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19장 1-19절 | 히스기야의 믿음

2024. 10. 6. 07:3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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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9:1-19

찬송가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히스기야는 돈으로 전쟁의 위기를 벗어나 보려고 했습니다(18:14-16). 그러나 그것은 침략자인 앗수르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랍사게와 함께 대군을 보내서 히스기야를 치게 했습니다(18:17). 히스기야는 이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앗수르의 침략은 히스기야가 행한 종교개혁의 진실성을 드러냈습니다. 백성들이 히스기야의 말에 순종하여 단결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18:36). 랍사게의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비로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기 시작합니다(1절).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말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그가 옷을 찢은 것은 그의 마음을 찢은 것과 같습니다. 그는 마음이 심히 원통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58쪽). 

히스기야에게 있어서 제일 원통한 일은 적군의 예루살렘 포위도 아니고, 민중이 당하는 수난도 아니고, 여호와의 이름이 훼방을 받음이었다(참조. 4절). 이때에 그는 "굵은 베옷"을 입고 그의 슬픔을 표시하였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 제일주의로 행하였으니만큼 하나님께서 그가 당한 환난(患難)을 하감(下鑑)하셨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히스기야는 위기를 당하여 국방의 요인들을 만나기에 앞서 여호와께 기도하려고 성전으로 들어갔으니, 이것이 그의 신앙이다. 

 

돈으로 어찌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치자 히스기야의 신앙이 진면목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롬 5:3-4). 환난이 연단으로 이어집니다. 연단은 믿음의 증명입니다. 즉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히스기야는 랍사게에게 보냈던 사신들과 제사장 중에서 장로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냅니다. 보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4절 하). 여기서 그 순서가 중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를 데리고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이사야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가 직접 나아갔습니다. 히스기야는 "자기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단 6:23, 11:32 참조). 이것은 사울이 사무엘에게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과 대조됩니다(삼상 15:15, 21, 30).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먼저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을 뵈려고 나아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어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을 보낼 때에 특별히 굵은 베를 둘려서 보냈습니다. 자기가 먼저 하나님께 굵은 베를 두르고 나아갔고 그 다음에는 사신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내면서 굵은 베를 둘려서 보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슬픔과 원통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히스기야는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환난"은 랍사게가 큰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러 왔음을 가리키는 것이고 "징벌"은 그 일이 여호와께서 벌하심이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돌이켜 회개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모욕"은 자기들과 조상들이 하나님의 법을 버림으로 자기들도 모욕을 당하고 하나님도 모욕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을 인용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58쪽). 

곧, 유다 민족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때 히스기야가 당면한 국가적 수난(受難)을 이 비유로 말한 것을 보면, 그는 그 환난을 해로운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소망 있는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해산"의 고통은 소망이 있는 고통이다(참조. 요 16:21). 

 

맞는 말씀입니다. 히스기야와 유다가 겪는 국난(國難)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연단입니다. 히스기야가 힘써 행했던 종교개혁이 얼마나 효력이 있었는가를 증명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러한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기도하소서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히스기야는 랍사게가 하나님을 비방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라고 합니다. 여기서이사야에게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이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높이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라고 한 것은 그의 소망을 나타내는 어법입니다.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모르겠다는 뜻이 아니고 들으시고 그에 대해서 꼭 꾸짖으셨으면 한다는 소망이 담겨 있는 말인 것입니다. 즉 모른척 하지 말아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라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여기서 "남아 있는 자"는 북쪽 이스라엘이 망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남쪽 유다를 가리킵니다. 또한 영적으로 하자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그 말을 들은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말씀은 구원의 말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쳐서 함락시키려고 셀 수 없이 많은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전투력이 강한 군대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군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 눈에 보이는 군대보다 하나님께서 훨씬 크신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만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로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서 그가 소문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거기에서 칼에 죽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유다 백성은 나가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잘 보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 다시 위협하는 산헤립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9   앗수르 왕은 구스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   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이제 상황은 앗수르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립나와 싸우고 있었습니다(8절). 그 때 구스 왕 디르하가 앗수르 군대와 싸우려고 나옵니다(9절). 그들에게는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빨리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아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는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내서 다시 위협합니다(10-13절). 그런데 이 편지는 말뿐인 위협이었습니다. 정세는 히스기야에게 훨씬 유리하게 돌아아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산헤립은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위협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하는 속임수와 같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사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그는 이미 패배했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고 있으면 결국 우리는 사탄이 멸망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괜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산헤립이 앗수르 앞에서 열국이 다 멸망했는데 유다가 어떻게 앗수르 군대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말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이 논법은 순전히 경험론에 불과하다고 주석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경험주의자들은 초자연적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신앙 진리를 모른다"라고 일침을 놓습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59쪽).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자기들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또 경험적으로 볼 때 자기들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믿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만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았습니다(14절). 이것은 신앙인 만이 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히스기야가 행한 그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한 억울한 일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펼쳐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의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니 의롭게 판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편지를 펴 놓은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반박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15절). 하나님은 산헤립이 말한 것처럼 다른 신들과 같은 분이 아니고 홀로 참 신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들으시고 보시는 하나님

히스기야는 그 하나님께 들으시고 보시라고 간구합니다. 이 말은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달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의 신들은 우상이라는 것을 함의합니다(12절, 18절). 이방 족속들이 섬긴 신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다만 형상 뿐인 것들입니다. 헛된 것들입니다. 그런 신들과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눈과 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눈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어떤 소리도 하나님의 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합니다(19절 상). 그렇게 하셔서 만국으로 하여금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19절 하). 히스기야는 하나님 중심으로 간구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높아지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높아지시기를 구했습니다. 자기 명예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구했습니다. 구원의 이유를 자기들의 선행이나 종교개혁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과 영광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깊이 아는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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