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여호수아 1장 1-9절 | 모세와 여호수아, 율법과 예수님

2025. 2. 7. 20:49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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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여호수아 1:1-9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여호수아 서론

    여호수아의 저자는 여호수아입니다. 본문에는 여호수아가 쓸 수 없는 기록도 나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들은 다른 사람이 기록해서 증보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엘르아살이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증보했고(24:29-31), 비느하스가 엘르아살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증보했다고 생각합니다(24:33). 이러한 증보 부분이 있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가 여호수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저술 시기는 첫째 기생 라합이 살아있던 때입니다(6:25). 둘째, 예루살렘의 본토인들인 여부스인들이 아직 거기에 살던 때입니다(15:63). 그들은 다윗 왕 때에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습니다(삼하 5:5-9). 셋째, 게셀에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던 때입니다(16:10). 솔로몬 때에 애굽 왕 바로가 게셀에서 그들을 죽였습니다(왕상 9:16). 넷째, 기브온 사람들이 아직 나무를 패는 자와 물 긷는 자로 살던 때입니다(9:27). 이렇게 볼 때 이 책은 비평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른 시기에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라합이 살아있던 때이므로 적어도 사사기와 룻기 보다는 이전 시대에 완성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저작 목적은 여호와께서 약속을 지키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21:43-45).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점령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앞의 다섯 개의 책인 모세 오경에 기록된 것이 그대로 실현된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앞의 네 권의 복음서가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도행전과 비슷합니다(박윤선, 여호수아 주석, 13-16). 

    모세와 여호수아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모세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종으로서 여호와의 모든 뜻을 수행했습니다. 모세는 죽었지만 수행되어야 할 여호와의 뜻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 뜻은 대를 이어서 수행됩니다. 여호와의 뜻이 대를 이어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한 번에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유기체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뜻이 사람이 이루는 역사에서 다 성취됩니다. 그 안에서 사람의 일생은 작으나마 그 한 부분을 감당합니다. 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으로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이루어져야 하는 여호와의 뜻은 모세의 아들이 아니고 모세의 수종자인 여호수아에게 이어졌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했는지를 옆에서 보고 배운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뜻이 전해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임무 수행에 있어서는 아들과 다름 없는 모세의 후계자였습니다. 모세의 후계자라는 것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직임을 이어 받는다는 뜻입니다. 모세를 이어받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과 구원자

    모세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수여한 사람입니다. 율법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복음이 감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율법 다음 구원자가 이어서 등장합니다. 이런 구도는 시편에서도 세 번 나옵니다. 메시아 시편과 토라 시편이 짝을 지어서 나오는 것입니다(시편 1, 2편; 18, 19편; 118, 119편). 

     

    하나님의 일은 정확한 계획에 따라서 순서대로 이루어집니다. 더딘 것 같아도 꼭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남으로 성취됩니다. 마치 그릇에 물이 채워지듯이 빈틈 없이 다 성취되면서 다음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믿음의 사람은 급하게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믿음으로 일합니다. 

     

    모세의 죽음은 한 세대의 죽음입니다(1-2절). 모세가 죽어야 다음에 일어날 일이 일어납니다. 죽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어야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모세가 죽음은 중요한 기점이 됩니다. 그 기점을 시작으로 약속의 땅에 발을 디디는 일이 일어납니다.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는 사람은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의 헬라어 음역은 "예수"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3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방법은 말씀하신 대로 발걸음을 내딛어서 발바닥으로 그 땅을 밟는 것입니다(3절 하). 하나님께서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앉아 있으면 자동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특별히 앞서 가신 예수님을 보고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은 광야와 레바논과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서쪽 대해까지입니다(4절). 이 약속은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것입니다(창 15:18). 유브라데까지 점령한 것은 다윗 때입니다(왕상 4:21). 박윤선 목사님은 이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단시일 내에 한몫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부분은 장구한 시일이 지난 다음에야 성취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림에 있어서 믿음으로 오래 참아야 된다. 벧후 3:8-9 참조. 

    강하고 담대하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 약속은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라는 약속입니다. 여호수아를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어떤 능력으로 나타나는지 생생하게 경험하여 압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하). 이 약속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버리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되신 아드님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굳게 붙드시고 믿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심정이 시편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이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망에 버리지 않으시고 사망을 풀어 생명의 부활로 예수님의 몸을 건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데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은 현상을 마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패배 때 그런 참담함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때 신자가 굳게 붙들어야 하는 말씀이 바로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지도 버리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해야 할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말씀을 떠올리고 강해지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6절). 우리 예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신자들을 이끄시고 약속의 땅을 얻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일순간 마음이 연약해지셨기도 했지만 기도로 다시 강해지셨습니다. 강하시고 담대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다 구원을 얻고 약속하신 것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되는 것은 계속되어야 합니다(7절). 이 말씀은 6절과 7절에 반복됩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은 무한한 고통으로 점철된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계속적인 강함과 담대함으로 걸어가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실까요? 충만한 구원이라는 선물을 가득 안겨주시기를 고대하시면서 강하고 담대하게 그 길을 걸어 당신님께 오기를 바라시는 마음일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께서 구원사역을 성취하신 방법은 율법을 다 지켜 행하신 방법입니다(7절).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에 순종하셨습니다. 율법의 의를 전부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기록합니다(요 1:14).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의를 성취하시고(마 3:15 참조)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 

     

    율법의 의를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셨습니다. 이 형통은 순탄한 형통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거세게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거세게 방해하지만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5절)"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의 길을 꺾거나 돌릴 수는 없습니다.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라는 말씀은 그대로 성취됩니다(8절).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라는 예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 40:3-5)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요 10:41-42).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9절은 6절을 반복합니다. 반복하는데 좀더 구체적인 것을 첨가합니다. 그것은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라는 말씀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두렵고 놀랄만한 일이 많았던 길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셔서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나타내셨습니다. 모든 일을 행하실 때 단독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시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요 1:14).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잘 보고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형통할 것이고 평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떠나시거나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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