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3. 20:09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18:1-14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제사장 직임
이스라엘에 세워지는 네 가지 직임 중에서 재판관과 왕이 앞에서 제시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제사장과 선지자가 나옵니다. 제사장의 직임을 이야기하면서는 레위 지파에 관해서 말씀합니다.
레위지파
레위지파의 책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소에서 맡은 일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율법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레 10:11; 신 10:8; 33:10; 대하 15:3; 17:8 이하; 35:3; 느 8:7-9). 율법을 가르치는 일 안에는 사법 관련 일(17:9; 21:5)과 군대 관련 일(20:2-4)이 포함됩니다.
하나님과 직접 연관된 일을 하는 레위 사람들
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
3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소의 일과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일 모두 하나님과 직접 연관된 일입니다. 하나님과 연관된 일을 했지만 생계에 있어서는 다른 지파를 의지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참 역설적입니다. 다른 지파는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의 소출로 소득을 얻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생계를 유지할 자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생계를 유지할 자원을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생계를 의존했습니다.
각 지파 중에 흩어져 살면서
레위지파는 모여서 살지 않고 각 지파 가운데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들은 각 지파 중에 흩어져 있는 48개의 성읍과 목초지에 거주했습니다(민 35:1-8; 수 21장). 흩어져 살면서 각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각 지파 사람들이 드리는 여호와의 화제물(1절)과 제물의 앞다리와 두 볼과 위를 받았습니다(3절). 또한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처음 깎은 양털을 받았습니다(4절).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레위인은 생계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믿음과 순종이 레위인의 생계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있는지를 아는 방법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레위인의 기업이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2절).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의 기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레위지파가 넉넉하게 복을 누린다는 것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복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레위인이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길 때 레위지파는 더욱 풍성한 복을 누렸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등한시 할 때 레위지파는 가장 먼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느 13:10 참조).
제사장 직임의 신학적, 사회적 핵심
백성들이 바치는 제물 중에서 제사장이 받을 몫이 3-4절에 나옵니다. 이 부분은 레위기 7장 28-36절과 민수기 18장 8-32절에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 법령을 다시 언급하면서 이전에 나온 법령의 핵심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이 5절에 나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택함 받음
하나는 레위지파가 이스라엘 중에서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레위지파의 신분 때문입니다. 신명기 7장 6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레위인을 택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도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들로서 하나님을 의존해야 함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김
다른 하나는 레위지파의 업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섬기는 업무를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데 그 업무를 특별하게 선택 받은 레위지파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보면서 그들이 생계를 위해서 땅을 경작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처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요 자기들도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인 것을 항상 생각해야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받은 직임
이것이 제사장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훈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벧전 2:9).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려져서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 받은 사람들로서 세상이나 생계를 위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레위인 제사장들을 보면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교훈입니다.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6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7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
레위인 중에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다른 레위인들은 그를 평등하게 대우해야 했습니다(6-7절). 이미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섬기고 있었던 레위인들은 자기들이 받는 유익에서 자기들이 받는 것과 동일한 몫을 이주해 온 레위인에게 주어야 했습니다(8절). 각 지파에서 하나님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심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레위인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이전 소유도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님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의 소원을 기뻐하시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 4:8)"라고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격려합니다. 참으로 기쁜 것은 우리는 언제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기만 하면 가까이서 섬기는 사람들이 받은 은혜를 동일하게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놀라운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에게 땅을 분배하지 않은 것의 의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직자에게 땅을 분배하지 않은 것은 다른 나라들의 풍습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애굽은 자기들의 제사장들에게, 즉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막대한 토지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큰 토지의 소유자 즉 지주면서 사회의 고위층이었습니다(창 47:22). 그러나 이스라엘의 성직자들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직자들은 지주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잘 사는 길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가난하게 하고자 하심이 아님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굳건해 지면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누구보다 풍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인구의 비율상 그렇습니다. 십의 일조를 받을 때 레위인 장정 한 명 당 이스라엘 백성의 비율이 33명이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 평균 소득의 세 배의 소득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생계를 의존한다고 해서 이들이 가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오히려 백성들보다 더욱 풍성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의 사역자들
이 시대 교회 사역자들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레위인이나 제사장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친다는 측면에서 직임이 비슷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모든 좋은 것들을 함께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물질적 필요를 성실하게 공급해야 합니다(딤전 5:17-18; 고전 9:13). 바울의 경우에는 이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고전 9:9-12).
예외를 원리처럼
어떤 기독교 단체들은 성경 전체에 나오는 이런 원칙들을 준수하지 않고 오히려 바울의 예외를 원칙인 것처럼 사역자들에게 적용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믿음 사역이라고 명명합니다. 자기 생계를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해결하는 것이 믿음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 사역은 특수한 경우에 이루어지는 사역입니다. 예외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이고 원칙은 아닙니다. 이것이 원리 원칙인 양 사역자에게 믿음 사역을 강요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불순종입니다.
두 가지 불순종
오늘날에는 두 가지 불순종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한 쪽은 사역자들의 불순종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의존성을 버리고 종교 엘리트로 군림하면서 부를 쌓고 권력을 휘두릅니다. 이것은 엄연한 불순종입니다. 다른 한 쪽은 많은 교회들의 불순종입니다. 사역자들에게 믿음을 강요하면서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최저 생계비도 책임지지 않는 교회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것도 엄연한 불순종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좋은 말씀 사역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선지자에 관하여 말씀하기 전에
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9-22절까지는 선지자를 말씀합니다. 만약 재판관들과 왕들, 제사장들이 자기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해서 나라가 잘 돌아간다면 선지자는 크게 할 일이 없습니다. 재판관들이 정의를 잘 유지합니다. 왕이 하나님의 법대로 다스립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법을 잘 가르쳐서 백성들이 믿음으로 삽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이 나와서 별로 전할 말이 없습니다.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지자 직임이 가장 나중에 나옵니다.
선지자가 필요한 상황
그러나 만약 재판장이 정의를 굽게 한다면, 왕이 하나님의 법대로가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고 백성들을 착취한다면,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치지 않아서 백성들이 방자하게 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나라가 망하기 전에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이교도들의 행위
모세는 선지자에 대해서 가르치기 전에 먼저 이교도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9절). 이교도들이 10-11절에서 언급된 가증한 행위를 행하는데 그것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받지도 말고 용납하지도 말라고 합니다(11절). 이교도들이 이렇게 행하는 이유는 기복방액(祈福防厄)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즉 복을 빌고 액을 막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두는 것입니다(10-11절). 이런 형태의 사악한 술법은 현대에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이런 자들에게 의존하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복을 위하고 액을 막기 위해서 이런 자들을 찾는 것입니다.
가증한 죄들
사람은 앞날을 미리 알고 싶어합니다. 앞날을 미리 알려고 하는 이유는 앞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나쁜 일을 미리 알고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대로 만사형통을 이루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영적 세계를 마음대로 조종해서라도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극도로 높이고 자기만을 위하는 마음, 이것이 죄입니다. 이 죄는 자기를 위해서 자기 자식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해서 죽입니다. 참으로 극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런 죄를 범했기 때문에 땅에서 쫓겨났습니다(12절).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תָּמִים)
모세는 13절에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고 권면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전하려는 모든 성향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타밈(תָּמִים)입니다. 타밈은 완전하다는 뜻과 함께 비난할 것이 없다(blameless)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이 되려는 모든 죄성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들
이 계명들은 제5계명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술을 쓰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들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를 무시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가 아니라 재판관과 왕과 제사장들입니다.
선지자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
우리는 선지자의 직임에 대해서 많은 경우 오해합니다. 선지자가 앞날의 길흉을 미리 말하는 사람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선포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앞날의 길흉을 미리 알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앞날을 미리 알려고 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회개하고 돌이키려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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