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7. 10:58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19:20-37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히스기야의 기도에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가지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했습니다(19:14-15). 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20절).
내가 들었노라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할 때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만약 누군가 기도할 때에 그 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있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기도입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 어떤 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니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그 무엇보다 사람은 스스로 영적인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선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내 힘으로 이룬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이루어봤자 사람 수준의 선입니다. 사람이 선을 이룬다고 할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려면 그 선은 사람의 수준의 선이어서는 안 되고 성령님께서 작용하신 선이어야 합니다. 구원이 그런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천하 만국이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기 위해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9:19).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 일은 사람의 수준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너를 멸시하며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에게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는 강력한 군대로 예루살렘을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시온, 예루살렘은 그것을 멸시하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 앞에 아직 시집 보내지 않은 귀한 딸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큰 사랑으로 딸을 보호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큰 사랑으로 보호하시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공동체, 즉 교회를 그렇게 보호하시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이 앗수르를 멸시하고 비웃는 것은 히스기야의 행동에서 나타났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산헤립의 편지를 펴 놓고 기도했습니다(19:14). 기도하기를 앗수르가 다른 나라를 칠 수 있었던 것으로 저렇게 기세등등한데 그 나라들이 의지한 것은 헛된 우상이 아닙니까 라는 의미로 기도했습니다. 앗수르가 행한 업적을 멸시하고 비웃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히스기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참되신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패망으로 이끔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산헤립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꾸짖고 비방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를 높였고 눈을 높이 떴습니다. 산헤립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심히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들을 쳐서 이기고 그들을 굴복시킨 군사적인 성공이 그를 심히 교만하게 한 것입니다. 그의 성공이 그를 망하는 길로 이끌었습니다(잠 16:18).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성공이 계속될 때입니다. 성공이 계속되면 교만이 눈을 가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망합니다. 왜냐하면 눈이 가려져 있어서 쉽게 걸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잠 4:19). 산헤립은 계속되는 성공 때문에 눈이 가려져 있었고 하나님을 향해서 정당한 마음을 품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심판의 도구가 된다는 것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26 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산헤립은 주 하나님을 비방했습니다. 산헤립이 하나님을 비방한 근거는 자기의 성공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들을 쳐서 점령했습니다(23-24절). 그런데 산헤립의 성공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정하신 것이었습니다(25절). 산헤립의 군사적인 성공은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25절 하). 산헤립이 점령한 지역의 주민들은 힘이 약해지고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한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헤립이 쉽게 전쟁에서 이기고 그들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이었스빈다.
심판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에게 교훈하시고자 다른 이를 강하게 하셔서 그를 치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강하게 된 사람이 잘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강하게 된 사람은 그것 때문에 교만해져서 갑자기 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강함은 약함에 있습니다(고후 11:30; 12:10). 믿는 우리는 이것을 항상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에게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27절). 이것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적대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서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적이 있는데 그 적의 첩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나의 집과 생활 반경과 생활 패턴을 다 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내 생명이 적의 손에 있는 것과 다름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렇게 무서울 수 있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더 무서울까요? 산헤립이 아무리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는 한 명의 연약한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의 분노와 교만한 말을 다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귀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말도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말을 다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향하여서 교만한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로 돌이켜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갈고리를 산헤립의 코에 꿰고 재갈을 산헤립의 입에 물리겠다고 하십니다. 소를 이리 저리 움직일 때 코를 뀁니다. 말을 이리 저리 움직일 때 재갈을 물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사람이든지 이렇게 다루실 수 있으십니다. 아무리 당시 최강대국의 왕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완벽한 보호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그 징조는 금년에는 스스로 자란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고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맬르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1쪽).
곧, 앗수르 군대가 유다에서 물러난 그 첫해에는 밭에 경작을 못했으니만큼 스스로 나서 자란 것들을 먹고, 그 다음 해에도 경작하지 않고 스스로 난 것을 먹고, 제3년에는 경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작하지 않은 해가 두 해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적 산물로써 국민의 식량이 해결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 간섭, 곧 표적("징조")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쟁 후에도 유다 백성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산헤립이 물러간 후 유다가 핍절해서 먹을 것이 없고 사람이 죽어나간다면 그것은 온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실 때 온전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하고 남은 자는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유다의 여러 곳이 이미 전쟁으로 황폐화되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전쟁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예루살렘 백성들이 남아있었습니다(31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0절).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온 남은 자들이 씨처럼 되어서 유다 땅에 두루퍼질 것이고 각 땅에 잘 심겨져서 열매를 맺어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에서 열심(קִנְאָה)은 '시기(ardor, zeal, jealousy)'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1쪽).
이 '시기'는 이 점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그의 소유(그의 백성, 그의 영광)를 원수에게 빼앗기지 않으시려는 거룩한 마음이다(사 48:11). 이때에 유다가 앗수르의 손에서 해방된 것은 하나님의 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내용은 34절에서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라는 말씀으로 다시 설명된다. 곧, 여호와께서 자기의 영광을 위하시고 또 다윗에게 말씀하신 언약(삼하 7:13-16; 왕하 9:19)을 끝까지 지키시기 위하여 유다 왕국을 없애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 언약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영원히 실현되도록 된 것이다(참조. 사 55:3-5; 눅 1:32-33)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으로 볼 때 30-31절의 남은 자는 바로 우리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남은 사람들로서 시온에서부터 나와서 전세계에 뿌려져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사람들입니다. 이런 일은 역사 가운데 계속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극치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여 온 우주 곳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던 길로 돌아가고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아무리 군사력이 뛰어난다 하더라도 그 군사력을 발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산헤립은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루살렘 성을 향해서 화살을 쏘지도 못했고 방패를 세우거나 토성을 쌓지 못했습니다. 공격 한 번 감행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32절). 앗수르 군대는 공격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십니다(33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예루살렘을 완벽하게 보호하셨습니다(34절). 이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믿는 사람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놀랍게 보호하십니다. 할렐루야!
군사 185,000 명을 친지라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 말씀이 이사야의 입에서 전해진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말씀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앗수르 진영에서 185,000명을 쳐서 죽인 것입니다(35절). 산헤립은 하루 아침에 군사 185,000명을 잃었습니다. 이 일로 남은 군인들은 사기가 크게 떨어졌을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2쪽).
앗수르 군인들이 일시에 185,000명이나 죽은 사건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어떤 이들은 그것이 전염병으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함. 35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을 쳤다고 하였으나 그것이 어떤 질병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확정하기는 어렵다. 2) 헤로도토스(Herodotus)의 사기(史記)에 이 사건에 대해 말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때에 무수한 쥐의 무리가 와서 앗수르 군인들의 방패들과 병기들의 어떤 부분을 쏠아서 쓸 수 없게 만들었으므로 그 군대가 도망하였는데 그때에 애굽 군대가 이들을 추격하여 그렇게 많이 죽였다고 한다(Batnes Notes, I Samuel-Esther, 1791, p. 289). 만일 이것이 사실인 경우에는 이상한 일임이는 틀림없다. "여호와의 사자"의 간섭이 아니고서는 그런 일이 있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해석은 해로도투스의 기록에 의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밤중에 죽었고 아침에는 다 시체가 되어 있었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35절). 이들은 분명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해서 죽은 것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변변한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서 니느웨에 있다가(36절) 자기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대하 32:21). 앞에 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에게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산헤립은 자기 거처에서 자기 생활 습관을 따라 행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니느웨로 돌아갔다고 해서 여호와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다가는 자기도 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서둘러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 14:6).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안전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는 이것을 항상 기억하고 모든 일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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