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상 14장 1-20절 | 회개하지 않는 여로보암, 아비야의 죽음과 재앙의 시작

2023. 10. 9. 13:4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상

목차


     

    열왕기상 14:1-20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회개하지 않는 여로보암

    여로보암에게 재앙의 말이 선포되었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습니다(1절).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병들어서 죽고맙니다(17절). 그런데 이것은 죽은 아비야에게는 오히려 복이었습니다(13, 18절). 왜냐하면 여로보암 집에 속한 모든 남자는 재앙을 받아 비참하게 죽고 그들의 시체가 묘실에 장사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1절). 아비야만 평안히 장사되었고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였습니다(18절). 아비야의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일이었습니다(18절 하). 여로보암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계속 경험하면서도 끝까지 완악하게 행합니다. 여로보암처럼 회개할 기회가 많았던 사람도 드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여로보암 

    여로보암은 자기 아들 아비야가 병든 것을 보고 자기 아내를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냅니다(2절). 보내는데 특이하게도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해서 보냅니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끝까지 다른 사람인 체 하였습니다(6절). 왜 이렇게 했을까요? 여로보암이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만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를 찾아가는 일을 꺼려했습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를 찾아가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장 자기 아들이 죽게 생겼으니 급하게 누구를 보내야 하는데 신뢰할 만한 사람이 자기 아내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보냈는데 보내면서도 변장하게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에게 굴복하거나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백성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선지자의 말, 즉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말은 듣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진실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매일성경 | 열왕기상 14장 1-20절 | 회개하지 않는 여로보암, 아비야의 죽음과 재앙의 시작

    되는 일이 없는 여로보암

    여로보암의 계획은 다 탄로가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아내가 오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그가 여로보암의 아내인 것을 공개시켜 버리셨습니다(5-6절). 여로보암이 하는 일 중에서 성공하는 일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여로보암 집의 모든 남자가 비참하게 죽고 그 시체가 장사되지 못할 것이라고 재앙을 선포했습니다(10-11절).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인데 왜냐하면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에 관한 말씀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12-13절, 17-18절). "온 이스라엘이 그를 장사하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18절)" 아비야의 죽음은 여로보암 집에 재앙이 내릴 것에 대한 전조이자 징조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포로로 잡혀가는 일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15절). 아비야가 평안히 죽고 그 다음으로 여로보암 집의 모든 남자가 비참하게 죽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서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첫째, 그들이 다윗 언약을 가벼이 여겼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이 왕으로 세운 여로보암이 다윗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고 셋째, 그들 자신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서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했기 때문입니다(15절). 내가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위로이자 복입니다. 

    아비야의 죽음, 삶과 죽음에 대한 평가

    우리가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비야의 죽음이 애석합니다. 그가 젊을 때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의 죽음은 복된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집의 멸망을 보지 않고 평안히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우상을 만들고 우상숭배를 조장한 대역죄인(9절)의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여로보암의 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평가와 하나님의 삶과 죽음에 대한 평가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하시는 죽음은 참으로 복된 죽음입니다. 아비야의 죽음이 그러합니다. 시편 57편에 보면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간다고 합니다(시 57:1 하반절). 그런데 그 악한 자들이 누구냐면 우상숭배자들입니다(시 57:5). 그런 악한 일을 보지 않고 먼저 불려가는 것이 오히려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뜻대로 모든 삶과 죽음을 주관하십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목사입니다.

    현재 자비량으로 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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