여야 하리라(23:11)"라고 말씀하신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유대인의 간계를 피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길게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50쪽). 이 주석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박윤선 목사님 당시 경북 법통 노회에 속한 교회의 재산에 대해서 총회가 반환 소송을 벌였기 때문입니다(신학정론, 2024. 6, 62-87쪽). 

     

    "변명"할 기회를 얻은 바울은 자기의 무죄함을 강력히 변증하는 동시에,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 받을 필요 없고, 황제 가이사에게 호소하겠다고 한다. 이때에 그가 상소하겠다고 한 것은 법정 소송에 대한 기독신자의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신자이지만 그가 상대한 유대인들은 신자가 아니므로 억울함을 당한 그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고전 6:1-7의 말씀은 신자가 신자를 상대로 하여 세상 법정에서 소송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신자들이,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일을 빙자하여 '바울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유대인들을 걸어 가이사에게 고소하였으니, 기독신자도 믿는 형제를 걸어 세상 법관 앞에서 소송할 수 있다'라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 그런데 그 당시 바울을 먼저 고소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자처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도리어 기독신자들을 박해하였으니, 그들을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때 바울을 박해한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원수들이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모함에 의해 피소된 자리에서 어디까지나 복음만 위하는 자기의 신분을 변호하려고 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의 손에서 고난을 자취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캄벨 모건은 말하기를 "일부러 순교를 찾아 구해서 순교하는 것은 참 순교가 아니다. 일부러 고난 구덩이에 자기 자신이 빠지는 사람은 실상 고난의 진리를 모르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상소한 것이었고, 결코 자기 민족을 고소하려는 것이 아니었다(28:19 참조).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고한 것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함으로 통과되었습니다(12절). 그 결과 바울은 원수들의 손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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