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5. 13:23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18:17-37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이스라엘은 망했지만
이스라엘은 강력한 앗수르에 멸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히스기야라는 경건한 왕을 세우셔서 유다는 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살만에셀 때에는 잘 버텼습니다(18:9). 그랬는데 그 뒤를 이은 왕 산헤립 때에 히스기야는 믿음이 약해져서 앗수르의 침략을 은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18:13-16).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만족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큰 군사를 보냈습니다. 그 때의 사건이 17절 이하에 기록됩니다.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앗수르 왕은 은금을 받고 물러가지 않고 다시 침략했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돈이 구원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특히 전쟁에서 침략자는 다 빼앗을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돈만 받고 물러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같은 생명을 담보로한 일에서는 돈이 그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돈을 주었기 때문에 더 내놓으라고 더 큰 군대가 몰려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생명을 걸고 항전함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죄 문제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우리의 생명을 노립니다. 죄가 득세하면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오히려 그것을 악화시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와 싸울 때 무엇으로 싸워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죄가 득세할 때 우리가 할 것은 십자가에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못 박는 것입니다(갈 5:24). 죄가 죽이려고 하기 전에 십자가를 의지해서 내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정욕과 탐심은 죄를 유발합니다. 죄를 유발하는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 즉 자기 사형틀을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바로 살 길입니다(막 8:34-35). 히스기야는 은금으로 쉽게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죽음이 그에게 입박해 옵니다.
세탁자의 밭
앗수르 군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섰습니다(17절 하). 당시에도 세탁업자가 있었습니다(막 9:3 참조). 당시의 세탁업자는 세마포 천을 수축시켜서 유연하게 하고 양모 천을 충분히 두텁게 하는 가공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발로 밟아서 천을 가공했기 때문에 원어로 코베스(כָּבַס), 즉 발로 밟는 자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은 베틀에서 나온 옷감을 물이 가득 채워진 욕조 같은 곳에 넣어서 발로 밟아 묵은 때를 제거하면서 천을 부드럽게 했습니다.
예레미야에서와 시편에서는 이런 세탁업자의 일을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렘 2:22; 4:14; 시 51:4, 9). "세탁자의 밭"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성격을 알려줍니다. 앗수르 군대는 유다를 발로 밟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곧 유다의 죄를 깨끗하게 씻는 일이 됩니다. 유다를 부드럽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했을 때, 그것이 아무 효력이 없음을 보이시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은 발로 밟히는 것과 같은 고난을 통과합니다.
랍사게의 말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랍사게는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히스기야를 위협했습니다. 위협하면서 그를 불렀습니다(18절 상). 그러자 왕궁 책임자가 그들에게 나아갔습니다(18절 하). 랍사게는 그들에게 심히 교만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아주 뼈아픈 말을 합니다. 그것은 "네가 ... 애굽을 의뢰하도다"입니다(21절). 히스기야가 정말 애굽을 의뢰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은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을 볼 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뢰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의지하면 오히려 그것을 의지한 사람이 그 갈대 지팡이에 손이 찔려 해를 받게 됩니다(21절). 이것은 당시 선지자들의 사상(사 36:6)인데 이것이 적의 입에서 들려왔습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가 의뢰하는 것이 헛된 것임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랍사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립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히스기야의 믿음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당시 부패한 종교를 개혁했습니다(22절). 랍사게는 그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듯이 말합니다.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23절)" 이 말은 네가 아무리 여호와를 의지한들 군사력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려느냐라는 뜻입니다(24절).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 어떻게 눈에 보이는 군사력을 뛰어넘어 승리를 가져오게 할 수 있겠는냐는 말입니다.
거짓말
그러면서 자기들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온 것은 "여호와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거짓으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25절). 이것은 항전하고 있는 히스기야와 백성들의 마음을 꺾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이 말로 이제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하는 기로에 들어서게 됩니다. 랍사게가 전하는 거짓말을 믿을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듣고 그것을 믿을 것이냐 아주 중대한 기로에 선 것입니다.
랍사게의 이런 심리전은 이 시대에서도 영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하나님께 돌이키게 합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의 말, 사탄의 말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을 갖게 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이런 거짓말, 즉 하나님께서 너를 망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서 묻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들려올 때는 좌절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기회입니다.
일반 백성에게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히스기야가 보낸 왕궁의 책임자들은 랍사게에게 유다 말로 하지 말고 아람 말로 말하라고 합니다(26절). 랍사게의 말이 너무 치명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반 백성들이 듣고 동요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랍사게는 성위에 앉은 사람들이 다 들어야 한다면서 유다 말로 더 크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27-28절). 그는 자기의 심리전이 통한다 싶어 더욱 의기양양해졌습니다. 여기서 대변을 먹고 소변을 마신다는 말은 앗수르 군대가 그 성을 오래 포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포위하기 때문에 성에 갇힌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57쪽).
민중은 이 말을 듣고 하루 속히 항복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신자들로 범죄케 하려는 마귀도 이런 위협적인 술책을 사용한다. 마귀는 의식주(衣食住)의 위협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을 약화시키는 일이 많다.
걱정하게 하는 전략
맞는 해석입니다. 성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실제로 굶주리게 될지 아니면 전쟁에서 승리해서 그런 고통을 면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군사력 차이가 확연히 보이고 버틴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궁지에 몰린 것 같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거짓말로 사람의 마음에 걱정과 근심을 집어 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사탄의 이러한 전략을 간파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신자가 가지는 최고의 무기는 최악을 상정하더라도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믿음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날뛰어도 그가 내 영혼까지 멸하지는 못한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마 10:28).
하나님말고 앗수르를 의지하라고 함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3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랍사게는 점점 더 선을 넘어갑니다. 그의 말의 요지는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굶어 죽을 지경에 떨어지겠지만 앗수르를 의지하면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자기의 우물을 마실 것이라고 합니다(31-32절). 그러면서 앗수르가 그 어떤 신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를 펼칩니다(33-35절). 이것은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는 말입니다. 이 말로 히스기야는 정신을 차립니다. 자기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했음을 회개하고 돌이켰을 것입니다. 그는 돌이켜서 다른 이에게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19장).
단결하는 백성들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백성은 랍사게의 말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36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57쪽).
민중의 이와 같은 태도는 히스기야의 분부대로 순종한 것이다. 이와 같은 환난의 때에 임금과 신하 그리고 온 백성이 단결하여 한 마음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단결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대로 당시 유다 백성들은 단결했습니다. 이것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이런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또한 이렇게 단결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들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잘 드러내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히스기야를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단결력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고자 히스기야를 사용하셔서 유다를 먼저 개혁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연단
산헤립의 침공과 랍사게의 말은 종교개혁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연단입니다. 만일 종교개혁이 겉으로만 이루어졌다면 백성들은 동요하면서 사분오열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의 말에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순종했습니다. 이것으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 백성들 전체에 깊은 효력을 발휘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인 연단입니다. 연단은 믿음을 증명합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 열왕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성경 | 열왕기하 19장 20-37절 | 완벽하게 보호를 받는 유다와 자기 집에서 죽임 당하는 산헤립 (48) | 2024.10.07 |
---|---|
매일성경 | 열왕기하 19장 1-19절 | 히스기야의 믿음 (24) | 2024.10.06 |
매일성경 | 열왕기하 18장 1-16절 | 히스기야의 성공과 위기 (21) | 2024.10.04 |
매일성경 | 열왕기하 17장 24-41절 | 앗수르의 식민정책과 선교 (28) | 2024.10.03 |
매일성경 | 열왕기하 17장 1-23절 |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교회의 타락 (21) | 2024.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