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아모스 6장 1-14절 |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2024. 12. 11. 21:03성서유니온 매일성경/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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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아모스 6:1-14

    찬송가 426장 이 죄인을 완전케 하시옵고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외식하는 자들

    아모스는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에게 화를 선포했습니다(5:18). 그들은 형식상으로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처럼 하지만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고 공의를 땅에 던지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5:7).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5:24). 종교행위(5:21-23)보다 이것을 말씀하신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곧, 그들이 사로잡혀 갈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5:27). 

    화 있을진저

    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6장에서도 화 선포가 계속됩니다. 5장 18절에서는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에게 화를 선포했습니다. 이제 6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와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지도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십니다. "시온에서 교만한 자"는 직역하면 시온 안에서 안전한 자들(הַשַּׁאֲנַנִּ֣ים בְּצִיּ֔וֹן)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거하는 곳이 시온이기 때문입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이들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시온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הַבֹּטְחִ֖ים)"는 사마리아 산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도시가 요새에 세워졌다는 것을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요새에 세워진 도시는 함락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온도 요새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머리라는 것은 신체에서 머리가 각 지체를 움직이듯이 백성들을 움직이는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백성들에게 거짓 안전을 선전하기 때문입니다(2-6절). 시온이나 사마리아는 그렇게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 비교 대상으로 갈레와 큰 하맛과 가드가 등장합니다. 갈레는 앗수르에 속한 도시이고 대 하맛은 수리아 지방의 도시입니다. 그리고 가드는 블레셋의 도시입니다. 이 도시들은 시온이나 사라미아보다 넓고 더 안전해 보이는 도시들이었는데 다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망해버린 도시들을 보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안전하다고 하는 것이 옳으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도자들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흉한 날이 멀다"라고 했습니다(3절). 즉 심판의 날이 멀리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포악의 자리로 가까워지게 했습니다. 포악의 자리라는 것은 "폭력의 자리"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게 마음대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호화롭게 살았습니다(4-6절). 그들이 상아 상에 눕고 침상에서 기지개를 켜고 양과 송아지를 잡아 먹고(4절) 노래하고 악기를 만들면서 문화 생활을 즐기고(5절) 포도주를 마시고 자기 몸에 기름을 바른 것은 폭력을 행사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즉 강한 힘을 가진 지도자들이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을 착취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6절 하).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9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10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더 있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없다 하리니 그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11   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므로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지리라

     

    지도자들도 다 사로잡힐 것입니다(7절). 기지개를 켜면서 떠드는 소리가 멈출 것입니다(7절). "떠드는 소리"는 흥겨운 잔치로 인해서 떠드는 소리입니다. 이들이 기지개를 켜는 장소는 상아로 만든 침상입니다(4절). 그들은 기지개를 켜면서, 즉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잔치를 베풀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로잡히는 자 중에서 앞서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8절). 당신님을 두고 맹세까지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궁궐을 미워"하신다고 하십니다(8절). 하나님께서 그렇게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영광이 하나님을 위한 영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가득한 영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광은 힘 없는 자들의 억울함으로 누리는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영광이라고 번역된 말(גָּאוֹן)은 "높아짐"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높아져서 상아 궁궐에 거하고 매일 아침 파티를 즐기는 것은 착취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궁궐들을 미워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것들은 다 착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고 해도 다 죽을 것이라고 하십니다(9절). 10절은 그 상황이 얼마나 비참할 것인지를 묘사합니다. 집에 있는 사람이 다 죽을 것이기 때문에 친척이 와서 그 시체를 불사른다고 합니다. 시체를 불사르는 풍속은 이스라엘에는 없는 풍속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가증한 죄를 범한 자는 예외입니다(레 20:14, 21:9; 수 7:15, 25; 창 38:24). 이 말은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아주 가증하게 여기는 죄를 범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체를 다 가지고 나가는데 더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집 사람들이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라고 한다고 합니다(10절 하).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칼빈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아모스서 주석, 206쪽). 

    칼빈(Calvin)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곧,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외식으로 예배하며 불렀다. 그러나 이제 민족적으로 재앙을 받는 마당에 와서 그런 외식하는 것 같은 한가로운 짓은 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여호와께서는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다 멸하신다고 하십니다(11절). 큰 집은 잘 사는 자의 집, 또는 지도자의 집을 뜻하고 작은 집은 서민의 집, 가난한 자의 집을 뜻합니다.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13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
    1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말들이 바위 위에서 달리면 그 발굽이 다 깨집니다. 그러므로 말들은 바위 위에서 달리게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도 바위 위에서 밭을 갈게 하지 않습니다. 갈리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은 헛 수고일 뿐입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의와 공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상식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의를 쓸개로 바꾸고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었습니다(12절). 

     

    그들은 기뻐해서는 안 될 허무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허무한 것은 자기 힘으로 권세를 삼는 것입니다(13절). 권력만큼 허무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쉽게 없어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제국의 흥망성쇠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기뻐하고 의지했습니다. 권력을 좋아하고 정의와 공의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권력은 정의와 공의를 이루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즉 권력은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목적은 정의와 공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권력을 목적 삼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들이 사랑한 권력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즉 이스라엘 집 전체가 학대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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