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4. 11:49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아모스
목차
아모스 8:1-14
찬송가 507장 저 북방 얼음 산과
7장 맥락
하나님께서는 목자면서 유다 사람인 아모스를 북이스라엘로 보내셔서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듣지 않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잃어버린 양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목자의 직업을 가진 아모스, 유다 사람 아모스를 그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유다 사람을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이 혼합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다는 아직 성전에서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 경제적으로 부강했습니다. 그래서 더 교만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해졌기 때문에 자기들이 여호와 신앙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북이스라엘로 보내신 것은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7:15). 그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를 여로보암에게 고발하고 아모스에게 예언을 못하게 했습니다(7:10-13).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주된 정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2절).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인데 특별히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선포를 듣고 돌이키지 않은 죄 때문입니다.
여름 과일 한 광주리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3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는 아모스에게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이십니다(1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먼저 보이시고 일을 행하십니다(3:7). "여름 과일"은 다 익은 과일입니다. 다 익었기 때문에 나무에서 따서 추수를 해야 하는 과일입니다. 그 추수를 가리켜서 하나님께서는 "끝이 이르렀은즉"이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이 말씀은 과일이 다 익어서 나무에서 따야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다 차서 그 죄에 대해서 심판을 내리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2절 하)은 용서를 안 하시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신다기보다 그들의 죄가 꽉 찼기 때문에 더 이상 용서를 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계속 용서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번 더 용서를 한다면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실로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죄가 꽉 찼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을 당하게 되는데 그 심판은 전쟁의 참화를 겪는 것입니다.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하고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너무 죽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울지도 않고 잠잠히 시체들을 치운다고 말씀하십니다(3절). 참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인데 그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여호와 신앙을 더럽혔기 때문이고 더 큰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7:10-17).
착취가 만연함
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4-6절은 이스라엘이 범한 죄를 지적합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보다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들려야 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삼키고 땅의 힘없는 자들을 망하게 했습니다(4절). 힘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착취해서 망하게 한 것입니다.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와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는 당시 사람들이 여호와 종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월삭과 안식일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우선 월삭은 매달 돌아오는 첫째 날입니다. 그 때에는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모든 영업하는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민 28:11; 왕하 4:23). 안식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에는 일하면 안 되었습니다. 월삭과 안식일에 일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그 날 우리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신 날들입니다. 그런데 그 날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싫어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싫어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돈을 사랑했습니다.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이 말씀에서 에바는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약 22리터가 한 에바입니다. 세겔은 무게를 재는 단위입니다. 은으로 하면 약 10-13g이 한 세겔이었습니다. 에바와 세겔은 어디서든지 표준에 따라야 했습니다. 정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에바와 세겔을 조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를 쌓았습니다. 거짓 저울로 착취하고 빼앗은 것입니다.
에바와 세겔을 마음대로 정하는 자들은 힘 있는 자들입니다. 즉 거짓 저울로 속이는 자들은 힘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 힘 있는 자들이 속여서 가난한 자들, 힘 없는 자들을 착취했습니다. 그 결과 가난한 자들은 더 가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난한 자들을 삼키는 것이고 힘없는 자들을 망하게 하려는 것(4절)입니다. 그 결과는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는 것,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는 것입니다(6절). "찌꺼기 밀을 팔자"라는 것은 자기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인데 힘없는 자에게 먹을 것이 없으니 그것을 팔아서 이익을 보자는 뜻입니다. 착취 끝은 먹을 것이 없는 자를 착취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끝까지 갔습니다.
십자가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당할 고통
7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8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9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7절에는 야곱의 영광이 나옵니다. 이 영광이라는 말은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당시 앗수르의 일시적인 권력 공백 때문에 이스라엘과 유다가 강성하게 된 것을 배경으로 합니다. 야곱은 높아졌습니다. 그 높아짐으로(בִּגְא֣וֹן) 여호와께서는 맹세하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는 내용은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잊지 아니하리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의 높아짐에서 나오는 행위입니다. 즉, 앞에서 나온 힘있는 자들의 착취같은 것들입니다.
힘있는 자들은 자주 착각합니다. 자기들이 착취하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착취가 합법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거짓 저울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합법적인 것으로 보여도 여호와께서 그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이 말씀은 힘있는 자에게는 무서운 말씀이요 힘없는 자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악인들의 모든 행위를 잊지 않으시고 심판하실 때에 땅은 떱니다. 그 땅의 모든 주민은 애통하게 됩니다. 강이 넘쳐서 땅을 덮치듯이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휩쓸어 버리실 것입니다(8절). 그 날은 해가 대낮에 지는 날이요 백주에 땅이 캄캄해지는 날입니다(9절). 그런데 이런 사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다 벌하실 때 일어나는 일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죄의 모든 형벌을 당하신 것이 맞습니다.
10절은 절기가 애통이 되고 노래가 애곡이 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머리가 다 빠질 정도로 크게 슬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죄에 대한 심판이 혹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라고 하십니다. 독자의 죽음으로 애통을 경험하신 분은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실 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의 남은 날들은 고통입니다. 곤고한 날이 계속 됩니다. 그렇게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7-10절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 고통을 바라보게 합니다. 동시에 회개하지 않는 자가 겪을 고통이 무엇인지도 알게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돌이켜서 주 예수를 믿지 않으면 곤고한 날이 계속될 것입니다. 자식이 먼저 죽어 심한 영혼의 고통을 계속 당하는 부모의 고통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위와 같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모스의 입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7:12-13). 11-13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심판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소홀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기근이 임할 것입니다. 그 기근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11절).
사람은 먹을 것으로만 살도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말씀을 들어야 사는 존재입니다(신 8:3; 마 4:4; 눅 4:4). 말씀을 듣지 못하면 살 수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니는데 비틀거리면서 돌아다닌다고 하십니다(12절).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해서 비틀거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처녀라도 아무리 젊은 남자라도 말씀을 듣지 못하면 쓰러지게 됩니다. 그들의 생명이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말씀으로 생명을 얻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말씀을 배척하면 마치 기근에 주려서 쓰러지는 사람들처럼 쓰러지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생각할 말씀을 주석에 적어 놓았습니다(박윤선, 아모스서 주석, 217쪽).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11-14)
1) 인생은 갈증이 난 자임. 그는 이 세상 것으로는 만족을 못한다. 천하의 향락을 다 누려 본 솔로몬도 말하기를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라고 하였다(전 2:10-11).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많이 가질수록 만족은 없고 오히려 갈증이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은, 마치 목마른 자가 소금물로써 해갈하려는 것과 같다.
2) 인생은 하나님으로야 만족한다. 그러므로 시 42:1에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을 소유케 하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기갈을 면치 못한다.
㉮ 하나님을 소유케 된 것은 새 생명이니, 새 생명으로야 만족하고 구 생명으로는 언제나 만족이 없다. 새 생명(거듭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얻는다. 벧전 1:23에 말하기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하셨고(요 6:63),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하였고(딤후 3:16), 전도서 저자는 말하기를,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전 12:11)"라고 하였다. 성경은 못을 박듯이 하나님을 우리의 심령에 단단히 관계 맺어 준다. 이것이 새 생명이다.
㉯ 새 생명에 대한 새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만족하게 됨은, 주린 자가 음식을 먹고 만족을 얻음과 같다. 렘 15:16에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라고 하셨다.
3) 현하 한국에서 말씀 운동이 긴요함.
㉮ 교계의 투쟁이 많으니 신자들이 중상 모략하는 말을 많이 하게 되므로 위험하다. 그것은 증오와 거짓을 발달시킨다. 그것은 자기의 영혼과 남의 영혼을 망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위기에 하나님 말씀 운동을 맹렬히 전개해야 된다.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가르칠 인물을 배양할 것이고, 잘 가르치는 운동을 힘있게 전개해야 된다(이것은 평신도들이 잘 깨닫도록 가르치는 집회와 같은 것을 자주 여는 것으로 실행됨).
㉯ 불건전한 신비주의 운동이 많이 일어나니 위험하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전파하므로 성령 운동이 병행하도록 해야 된다.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전하면 성령께서 그것으로 역사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그렇게 하지는 않고 인간의 조작으로, 성경과 부합하지 않는 사람의 발명으로 심령에 만족을 주려는 운동들이 일어난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 전파를 주력하지 않는 데서 생긴 폐단이다.
우리는 위의 글을 잘 읽고 깨달아서 실천할 것은 실천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러야겠습니다.
우상을 두고 맹세하는 자들은
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사람은 언제나 섬길 대상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다른 것을 섬기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는 사람은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서 우상을 더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합니다(14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상을 두고 맹세하는 자들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닌 것에서 좋은 것을 얻기 바라고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의 최후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고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만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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