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30. 10:11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28:16-31
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담대하라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바울에게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23: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또 항해하면서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로마에 당도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예수님을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17절).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우리" 즉 누가를 포함한 바울 일행은 로마에 당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다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배에 동승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목격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다른 죄수들과 같이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85쪽).
바울은 다른 죄수들과는 달리 공동 수용되지 않고 "따로" 셋집에 있게 되었다(30절). 그것은 백부장 율리오의 주선으로 그렇게 된 듯하다.
메튜 헨리 목사님은 이 일을 요셉과 여호야긴에게 일어났던 일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갇힌 자들에게 그를 지키는 자들을 통하여 은총을 베푸신다는 사실은 곧 위로가 된다(시 106:46). 마치 요셉이 간수장에게 잘 보였고(창 39:21) 여호야긴이 바벨론 왕의 눈에 잘 보였듯이(왕하 25:27, 28)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속박으로부터 즉시 풀어 주시지는 않더라도 그가 만일 그들을 안심시키고 그 속에서도 편안하게 하신다면 그들은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그가 따로 지내면서 누구를 만나든지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은혜 안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증언하는데 어렵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에게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바울은 집이 정리되는 대로 곧바로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움직였습니다. 그는 먼저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자기가 어떻게 해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은 변명을 하기 위함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라고 합니다(20절). 즉 이스라엘이 소망하면서 기다린 메시아,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였기 때문에 쇠사슬에 매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그[바울]는 어디를 가든지 먼저 그곳에서 유대인들에게 대한 자기의 책임(전도의 책임)을 이행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그의 순종이었다. 다시 말하면 1) 자기 혈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함이 자연스럽다. 그뿐더러 2)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유대 민족에게 메시야 약속을 주셨으므로 그 약속 성취인 복음을 그들에게 먼저 전하도록 되어 있다(롬 1:16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전도의 순서는 계시에 의종한 것이다.
바울은 복음, 즉 이스라엘의 소망을 말하기 전에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19절)"라고 먼저 변명합니다. 바울이 잡힌 것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서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이 유대인들을 가이사에게 고발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자기 개인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입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뜻이 이 말에 담겨 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86쪽). 다른 나라에 나그네로 살고 있는 입장에서 이 문제는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이것을 확실히 했습니다.
바울이 죄수가 되어서 쇠사슬에 매인 까닭은 일차적으로는 유대인들이 그를 고발했기 때문입니다(17절). 그러나 궁극적인 원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었습니다. 즉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증언하기 위해서 쇠사슬에 매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죄수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서 자기 육체에 채우고 있었습니다(골 1:24).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바울이 변명한 것에 대해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17절)이 바울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바울에 대해서 그 어떤 부정적인 선입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에서 바울에 대한 편지를 받은 일이 없고 또 누가 와서 바울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를 전한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21절).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쫓아다니면서 해하려고 했던 유대인들이 로마에까지 따라오지 않은 일은 어떻게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복음을 방해하는 오염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상이 어떠한지를 듣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라고 하였습니다(22절). 이 말은 복음이 반대를 받는 것까지는 알지만 그 내용은 자세히 모르니 그 내용을 자세하게 듣겠다는 뜻입니다. 복음이 반대 받는 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86쪽).
일찍이 시므온이 예수님에 관하여 예언하기를 "비방을 받는 표적"이라고 하였다(눅 2:34). 그와 같이 예수님의 복음이 불신자들 앞에서는 비방을 받을 뿐이다. 예수를 진실히 믿을수록 반대를 받는 일도 있다(Gossner).
날짜를 정하고 그 날이 이르자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거하는 집에 많이 왔습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강론했습니다. 바울이 강론한 내용은 먼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예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서 권했습니다(23절). 당시 청중들은 구약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구약성경의 참 뜻을 밝히 해석해 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어려운 구절들은 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이 됩니다. 이런 것들은 바울이 쓴 서신에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롬 9:25; 10:19의 호세아 인용 참조).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ㄱ)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음)
바울의 강론, 즉 구약성경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들은 유대인들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즉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 것입니다(24절). 이런 현상은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말씀인 동시에 심판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복음이 심판을 포함한다는 것은 이사야 말씀에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사야를 인용해서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선포합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줄까 함이라(26-27절)" 이 말씀은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이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이때에 바울은 불신앙으로 굳어지는 유대인들에 관하여 사 6:9-10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증거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배척하는 무리를 보시고 이 성구를 인용하신 바 있다(마 13:14; 막 4:12; 눅 8:10). 이 성구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이 더욱 완악해지는 사실을 지적한다. 같은 비를 맞지만 산 나무는 더 자라고 죽은 나무는 더욱 썩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더욱 생명이 풍성해진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자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히려 완악해진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예수님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셨다고 하면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구절을 소개합니다. 이 구절들 앞에는 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 길 가와 돌 밭과 가시덤불과 좋은 땅에 뿌리는데 좋은 땅만 결실을 맺는다는 비유입니다. 좋은 땅의 특징은 씨를 받아 간직하고 그것을 생각하고 깨달아 믿고 결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비유를 해석해 주는 일입니다(마 14:16; 막 4:11; 눅 8:10). 바울은 구약성경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뜻을 밝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뜻을 열어 깨닫게 하는 것은 단순히 해석해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사람의 눈을 밝히셔서 보게 하시고 귀를 여셔서 듣게 하시고 그것을 깨닫게 하셔야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 심판은 바로 이사야가 선포한 심판입니다. 그 결과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졌습니다(28절). 그리고 이방인은 복음을 듣고 깨달아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87쪽).
이 말씀은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이 우연한 일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까닭이라는 뜻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이 예언이 신약성경에 여섯 번이나 인용되었다(마 13:14-15; 막 4:12; 눅 8:10; 요 12:40; 롬 11:8 참조).
바울의 이사야 말씀 인용과 선포는 유대인들 사이에 쟁론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29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이 말을 마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가더라" 이 사본을 참고할 때 유대인들은 쟁론하였고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다(28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담대하게 거침없이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이태" 즉 두 해를 머물며 로마의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영접하고(30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31절). 그가 로마에서 붙잡혀 있는 기간은 로마에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가 에베소에서 삼 년이나 수고하면서 가르쳤던 것처럼 이번에는 로마에서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언하여야 하리라라는 말씀은 이렇게 성취되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31절 하). 그는 복음을 전하는데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거침이 없었습니다. 주 예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이미 매인바 되었고 그 매인 것은 어떻게 보면 로마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했고 그런 바울을 예수님께서는 신비한 방법으로 보호하셨습니다. 이 보호 안에는 복음 전하는 것을 아무도 금할 수 없도록 하신 것도 포함됩니다(거침없이 ἀκωλύτως). 가장 위태해 보이지만 오히려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메튜 헨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그의 갇힘을 통해 하나님은 박해자들의 분노를 잠잠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대하는 자들이 마음을 돌리지 않으실 때는 그들의 손을 묶고 혀에 재갈을 물리신다. 네로는 잔인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로마에는 기독교를 미워하는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바울이 죄수로 있으면서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 묵인되었다. 또한 그의 설교가 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위라는 평을 받지도 않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분노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더하시며 또 인간들의 못 다 발한 분노는 억제해 버리시는 것이다"(시 76:10). 바울의 설교를 방해할 수 있는 많은 권력이 있었으나(하다 못해 그를 지키는 병사도 그의 설교를 금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아직도 그를 금하지 못하도록 섭리하시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마칩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1절)"로 마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이 마지막 말씀은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주의 교회와 주의 신실한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담대하고도 거침없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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