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상 13장 20-34절 | 하나님의 사람과 벧엘 선지자, 두 증인과 교회, 돌이키지 않는 여로보암

2023. 10. 8. 19:03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상

목차


    열왕기상 13:20-34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책망 받는 하나님의 사람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람은 죽습니다. 그에게 죽음을 전하는 사람은 바로 그를 속인 벧엘의 늙은 선지자입니다. 벨엘의 늙은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이 함께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쉬면서 고픈 배를 달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21절)" 벧엘에 사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의 시체가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22절)"

    초자연적인 죽음

    식사를 마치고 벧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나귀를 제공합니다. 그가 나귀를 타고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23절). 그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나귀를 타고 가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24절)" 하나님의 사람은 길에서 사자를 만나서 물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초자연적인 죽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자가 그를 죽이고 먹지 않았고 그가 타고 간 나귀를 해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시체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가서 본즉 그의 시체가 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28절)" 이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보고 벧엘의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벧엘의 선지자는 직접 와서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나귀에 실어서 슬피 울면서 자기의 묘실에 장사지냈습니다(29-30절). 그는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30절 하)" 이렇게 슬퍼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 자기 아들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자기를 장사하는데 특별히 자기의 뼈를 하나님의 사람의 뼈 곁에 두라고 명합니다(31절). 

    죽음으로 증언함

    벧엘의 선지자가 아들들에게 그렇게 명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여호와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32절).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대로 벧엘의 제단과 사마리아 성읍들의 모든 산당들이 다 훼파될 것이라고 합니다(32절). 앞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에 대해서 말한 것만 나옵니다. 하지만 그는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산당을 향해서도 외쳐 말했을 것입니다. 벧엘의 선지자는 그 모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는데 자기의 뼈도 그 증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여로보암 

    이것이 여로보암에게 임한 세 번째 징조입니다. 이 세 번째 징조는 아주 강력한 징조입니다. 선지자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같은 말로 하는 증언입니다. 둘 다 자기의 죽음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 때문에 초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은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룰 것을 증언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벧엘의 선지자가 다시 말로 그것을 확증합니다. 그러면서 그와 같은 죽음을 죽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자기도 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증언하겠다는 뜻입니다. 증인이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입니다. 이것은 이 증인들의 말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엄중하게 여로보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33절). 선지자 두 명이 죽음으로 증언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몸으로 경험하고 보았으면서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강퍅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일반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는 죄를 범했습니다(33절). 

    이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본문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떻게 죽음을 면할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렇게 했으면 죽음을 면했을 텐데. 저렇게 했으면 죽음을 면했을 텐데.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 증인을 사용하셨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성경에 보면 두 증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두 증인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실히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여로보암은 여러 번의 권고를 들었음에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 이것으로 그가 땅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34절). 

     

    매일성경 | 열왕기상 13장 20-34절 | 하나님의 사람과 벧엘 선지자, 두 증인과 교회, 돌이키지 않는 여로보암

    두 선지자의 죽음과 교회의 부활

    요한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은 교회를 뜻합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계 11:3)" 지금은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계 11:7-8)교회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서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교회는 부활합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 11:11)" 두 선지자가 죽었습니다. 죽어서 묘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것도 한 묘실에 그 뼈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벧엘의 선지자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은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증거가 되는 그들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니고 부활을 바라보는 죽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전한 복음은 확실한 복음입니다. 확실하게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 전한 복음대로 부활할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