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7장 17-36절 | 백성들이 거절하던 그 모세를

2024. 5. 14. 14:1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7:17-36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스데반의 설교 맥락

    스데반을 고소한 유대인들은 성전과 율법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데반이 전한 복음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하고 논쟁했습니다(6:9). 그러나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6:10). 성령께서는 성경의 저자이십니다. 성전과 율법의 의미에 대해서 율법의 말씀을 쓰신 저자가 직접 말하는 것을 당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데반을 공회에 고발했습니다(6:12). 그 결과 스데반은 공회에서 유대인들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성전과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약속과 성전

    7장 앞 부분에서 스데반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소에 매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7:2).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 안에 성전에 대한 것이 함의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7:7)" 그러므로 성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의 성취로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성전 이전에 약속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또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지 성전의 제사가 이룬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약속의 성취를 누리는 것이지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셉

    스데반의 설교는 요셉으로 이어집니다. 요셉은 당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구원자로 세우신 요셉을 형들은 시기했습니다(7:9). 시기해서 애굽에 팔았습니다.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온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7:11) 그들을 기근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자를 대적하고 그를 팔아 넘기는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셉의 이야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가 함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대적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로마 당국에 넘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택하신 모든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세겜으로의 이장

    야곱과 열두 지파를 구성한 열두 아들들은 애굽에서 죽었습니다(7:15). 그러나 그들은 세겜으로 옮겨졌습니다(7:16). 약속의 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세겜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입니다(창 12:7). 그곳에 야곱과 각 지파의 조상들의 뼈가 묻혔습니다. 그들의 뼈를 애굽에 그대로 두지 않고 세겜으로 옮긴 것은 그들이 비록 죽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인 것을 함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세겜에 묻히면서 소망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땅을 주신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바라볼 수 있는 약속이어야 합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모세

    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약속하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웠습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실하게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여 많아진 것입니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이 두려워할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도 같고 바다의 모래와도 같으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 호의적이었던 애굽이 돌변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세워졌습니다. 알지 못했다는 것은 적대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적대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습니다. 태어난 어린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19절). 그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20절).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는 바로의 집에 들어가서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가 하는 말과 하는 일이 능했습니다(22절). 이스라엘 중에서 그만한 인재가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 받을 수 있는 교육 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자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의 나이가 사십이 되었을 때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려고(ἐπισκέπτομαι) 했습니다(23절). 여기서 돌보다는 말의 헬라어는 찾아가서 보다, 심방하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파카드(פָּקַד)입니다. 파카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다고 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가진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모세를 대적함

    그런데 모세는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행했습니다. 원통한 일 당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압제 받는 그 사람을 위하여 원수를 갚은 것입니다. 그는 원수를 갚아서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24절).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구원하려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모세에게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27-28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도망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순종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우셨다고 쉽게 그에게 순종하고 그러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세우시는 사람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

    스데반은 모세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방식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을 바라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구원은 정치적인 구원입니다.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건져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뿐더러 만약 그런 지도자가 나타났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날 모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교 안에 당시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잘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십 년이 차매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0절에 보면 사십 년이 찼다고 합니다. 사십 년이 찼다는 것은 그동안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실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을 받고 탄식하는 소리가 하늘에 상달된 때입니다. 깊은 괴로움과 탄식이 차고 넘친 때입니다(34절). 그렇게 괴로움을 당하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탄식하며 구원자를 바랐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백성들이 거절하던 그 모세를

    거절하던 그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라고 하면서 그를 거절했습니다(35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절당한 바로 그 모세를 이스라엘의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셨습니다(35절). 여기서 속량하는 자는 구원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사람으로서 이런 칭호를 받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었다면 속량하는 자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백성 편에서 중보하면서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나님께 구한 것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달라는 것입니다(출 32:32). 자기가 대신 형벌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습입니다(눅 24:21).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모세가 백성을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공회 회원들은 기사와 표적이라는 말에서 예수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속량하는 자라는 말에서도 예수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약속의 성취를 말하면서 모세를 들어서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절하던 그 예수님을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이 말은 당시 공회원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입니다(마 21:23). 그들은 모세를 대적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을 대적함으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거절하던 그 모세를 세우셨듯이(35절) 백성들이 거절하던 그 예수를 주님이요 구원자요 속량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으로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가리키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즉 성전과 율법이 가리키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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