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9장 14-29절 | 선교적 존재인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

2024. 4. 18. 12:1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29:14-29

    찬송가 37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언약의 지속성

    신명기 29장에는 다시 언약이 나옵니다. 10-15절에서는 언약관계의 특징을 말씀합니다. 10-12절에서는 언약의 공동체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14-15절에서는 언약의 지속성을 말씀합니다. 

     

    14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15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이니

     

    언약 안에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가 포함됩니다(15절). 15절에서는 "오늘"이 두 번 나옵니다. 오늘 언약에 참여한 자와 오늘 참여하지 않은 자 모두 언약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 번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이 "오늘" 맺는 언약은 이들의 자손들과 이들 때문에 언약 안으로 들어올 이들을 포함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이 언약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언약 안에 포함된다는 것은 우리 자손들과 우리 때문에 언약 안에 들어올 사람들이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언약은 지속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들어올 때까지(계 7:9),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선교적 존재인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

    우상을 제거하고

    16   (우리가 애굽 땅에서 살았던 것과 너희가 여러 나라를 통과한 것을 너희가 알며
    17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
    18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20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버리시되
    21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언약의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

     

    언약에서 첫 번째 지켜야 할 것은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께만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애굽에서 갖가지 우상들을 보았습니다. 또한 여러 나라들을 통과하면서도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보았습니다(16-17절).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본 그들의 눈은 본 것으로 그치지 말고 깨닫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었으면 이제는 추악한 우상을 볼 때 마음으로 그것을 가증하게 여겨야 합니다(17절). 우상을 혐오하고 경멸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에 빠지면

    그런데 우상은 부패한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가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력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참혹한 결과를 알면서도 우상에 빠지고 자기가 우상 때문에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그 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이렇게 늦게 깨닫는 이유는 우상 숭배 때문에 감각이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무감각한지 저주의 말을 들어도 그것이 자기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19절). 이것이 심판 당할 자의 증상입니다. 건짐을 얻을 자는 저주의 말씀에 두려움을 느끼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킵니다. 하지만 우상 숭배로 무감각해진 사람은 저주의 말을 듣고도 자기는 아니라고 하며 그냥 넘겨버립니다.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죄는 자기 눈으로 본 것(29:2-3)과 몸소 경험한 것(23:5-6)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를 사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20절). 왜냐하면 이 죄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이런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서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그들은 그것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 입는다는 악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죄를 가리켜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런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마 12:22-32). 히브리서 기자도 그러한 죄는 대놓고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 하는 죄라고 하면서 정죄합니다(히 4:4-6).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구별해 내십니다(21절). 축복과 저주는 공동체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개인의 책임도 엄중하게 물으십니다. 공동체가 썩어 있다는 것이 나의 죄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공개적 재앙

    22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의 자손과 멀리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24   여러 나라 사람들도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25   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26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27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
    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하여 행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행하신 것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이들이 보는 데에서 이루어집니다(22절 "보며"). 하나님의 백성은 공개된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순종으로 민족들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고(28:10) 반대로 불순종으로 저주를 당하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습니다(28:37). 이스라엘이 공개되는 이유는 그들의 존재 목적 안에 선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민족들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4:5-8 참조). 

    영적 소돔과 예수님의 십자가

    그러나 이스라엘은 민족들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놀라게 할 것입니다(24절). 민족들이 놀라서 질문하는 것은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고 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 중에서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된 것입니다(28:37). 그런 예가 바로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진노와 멸망의 모델이 될 것을 경고합니다(23절).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을 가리켜서 영적으로 소돔이라고 합니다. 애굽이라고도 합니다. 소돔과 애굽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곳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죽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자기 백성들의 손으로 넘겨져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선교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나라 

    신명기 4장 5-8절과 29장 22-28절은 짝을 이룹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서 선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서 숭고한 윤리적 모본을 보이면 여호와의 이름이 온 이방 중에서 찬양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면 이방의 시험거리로 전락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28절)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들의 실패로 하나님의 언약이 그대로 작동되는 것을 이방인들은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민족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불길한 예언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불길한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이 모든 말씀은 불길한 결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불길한 결말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을 압박합니다. 저주가 언제 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 가운데 살게 됩니다. 운명론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처방은 미래는 하나님께 속하여 감춰져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29절). 내가 충실해야 할 것은 현재입니다.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고 그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함

    에스겔 선지자는 심판이 실제로 임한 후에 이스라엘에게 임한 심판이 그들이 행한 그대로 임했다고 선포합니다. 그들은 언약 그대로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언약을 범해서 심판을 당하고 있는 중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유일한 의지처입니다. 비록 심판 중에 있지만 회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우리에게 회복을 주십니다(겔 36:19-28). 심판이 정해진 것 같지만 심판 이후에 회복도 정해진 것입니다. 미래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진노가 자기에게 쏟아지는 중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저주를 피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은 이 모든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저주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무덤을 열고 나와 다시 살아났습니다. 마른 뼈와 같았지만 거기에 근육과 살과 가죽이 붙어서 굳건하게 섰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겔 37:11-12). 에스겔은 이것을 예언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 마음을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겔 11:19).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모든 저주를 담당하시고 죽임 당하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교회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새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언약의 저주, 율법의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19절).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저주를 친히 담당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피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목사입니다.

    현재 자비량으로 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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