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8. 21:35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20:1-11
찬송가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기도 응답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19:20).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19:35-37). 히스기야가 기도한 것은 유다를 산헤립의 손에서 구원하셔서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19:19).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주기도문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유다를 구원하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에게는 개인적인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1절).
구원과 생명
구원은 전방위적인 것입니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구원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구원은 생명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죽고 살지 못하리라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때는 산헤립이 큰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침략하던 때입니다(6절 참조). 히스기야는 주전 687년 경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병들었을 때는 그로부터 15년 전입니다. 그러므로 주전 702년 정도의 일인 것입니다.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연대는 주전 701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히스기야가 병든 때는 앗수르에게 엄청난 은금을 바치면서 군대를 돌려달라고 한 때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 후에 산헤립이 유다에 다시 침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가 701년이고 그 일은 19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장은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나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보내셔서 히스기야에게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정리하라고 하신 것은 히스기야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잘 완수하라는 뜻입니다. 그 안에는 왕위를 물려주는 일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위기는 한꺼번에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히스기야는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2절).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위기가 한꺼번에 닥칠 때 보통은 정신을 못차리게 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평소에 하나님과 교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면서 꾸준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생활이 위기 때 빛을 발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기도하는 히스기야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낯을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찾았다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는, 질병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신 줄 알고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간구하였다(사 38:13, 16)"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3쪽).
3절을 얼핏 보면 히스기야가 자기의 업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거은 업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3쪽).
히스기야의 이 기도는 그의 업적(業蹟)보다 그의 신앙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주의 보시기에"란 히브리어는 '당신의 면전'이란 뜻이니 그가 주님을 대면하여 살아온 것(이것은 그의 신앙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가 "선하게 행한 것"은 행동으로 표현된 신앙이다(참조. 왕하 18:5-6). "진실과 전심"의 신앙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신 30:6; 시 51:6). 그가 여기서 자기의 신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 자랑이 아니고 자기의 신앙 생활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뿐이다. 이런 솔찍한 고백은 다윗도 하였다(시 17:1).
심히 통곡하더라. 신앙의 눈물은 귀하다. 다윗은 자기 눈물을 보관해 두기를 원하였고(시 56:8), 예레미야는 울기를 원하였고(렘 9:1),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여 그를 보기 원하였다(딤후 1:4). 신앙적 기도나 회개의 진실성과 간절성에서 솟아나는 눈물은 귀하다. 하나님은 이런 눈물을 기뻐하신다(참조. 시 6:6-9; 겔 11:19-20).
히스기야의 믿음
"진실과 전심", "주의 앞에 행하여",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 이런 표현을 생각할 때 심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믿는 사람은 마땅히 이런 모습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눈에 보인다는 것은 즉시로 회개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심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께서 임재하신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행해야 합니다. 또한 믿는 사람은 주님께서 무엇을 선하게 여기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잘 알고 깨달아야 하고 깨달은 마음으로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행할 때 전제는 성령님께서 나를 이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히스기야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습니다.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4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히스기야에게 돌려보내셨습니다(5절 상).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4쪽).
히스기야의 "기도"는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본 기도였으니(2절 참조), 여호와께서 들으실 수밖에 없었고, 그의 "눈물"은 간절한 소원의 표현이었으니(3절 끝) 여호와께서 보셨다.
듣고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신다고 할 때 우리는 보통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보시고 노하시는 것에 대해서 자꾸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십니다.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할 때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기도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의 눈물을 보십니다. 자식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며 애틋해 하는 아버지처럼 우리를 보시고 우리가 뉘우치는 것을 감찰하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4쪽).
제3일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날이니, 구약에 구원 관계로 나오는 "제삼일"이란 말은 그 사건(예수님의 부활) 예언과 관련된 듯하다. 요나도 큰 물고기 뱃속에 3일 동안 있다가 나왔다(욘 1:17)(참조. 마 12:39-40; 호 6:2).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의 시간을 그에게 더하셨습니다(6절). 15년의 시간을 더하시면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6절)"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은 예루살렘 성의 구원과 연결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예와 다윗 언약의 효력과도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히스기야는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연장 받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청지기의 마음으로 잘 사용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고귀한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며 구하고 그것을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은 이러한 사명을 성취할 일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장수하며 복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무화과 반죽과 징표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이사야는 무화과 반죽을 가져다가 히스기야의 질병과 관련된 상처에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질병이 나았습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질병을 낫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보면 어떤 행위와 함께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과 행위가 함께 작용합니다. 나아만은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갔습니다(왕하 5:14). 예수님께서는 진흙에 침을 발라서 그것을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눈에 바르셔서 그를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요 9:6-7). 이처럼 질병을 고치실 때 어떤 행동을 사용하시는 예가 많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무화과 반죽을 상처에 놓은 것도 비슷한 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방식으로 일하실까요? 말씀은 영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육체는 눈에 보입니다. 행동할 수 있고 만질 수 있습니다. 영과는 다른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체를 다루실 때에 어떤 행동, 감촉이 수반되는 어떤 것을 사용하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사람을 전인적으로 다루십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육적인 존재입니다. 육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육체와 관련된 일들은 믿음을 더욱 북돋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화과 반죽을 상처에 놓는 것뿐만 아니라 놀라운 자연의 징표도 허락하셨습니다(8절). 그것은 해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는 일입니다(10-11절). 이 일은 상상할 수 없이 놀라운 일입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 속도를 생각할 때 이 기적은 너무 놀라운 스케일의 기적입니다. 전지구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는 기적인 것입니다. 지구가 그 때 자전을 멈추고 거꾸로 돌았는지 아니면 해와의 위치가 어떻게 조정이 되었는지 아니면 빛의 굴절이 기적적으로 변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신 것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놀라운 경험으로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시고 온 우주의 통치자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략해 왔을 때 그가 보였던 담담한 모습은 이런 믿음이 밑바탕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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