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7장 54절 - 8장 8절 |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스데반과 유대와 사마리아로 전해지는 복음

2024. 5. 16. 16:34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목차


    사도행전 7:54-8:8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피고인으로서 오히려 죄를 지적하는 스데반

    스데반은 성전과 율법을 거스른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6:13). 스데반은 피고인의 신분으로 공회 앞에 섰습니다. 공회는 이 땅의 법정입니다. 그런데 시야를 넓혀서 하늘 법정을 생각할 때 피고와 원고가 바뀌게 됩니다. 공회에서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스데반은 피고인이었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 그는 원고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는 공회 앞에서 그들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들이고(7:51) 그들이 선지자를 박해한 자들이요(7:52)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고(7:53) 오히려 그들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지적이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스데반(55절)은 성경을 성경 저자의 의도대로 충실하게 해석하고 적용했습니다. 

    마음에 찔려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의 말을 들은 공회원들은 스데반의 말이 마음에 찔렸습니다(54절). 마음에 찔렸다는 말(διαπρίω)은 원어의 의미를 살리자면 톱으로 잘려 산산조각이 났다, 칼로 마음이 베어져서 두동강이 났다는 뜻입니다. 공회는 이전에도 이렇게 반응했습니다(5:33). 5장 33절에서는 "크게 노하여"라고 번역했는데 54절에 나온 말과 같은 말입니다. 스데반의 말을 들을 사람들은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이를 갈기까지 했습니다(54절). 

    하늘 성전을 체험한 스데반

    반면 스데반은 성령님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영안이 열렸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55절). 성전을 거스른다고 고발을 당한 스데반은 하늘의 참 성전 앞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그것을 분하여 이를 갈고 있는 공회원들에게 증언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절)"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높아지심을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공회원들과 군중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57절). 일제히 달려들어서 그를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58절). 이런 공회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증언했을 때에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습니다(5:33).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높이셔서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5:30-31). 그러자 공회는 듣고 크게 노해서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했습니다(5:33). 물론 그 때에는 가말리엘의 중재로 채찍질만 하고 놓아주었습니다. 하지말 이번에는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높아지셨다는 증언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높아지셨다는 증언에 대해서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57절). 그 증언을 혐오하고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한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이 메시아시라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이 말은 신성모독으로 들렸습니다. 감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우편에 설 수 있는가, 그것도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이들은 이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자를 거부하고 반대했던 조상의 후손이요 반역의 종자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아무리 구약성경 전체를 풀어주었어도 이들은 그것이 진리인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는데

    공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습니다(요 18:31). 그렇기 때문에 공회의 재판 후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것은 공회가 불법을 자행한 것입니다. 무리가 격동해서 스데반을 돌로 쳤고 공회는 그것을 묵인했을 것입니다. 공회는 묵인하지 말고 보호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되는 사울도 그 무리 안에 있음

    스데반을 죽이는 무리 안에 나중에 바울이 되는 사울도 있었습니다(58절). 그 당시 바울은 스데반이 죽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8:1).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켰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은 스데반의 말을 들을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데반의 말이 신성모독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증인이 먼저 돌로 치라고 합니다(신 17:17). 이렇게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자들과 같은 무리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8:1).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스데반

    스데반은 돌에 맞으면서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59절)" 이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와 같은 기도(눅 23:46)입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함으로 하늘 성전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이제 자기 영혼이 예수님께 올라간다고 확신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님으로 예수님과 신비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스데반과 유대와 사마리아로 전해지는 복음

     

     

    이어서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절)"라고 합니다. 이 기도도 예수님의 기도(눅 23:34)와 같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반역 죄를 지적했지만(7:51-53) 그들을 원수로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스데반이 스스로의 의로 예수님을 증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철저하게 은혜 받은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스데반이 잘나서 증언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스데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셨기 때문에 증언한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은혜를 입은 사람이고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은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은혜 받은 사람으로서 은혜 입지 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담긴 기도입니다. 스데반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고난을 당신님의 고난으로 여기심

    나중에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스데반의 죽음을 포함한 교회에 대한 핍박을 자기 자신에 대한 핍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에서 당하는 박해를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님의 박해로 여기십니다. 

    신자의 죽음

    스데반의 죽음을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 말을 하고 자니라(60절)" 신자의 죽음은 비참한 결말이 아닙니다. 잠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듯이 부활의 소망을 가득 안고 잠자리에 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쉽니다(계 6:11).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합니다. 부활해서 영광 중에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과 유업을 받게 됩니다(시 16:6).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스데반이 그렇게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땅히 여기더라라는 말은 죽이는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했다(συνευδοκέω)는 뜻입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과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스데반은 은혜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죽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7:60). 자기를 죽인 사람들은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바울이 된 사울은 그 당시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과 동류였습니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이런 무리가 잠잠했었는데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 갑자기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이 죽는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된 것입니다(1절).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신자들을 찾아 잡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선봉에 사울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자를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옥에 넘겼습니다(3절). 그 결과 교회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8장에 이르러서야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가게 되었습니다(1:8). 

    경건한 사람들이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었습니다(2절). 박윤선 목사님에 의하면 그들은 믿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이 죽는 그날에 교회 전체에 극심한 박해가 가해졌기 때문입니다(1절). 잡혀 죽을 위기에 놓인 신자들은 스데반의 시신을 수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리 있는 해석입니다. 여기 경건한 사람들(εὐλαβής)은 선을 붙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종종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번역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나오는 경건한 사람들은 아직 교회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스데반을 죽인 일은 구약 율법으로 보더라도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스데반은 무죄하게 죽은 것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서 흩어졌습니다. 박해를 피하면서도 본분을 잃지 않았습니다. 복음 때문에 박해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복음 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4절).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그들은 실로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 전파되는 복음

    복음은 유대지경을 넘어서 사마리아 성에 당도했습니다. 사마라아에 복음을 전한 사람은 빌립입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은 곧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5절). 그리스도를 전하자 표적이 뒤따랐습니다(6절). 뒤따르는 표적은 빌립의 말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즉 빌립이 전하는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진리를 뒤따르는 표적이 확증했습니다. 사람들은 빌립의 말을 듣고 표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이심을 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6절 하).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의 일들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습니다.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고쳐졌습니다(7절). 불치의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8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곧 땅 끝까지 복음이 임할 것이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놀랍게도 박해의 선봉에 섰던 사울이 맡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토록 놀랍고 신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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