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27장 21-44절 | 배는 산산조각 났지만 전원 구조된 놀라운 기적

2024. 6. 28. 18:19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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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도행전 27:21-44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사람들을 격려하기 시작하는 바울

    바울은 로마로 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27:1). 그런데 때가 좋지 못했습니다. 9-10월의 지중해는 항해하기 어려웠습니다(27:9). 바울은 항해를 하면 하물과 배와 사람의 생명에 까지 타격과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27:10). 그러나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 불편했기 때문에 항해를 강행했습니다(27:12). 그런데 바울의 말대로 배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서 배의 짐과 기구를 내버리고 바람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27:18-19). 여러 날 동안 큰 풍랑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바다에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27:20).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사람들을 격려하기 시작했습니다(21-26절). 

    바울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하되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여러 사람은 오랫 동안 먹지 못했습니다. 풍랑이 너무 심했고 살 소망도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바울이 일어나서 자기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21절). 이 말은 뒤 이어서 나오는 말이 없었다면 하나마나한 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말 때문에 꼭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뒤에 하는 말을 신뢰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뒤에 하는 말이 중요한데 그 말을 듣고 믿게 하려면 바울이 앞에서 무슨 말을 했고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3쪽). 

     

    바울은 실상 죄 없으면서 죄수들 중 한 사람으로 그 배에 탔다. 이때에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해 주셨다. 그 배에 탄 276명(37절) 중 275명은 파선의 위험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초조한 가운데 있었다.

    그때에 소망 있는 말을 해 준 사람은 오직 바울 뿐이었다. 그가 "가운데 서서" 말하였다는 것은, 그 배에 탄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서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여기 "가운데"란 말(ἐν μέσῳ αὐτῶν)은 "그들 가운데"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는 먼저 그 배를 그레데에서 출항케 한 책임자들의 잘못을 부드러운 말로 상기시켰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가 일찍이 그들에게 출항하지 말자고 권고한 적이 있었고(9절 하-10절), 또 그의 말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이었기 때문이다. 

     

    박윤선 목사님은 바울의 경고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재차 대언해야 합니다. 그런 바울의 입장에서 이전에 대언한 말과 그에 따른 결과를 상기시키는 것은 뒤에 이제부터 대언할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높여줍니다. 

    안심하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먼저 "안심하라"라고 합니다(22절). 이 말로 바울이 앞에 한 말이 누구를 탓하는 말이 아닌 것이 드러납니다. 여러 사람이 자기들이 다 바다에 죽을 것이라고 여기는 상황에서 바울은 안심하라는 말로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이유는 배에 탄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도 그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22절). 바울은 오직 배만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보내셔서 어제 밤에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23절). 바울은 하나님을 가리켜서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23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4쪽). 

     

    하나님께 "속함"은 신앙생활의 높은 수준이다. 거기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Bengel). 그가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그는 하나님의 소유요, 따라서 하나님을 섬길 것 밖에 없다.

    하나님을 섬김

    바울이 사람들에게 서서 말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적은 배 안에서 자기에게 리더십이 부여되는 것이나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한 것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안전 보장

    하나님의 사자는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라고 말했습니다(24절). 이 말씀은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서야 하는 일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다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4쪽). 

     

    이런 행선을 통하여 바울을 가이사 앞에 서도록 하심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런고로 바울의 생명이 그 파선될 위험 중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안전 보장된 것이다. 그리고 의인 한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덕분에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게 되었다. 그 때에 바울이 탄 배는 이 세상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들로 말미암아 덕을 입는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을 모르는 그들이 도리어 참된 교회를 핍박하는 일이 많다. 

     

    옳은 해석입니다. 온 우주가 보존되고 역사가 지속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덕분입니다. 그 덕에 이 세상 사람들이 덕을 입고 자기들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참된 교회를 핍박합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골 1:24) 영광으로 들어갑니다(골 1:2728).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신앙

    바울은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합니다(25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4쪽). 

     

    바울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고 섰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롬 3:4)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니 그대로 이루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고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라고 예언했습니다(26절). 결국 나중에 바울의 말 대로 되었습니다(44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바울의 예언에 이와 같이 자세한 내용이 있어서 듣는 자들에게 더욱 믿음을 줄 만하였다. 후에 그들이 이런 자세한 내용이 성취됨을 볼 때에(41절) 또다시 주님의 말씀의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신앙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의 말씀이다. 웰렝가는 이 장면에서 바울에 대하여 말하기를 "여기 모든 이방인들 중에 참으로 위대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하나님만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른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요, 또한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27절은 "열나흘째 되는 밤"이라고 시점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꼬박 두 주 동안 폭풍 속에서 높은 파도와 풍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정쯤 되어 사공들은 자기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 직감했습니다(27절). "아드리아 바다"는 이탈리아 반도와 크레타 섬 사이에 있는 바다입니다. 그 바다에서 더 동쪽으로 가서 시칠리아를 넘어가면 사르디스 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바다의 깊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27절).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한 사공들은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고물에 닻 네 개를 내렸습니다. 고물은 배의 뒷 부분입니다. 닻이 네 개나 있었다는 것은 당시 그 배가 얼마나 큰 배였는지를 알려줍니다. 배는 닻을 내리고 더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29절). 

    도망가려는 사공들

    그 때 사공들은 도망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척하면서 거룻배를 바다에 내렸습니다(30절). 이물은 배의 앞부분입니다. 거룻배는 일찍이 배 위에 묶어서 올려놓았던(27:16-17) 돛이 없는 작은 배입니다. 그 배를 내린 이유는 사공들이 도망해서 자기들만 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30절 상). 바울은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사공들이 배에 있지 않으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31절). 그래서 군인들은 거룻줄을 끊어 버렸습니다(32절). 거룻배를 떠나 보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5쪽). 

     

    사공들이 수심을 두 번 재어 보아 물이 점점 얕아짐을 알고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려 배를 정박시켰다. 이것은 사공들의 지혜였다. 그러나 그들의 지혜가 의리를 겸하지 못하였으니(30절) 그들은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지도자는 못된다. 지도자의 자격은 지혜와 의리를 겸전해야 된다. 

    사공들도 얼마 전에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이제 와서 자기들의 힘으로 자기들끼리만 도망하여 살고자 한다. 그들이 배를 버리고 달아나면 그 배에 탄 수다한 생명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사공들의 비겁한 행위는 승객들을 구원하려고 나선 바울의 희생 봉사와 대조된다. 바울은 사공들의 불신앙 행위를 급속히, 그리고 지혜롭게 제지시켰다. 그가 그들의 행위를 군인들에게 알려준 것은 지혜로운 처사였다. 그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평안해진 마음의 열매이다. 신자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의 믿음이 요동하지 않는 한 지혜롭게 처사할 수 있다. 

    우리는 바울이 사공들의 행동을 제지시킨 일에서 배울 것이 있다. 곧, 하나님께서 그 배에 탄 사람들을 모두 다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지만, 인간 측에서 취해야 할 구원 방법을 등한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자는 자연 법칙을 무시하지 않으며, 인간 편에서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이행한다.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세 가지 교훈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능력이 있고 지혜로워도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믿음의 사람은 불신앙의 행위를 신속하고도 지혜롭게 저지시켜야 한다는 것. 셋째,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작정하실 때에는 그 수단도 작정하신다는 것. 즉 수단이 되는 일을 사람이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교훈은 특별히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교훈입니다. 

    거짓 목자의 모습

    사공들이 도망하려고 한 것에 대해서 매튜 헨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사공들이 배신을 계획하였다. 그것은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따나려는 계획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런 생각을 한다고 잘못될 것이야 없지만 배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그들이 이런 계획을 품었다는 것은 가장 비열한 행위였다(30절). 본문에 보면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라고 했다. 즉 그들은 배가 파도에 밀려 육지에 부딪치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도망을 계획한 것이다. ... 배신한 사공들은 위험이 닥쳐 와 그의 도움이 가장 절실할 때 달아나는 거짓 목자와 같은 것이다(요한 10:12). 그러므로 "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나 위골된 발과 같으니라"고 한 솔로몬의 말씀은 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의지하지 말자. 바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하리라고 확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들의 거짓말을 피난처로 신뢰하려 했다.

    믿는 척하는 위선자들

    메튜 헨리 목사님은 사공들이 도망가려고 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힙니다. 그들이 도망치려고 한 것은 배가 파도에 밀려서 육지에 부딪치면 배가 산산조각 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위험을 미리 인지했습니다. 바울은 배가 산산조각 나더라도 사람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들은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들은 거짓 목자와도 같은 이들입니다. 거짓 목자는 위험을 미리 알지만 위험에 맞서지 않고 자기들만 살려고 먼저 도망갑니다. 이들은 불신앙의 사람들로서 겉으로는 믿는 척하는 사람들입니다. 

     

    로마로 항해한 경로

    음식 먹기를 권하여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날이 새어 갈 때 바울은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먼저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했습니다. 그들은 거의 열나흘 동안 먹지 못했습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음식 먹기를 권하면서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위로했습니다(33-34절).

     

    이렇게 위로로 사람들의 힘을 북돋은 바울은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했습니다(35절). 하나님께 축사했다(εὐχαριστέω)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렸다(give thanks)는 뜻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6쪽).

     

    바울이 친히 떡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축사(감사)하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행동 전도이다. 그 풍랑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 밖에 없다는 뜻으로 그는 하나님께 축사하였다. 이와 같은 신앙이 과연 힘있는 신앙이다. 그는 안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심령을 소유하였다. 파선의 위험 중에서 그는 남들을 위로하며 지도할 수 있는 신앙의 장부였다. 

     

    누가는 배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그렇게 인원수를 기록한 목적은 이와 같은 많은 사람이 무서운 풍랑 중에서 한 사람도 상하지 않고 전원 구원 얻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6쪽).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작정이 성취되는 조건들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었습니다(38절). 이들이 만약 배부르게 먹지 않았다면 배가 깨어져갈 때(41절) 바다에서 육지로 무사히 건너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실 작정 안에는 사공들이 도망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모든 사람들이 든든히 먹고 바다에서 육지로 건너갈 힘이 있다는 조건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작정을 믿는 사람은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그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지혜를 동원해서 일하는데 확신있게 일합니다. 그렇게 일했기 때문에 작정된 일이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이 행할 것을 포함하여 작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충실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은혜의 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선원들

    날이 새자 선원들이 배에 남아 있어야만 했던 이유가 드러납니다. 선원들은 항만이 눈에 띄자 배를 거기에 댈 수 있는가 의논하고 전문지식을 활용해서 배를 해안을 향해서 몰았습니다(39-40절). 그들은 먼저 닻을 끊어서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키를 풀어서 늦추면서 돛을 달고 바람을 타고 배를 몰았습니다(40절). 순조롭게 육지에 닿을 것 같았던 배는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서 깨어져갔습니다(41절). 

    죄수들을 죽이고자 하는 군인들

    그 때 군인들은 죄수들을 죽이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도망칠까 우려하였기 때문입니다(42절).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 한 사람을 위해서 그 의견을 묵살합니다. 그렇게 하고 지도력을 발휘해서 배를 버리도록 합니다.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은 물에 뛰어 내리라고 하고 수영을 못 하는 사람들은 물에 뜨는 것을 의지해서 배에서 나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육지에 도달했습니다(43-44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76-477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은혜를 입고도 은혜인 줄 모른다. 바울을 통하여 배에 있는 사람들 전원이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듣고 위로와 소망을 얻었지만 이제 와서 군인들이 바울을 포함한 죄수들을 죽이고자 한다. 이것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잘못 계획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끊임 없이 섭리적으로 역사하셔서 바울을 보호하시며, 또 약속하신 대로 276명으로 하여금 다 구원을 얻게 하셨다. 

    바울이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백부장

    군인들은 바울 덕분에 음식을 먹고 힘이 생긴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얻은 힘으로 죄수들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제 자기들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할 때에는 살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큰 힘을 얻었지만 살 길이 보이자 군인들은 자기들의 안위만을 생각했습니다. 죄수를 놓치면 그를 지키는 자가 자기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이것을 알았으나 그들의 의견을 막았습니다. 그 의견대로 하면 바울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바울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백부장이 이렇게 의리를 발휘한 것 또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바울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백부장은 믿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믿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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