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6. 17:56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33:18-34:12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모세의 축복 순서
모세의 축복에서는 출생 순서가 뒤집혀서 나옵니다. 레아의 아들 중에서 넷째인 유다가 먼저 나오고 셋째인 레위가 나중에 나옵니다(7-11절). 이어서 라헬의 아들이 나오는데 막내인 베냐민이 먼저 나오고 그 형인 요셉이 뒤에 나옵니다(12-17절). 이어지는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아의 아들로서 여섯째인 스불론이 먼저 나오고 다섯째인 잇사갈이 나중에 나옵니다(18-19절).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자인 에브라임이 먼저 나오고 장자인 므낫세가 나중에 나옵니다(17절).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하나님의 역사는 자주 뒤집힙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이 있습니다(마 19:30, 20:16). 이것은 사람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롬 9:16).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스불론과 잇사갈
18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밖으로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19 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스불론과 잇사갈은 약속의 땅에서 북쪽에 위치합니다. 그 지경은 이스르엘 평원을 따라서 바다와 해안을 포함합니다. 밖으로 나감은 바다와 해안을 가리키고 장막에 있음은 이스르엘 평원을 가리킵니다.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는 스불론이 바다와 해안에서 풍요로움을 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잇사갈은 평원에서 나오는 각종 소출로 장막에 있으면서 풍요로움을 누릴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기뻐할 것입니다. 19절에 나오는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는 자색 염료를 뜻합니다. 뿔고둥이라고 불리는 갑각류에서 소량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값이 상당히 비쌌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서
복은 하나님께서 나를 두신 곳에서 자연스럽게 임합니다. 우리에게 기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기업을 은혜로 받습니다. 그 기업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기업을 주셨는지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스불론에게 주신 것은 잇사갈에게 주신 것과 다릅니다.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풍성한 복을 받습니다.
20-25절의 구조
20-25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갓(20-21절)과 아셀(24-25절)은 레아가 실바를 통해서 난 아들들입니다. 이들이 단(22절)과 납달리(23절), 즉 라헬이 빌하를 통해서 난 아들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갓과 아셀의 축복은 두 절이 할당되고 단과 납달리에 대한 축복은 한 절이 할당됩니다.
갓
20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하게 하시는 이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21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입법자의 분깃으로 준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수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갓에 대해서 축복하면서 모세는 하나님께 찬송을 돌립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 갓은 전쟁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사자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20절 하). 갓은 요단 동편에서 먼저 기업을 받았습니다(21절). 그것은 입법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기업을 받고 요단 강을 건너가서 선봉에서 싸웠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공의와 법도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21절 하).
먼저 받은 자는
그들은 먼저 받았다고 그것을 누리고 편안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자와 같이 앞장서서 나가 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원칙입니다. 용맹한 자, 먼저 받은 자가 더 앞장 서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형제들 중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단
22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단에 대한 축복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짧고 그 안에 들어있는 말이 단과 연관 짓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자의 새끼는 앞에서 갓을 암사자에 비유한 것의 연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은 갓보다 규모가 작을 것이지만 힘이 센 용사로 묘사됩니다.
심판하다
창세기 49장 16절에서는 단이 백성을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심판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딘(דִּין)입니다. 단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언어유희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심판한다는 말이 없는데 이것은 갓이 여호와의 공의와 법도를 행할 것이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을 것입니다(21절). 갓에게 함축되어 단에게까지 연관된다는 의미입니다.
바산과 뱀
바산은 한 번도 단의 지경 안에 놓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9장 17절에 보면 단이 독사로 묘사됩니다. 이것과 바산이 연관됩니다. 우가릿어로 뱀은 '바단'입니다. 바산과 비슷한 발음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이미지는 길섶에서 나오는 뱀이고 여기서는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 새끼입니다. 어느 정도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뱀과 사자 새끼
단이 왜 자꾸 뱀과 연관되는지는 감춰져 있습니다. 뱀은 좋지 못한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축복의 맥락이라는 것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축복의 맥락에서 단은 북쪽에 있는 사자 새끼입니다. 창세기 49장 9절에 보면 유다를 사자 새끼라고 묘사합니다. 유다는 남쪽에 있는 사자 새끼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스라엘은 남쪽과 북쪽에 있는 사자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묘사인가
단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7장 5-8절에서 단 지파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단 지파는 혼합주의에 빠졌습니다. 레위인 제사장을 자기들 임의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제사장은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삿 18:30-31).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심판은 북쪽으로부터 임합니다(렘 1:13).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고 고초를 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상숭배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바산과 뱀과 사자 새끼가 연결됩니다. 특별히 바산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이기도 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선전포고를 하신 장소입니다(마 6:13-20). 그곳은 대대로 우상이 세워진 자리입니다.
납달리
23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3)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
납달리가 받은 땅도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갈릴리 지방에서도 위쪽입니다(수 19:23-39). 납달리는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합니다. 납달리 땅은 갈릴리 바다와 접해 있는 풍성한 땅입니다. 서쪽은 바다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라는 말씀은 바다 남쪽을 차지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납달리는 복을 받아서 바다 북쪽과 서쪽, 남쪽을 차지하여 번성할 것을 말씀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사역하신 것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하다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하셔서 거기를 주무대로 다니시는 것입니다. 그 복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과 치유의 혜택을 받는 복입니다.
아셀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셀이라는 말 안에는 복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름 뜻에 걸맞게 아셀은 더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셀의 땅은 기름집니다. 특히 감람나무가 많이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름에 잠길지로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24절 하). 아셀이 받은 풍족한 것들은 잘 보호되 것입니다. 문빗장이 철과 놋으로 단단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이러한 복은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은 즉시 빼앗긴다면 그 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누리려면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문빗장을 채워주셔야만 합니다. 특별히 "사는 날을 따라서" 즉 사는 날 동안 계속 보호해 주셔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의 행복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스라엘이 여수룬인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께서 위엄으로 그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26절). 27절에도 복의 핵심이 나옵니다. 복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소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 복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팔,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붙드시고 받치십니다. 그렇게 하시고 모든 대적들을 쫓으시며 멸하십니다.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안전을 바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전을 누릴 수 있습니다(27-28절).
이스라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삽니다. 생명수 샘이 흐르는 곳에 삽니다.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곳에 삽니다. 그곳은 땅에서 하늘에서 생명의 풍성함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행복은 바로 하나님입니다(29절). 하나님을 떠나면 행복에서도 떠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을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받는 특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모세의 축복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복의 복을 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약속의 땅을 보이심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부르심을 받습니다. 부르심과 동시에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그 임무는 이제 모압 평지를 지나서 느보 산에서 마무리됩니다. 느보 산은 아비람이라고 불리는 요단 동쪽 지역에 속합니다(32:49). 거기에서 느보 산은 그 꼭대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중에서 하나였을 것입니다(3:27 참조). 여기에 오르면 요단 강 서쪽에 있는 약속의 땅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마도 현재 제벨 에스 시야가(Jebel Es-Siyagha)로 불리는 곳으로 추정됩니다.
모세는 먼저 거기에서 북쪽을 봅니다. 길르앗 온 땅과 그 북쪽에 있는 단을 먼저 봅니다(1절). 그 후에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요단 서쪽의 북쪽 지역을 봅니다. 바로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을 봅니다. 그 후에 더욱 왼쪽으로 내려가서 유다 온 땅을 보고 그 아래 네겝을 봅니다. 그렇게 하고 왼쪽으로 돌면서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와 소알을 봅니다. 북쪽으로 시작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온 땅을 훑어 본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모세의 죽음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모세는 이미 요단 강 동쪽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약속은 이미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성취된 것을 경험한 모세는 아직 남은 땅을 바라보면서 사역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건너가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4절).
이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취된 것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을 바라보면서 그 성취를 소망합니다. 소망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모든 것을 놓고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모세의 사명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끝났다는 것은 여러 모로 중요합니다(6절). 모세는 굉장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지도자가 약속의 땅에 까지 들어갔다면 모세의 최후는 좋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모세를 우상처럼 숭배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세가 묻힌 곳을 알았더라도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일들을 미리 차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는 한 사람이 다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어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그는 건강 상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의 사명이 다 한 것은 그의 육체의 기능이 다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역을 내려 놓았습니다. 더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내려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성들의 애곡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백성들은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30일을 애곡했습니다(8절). 그들이 들은 모세의 설교는 모세의 유언처럼 되었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말이 된 것입니다. 유언은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불효하던 자식이라도 부모의 유언은 지키려고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죽음으로 모세의 설교에 힘을 더하셨습니다. 또한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을 발휘합니다. 모세의 죽음은 이제 언약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언약을 내용으로 하는 유언에 따르면 복을 받게 되지만 유언을 따르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히 9:16-22).
여호수아에게 안수함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모세는 죽기 전에 이미 여호수아에게 안수했습니다. 9절 안수는 원어로 두 손을 올렸다는 의미입니다. 안수하자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은 여호수아에게 이양되었습니다(9절). 안수는 이런 의미입니다. 모세의 지도력과 지혜는 여호수아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모세를 따랐듯이 여호수아를 따르면 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였습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10절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모세와 같다는 것은 첫째,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당시 최강대국인 애굽의 왕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넷째, 그것을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행한 것을 뜻합니다. 이 네 가지 측면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8장 15절과 18절에 보면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을 약속합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에 합치되어야 합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분으로 하나님을 항상 대면하여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가졌던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형입니다. 실체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죄많은 땅에 보내신 분이십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과 온 땅에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행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다 보고 듣고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하셔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나중에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께 나타납니다. 나타나서 출애굽에 관해서 대화를 나눕니다(눅 9:30-31). 예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시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신 18:15-19; 눅 9:35). 그렇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인자가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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