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7장 1-16절 |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설교하는 스데반

2024. 5. 13. 09:53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사도행전 7:1-16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성전과 율법

스데반은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땅 끝까지 이르는데(1:8)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했다고 했습니다(6:13). 율법과 성전은 이스라엘의 존재 기반입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우리에게 성경과도 같은 것입니다. 성전은 죄 사함과 은혜가 베풀어지는 곳입니다. 그것을 거슬러 말했다고 하니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과 성전은 유대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거짓 증인들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6:14)" 유대인의 존재 기반인 성전과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그 안에 담긴 모든 의미가 성취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성경이 되어 전 세계인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 됩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진 죄 사함과 베풀어진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성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되었습니다. 성전은 예수님으로 성취되어 전 세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유대인이 가졌던 틀을 부수고 전 세계로 향했습니다.

 

스데반이 가르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유민의 회당에서 스데반의 이러한 가르침을 아무도 논박하지 못했습니다(6:10). 사람들은 스데반을 잡아서 공회에 넘겼습니다. 7장에는 스데반이 공회에서 증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스데반의 증언은 구약 전체를 요약하는 긴 설교입니다. 

성전이 없던 시대에도

1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스데반은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성전에 매여 계시는 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셨다고 합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성전이 없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유롭게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은 모든 우상과 반대되는 계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상이 가득했던 메소보다미아 지역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당신님께서 참 신이심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아름다운 시설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전이 없는 이방인의 땅 갈대아 우르에서도 자유롭게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든지 택하신 종을 찾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심으로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매이시거나 갇히시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은 자기의 존재 기반을 성전에 두었으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전은 폐지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모든 기능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성전을 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성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성전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의미와 기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메소보다미아에서 아브라함에게 거기를 떠나서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3절).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던 땅을 떠나서 "이 땅"으로 옮겼습니다(4절).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땅으로 옮기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땅을 주신 것이 아니라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5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약속의 성취로 지금 그들이 사는 그 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 율법과 성전은 구약 시대 은혜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약속이었습니다. 이것들은 모형이었습니다. 이것들이 가리키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원 역사를 이루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셨지만 그 약속을 바로 성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할것이라고 하셨습니다(6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심판하시고 그 후에야 그들이 나와서 이 땅에 돌아와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7절).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시기 전에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먼저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약속하신 것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전과 율법은 구원을 위한 방도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입니다. 그 두 가지가 그들의 존재 기반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로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서 율법과 성전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례의 언약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8절). 할례의 언약은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표입니다(창 17:13). 특별히 그들의 생식활동이 복이 될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창 17:16). 이 복은 이스라엘만의 복이 아니라 천하만민을 위한 복이었습니다(창 22:17-18). 사라가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재차 말씀하심으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창 17:17-19). 이 할례도 아직 성전이 없던 시기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입니다. 

요셉을 적대한 형제들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2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3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4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5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16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요셉이 애굽에 가면서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대다수는 요셉을 적대했습니다. 그를 시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애굽에 팔았습니다(9절).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으로 사백 년 동안 있을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인 요셉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악이 하나님의 뜻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팔려간 요셉을 사용하셔서 택하신 백성을 기근에서 건지셨습니다(10-13절). 

구원자를 적대하는 백성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습니다(9절). 요셉은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 부름 받았지만 형제들은 그를 시기하고 대적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자를 항상 대적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대적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습니다. 지금은 스데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대적 받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요셉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기근에서 건지셨습니다.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셨습니다. 예수님을 사용하셔서 온 인류를 죄악에서 건지셨습니다. 스데반을 사용하셔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나중에 바울로 이어집니다. 복음의 보편성은 바울에 의해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바울은 복음을 들고 서바나까지 갑니다. 땅 끝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설교하는 스데반

일흔다섯 사람

14절에 보면 일흔다섯 사람이 애굽에 내려갔다고 합니다. 창세기 46장 27절과 출애굽기 1장 5절에는 칠십 명이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75명이라고 하는 것은 야곱의 직계 가족 외에 동행한 사람까지 계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스데반이 75명이라고 한 것은 창세기 46장 26-27절의 칠십인 역을 따라서 말한 것입니다. 칠십인 역은 그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야곱에게서 난 자들로서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온 자들의 총수는 야곱의 자부들 외에 육십육 명이더라 그러나 애굽에 요셉과 함께 있는 그의 아들들이 아홉 명이었으니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온 가족은 칠십 오명이더라" 

세겜

16절에는 세겜을 아브라함이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세겜을 야곱이 샀다고 나옵니다(창 33:19). 아브라함이 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세겜에 이르러서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창 12:6-7)으로 보아 아브라함은 아마도 그 땅을 샀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하몰 사람드이 나중에 그곳을 점령했을 수도 있습니다. 야곱이 다시 그 땅에 이르렀을 때는 아브라함의 시대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그 땅을 다시 샀을 것입니다. 

야곱이 장사된 곳

또 한 가지 설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야곱의 시체는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서 산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창 50:12-13). 그런데 스데반은 야곱이 세겜에 장사되었다고 합니다(16절).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의 해골이 세월이 지난 후에 세겜으로 이장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야곱과 요셉의 해골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들의 믿음에서 나온 유언을 실행한 것입니다. 이장은 당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야곱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돌보실 때 자기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소망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장을 명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의 해골이 세겜으로 이장되었다고 볼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은혜를 드러내는 스데반

스데반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매이시는 분이 아님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전과 율법은 구원의 방도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은 것은 율법과 성전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들의 종교는 약속과 그 성취로 이루어지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얽매여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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