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14장 17-29절 | 사람의 열심이 종 됨보다 앞서면 안 됨

2024. 9. 28. 20:12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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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왕기하 14:17-29

    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아마샤의 최후

    유다 왕 아마샤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지만 끝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는 교만해져서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북이스라엘을 괜히 건드렸다가 처절하게 패배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17절 이하에는 그의 최후가 나옵니다. 

     

    17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18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9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0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아마샤는 요아스에게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14:13-14). 그 후 그는 반역을 당했습니다(19절). 그는 반역을 당했을 때 라기스로 도망갔지만 반역한 무리가 라기스까지 따라와서 그를 죽였습니다(19절 하). 이것은 그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대하 25:16).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15쪽). 

    끝까지 회개치 않는 그의 죄가 결국 그를 죽인 셈이다.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인데 강퍅하게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부친 요아스가 우상 섬긴 죄와 선지자를 박해한 죄로 신하들의 반란을 당하고 죽임이 되었는데(대하 24:25), 아마샤는 그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부친과 꼭같이 행하다가 그도 그 부친처럼 반란을 당하여 죽임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징계의 성격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아마샤의 죽음은 비참했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했습니다. 아마샤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와 같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똑같은 모양으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긍휼로 영광을 나타내시기도 하시고 정확한 심판으로 영광을 나타내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롬 11:22).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히 4:!6).

    반역과 왕위 계승

    21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22   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

     

    아마샤가 죽자 유다 온 백성은 그 아들 아사랴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반역이 일어났지만 왕위는 그 아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보통 반역이 일어나면 반역을 주동한 세력이 왕권을 침탈합니다. 하지만 유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언약 덕분입니다. 다윗의 자손들이 계속 왕위에 오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여로보암

    23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은 후 그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41년 간 북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23절). 그런데 그도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도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24절). 그에게도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상 숭배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그에게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는 깨닫고 돌이켜서 죄 사함을 받았을 것입니다(막 4:12). 우상 숭배에서 떠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여로보암은 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평안과 번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했기 때문이고(26절) 또한 이스라엘의 이름을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시지도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27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곤경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27절). 하나님께서 악한 왕도 선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한 것은 요나의 예언대로 된 일입니다(25절). 이것은 여로보암의 업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신 결과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16쪽). 

    제2여로보암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땅을 회복한 업적을 세웠다. 그가 이스라엘 땅을 회복한 것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라고 하였으니, 이 경계선은 솔로몬 때에 이루어졌던 것이다(왕상 8:65). 곧, 이스라엘 북쪽은 "하맛 어귀"까지요, 그 남쪽은 "아라바 바다(사해)까지"였다. 여로보암이 이렇게 남북으로 땅을 회복한 것은 선지자 요나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성경 말씀은 주로 예언 성취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의 진실성을 증거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로보암의 업적

    여로보암의 업적

    이 부분에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이 영토를 회복하고 번영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악한 왕이지만 여로보암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행한 일들이 일반적인 시각으로 악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로보암은 합리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을 것입니다. 나라를 잘 안정시켰을 것이고 국력을 강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영토회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여로보암을 악하다고 평가했지만 세속 역사가가 어떤 기록을 남겼다면 여로보암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행한 정책은 합리적이고 여러 상황에 맞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정책이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했다면 여로보암은 영토를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열심에서 떠나 하나님의 종의 위치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일을 하면서 지혜를 총동원하고 여러 검증된 방법을 사용하면서 선한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한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인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좋은 성과만 나오면 일단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믿는 사람은 거기에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좋은 성과가 믿음으로 이루어진 일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성과가 나더라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은 다 죄이기 때문입니다(롬 14:23).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고 사람의 열심으로 나라를 다스린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일반적으로는 선한 열매를 맺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밋대의 아들 요나

    25절에 보면, 아밋대의 아들 요나가 등장합니다. 이 요나는 성경 요나서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을 간절히 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강을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이 예언을 하면서 큰 기쁨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러 가게 됩니다. 요나의 심판 선포로 니느웨는 심판을 받지 않고 결국 후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요나는 이것을 미리 내다보았을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그 배 맨 아래에 숨은 것은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사람의 열심이 종의 신분보다 위에 있었습니다. 물고기의 뱃속에서 죽음을 경험한 그는 하나님께 순종했지만 끝까지 하나님께 성질을 부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열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는 않는지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여로보암의 사적

    28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싸운 업적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로보암의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싸운 업적이 있었고 다메섹을 회복한 일이 있었고 하맛을 이스라엘에게 돌린 업적이 있었습니다(28절). 이것은 굉장한 업적입니다. 하지만 그는 다윗과 같은 왕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내 종"이라고 하시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다 행했다고 하는 칭찬을 받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여로보암은 합리적인 사람이고 애국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정치가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종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여로보암은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후의 왕조는 스가랴 때 종국을 맞이합니다(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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