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9. 21:0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20:12-21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체험적인 신앙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다가 나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1). 하지만 히스기야는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울며 기도했습니다(20:2-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낫게 하시고 징표를 보여 주셨습니다(20:7-11).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징표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침략에 맞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 것은 이러한 체험적인 신앙이 바탕이 된 것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사신을 보냄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나았을 때에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에게 편지와 예물을 보냈습니다(12절). 히스기야는 바벨론에서 사신이 온 것을 기뻐하면서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그 사자들에게 보여주섰습니다. 얼마나 자세하게 보여주었던지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라고 말씀합니다(13절). 히스기야는 자기의 "소유"를 자랑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이때에 히스기야가 마땅히 그들에게 여호와를 증거했어야 할 것인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유다의 보물들을 자랑하며 그들에게 보여주었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6쪽).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나타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나타내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신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명백한 사실인 것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영원토록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해그림자가 십도를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20:9). 즉 그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심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나타내지 않은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더욱 그 사실을 자랑하고 나타냈어야 했는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직무 유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직무 유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히스기야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히스기야는 어쩌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복을 보여주려고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의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내가 앞장서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약함입니다. 우리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일하셨는지에 대한 것입니다(고후 11:30; 12:5, 9). 많은 신앙인이 이 부분을 헷갈려합니다. 자기가 잘 된 것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랑은 대적에게 틈을 타게 하는 자랑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이사야의 질문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에서 사람들이 온 것에 대해서 듣고 히스기야에게 나아왔습니다. 와서 묻기를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들이 먼 곳에 있는 바벨론에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14절). 바벨론이 먼 곳에 있다는 것은 위협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온 사신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따져서 묻는 것을 들은 히스기야의 변명 섞인 대답입니다.
히스기야의 대답에 이사야는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모든 것을 보았다고 대답합니다(15절).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물음에 사실대로 답했습니다. 사실대로 답하면서도 히스기야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의아했을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반 앗수르 동맹의 한 축이었습니다. 그렇게 유다와는 동맹 관계에 있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세계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이사야의 식견에 바벨론은 위험한 나라였습니다. 이사야는 그 나라의 위험성을 진작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바벨론에 대한 예언이 많이 나옵니다(사 13:1, 19; 14:4, 22; 21:9; 43:14; 47:1; 48:14, 20). 이사야서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말일에 심판하실 나라로 등장합니다. 만약에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이러한 식견을 배웠다면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는 죄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선포되는 유다의 멸망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합니다(16절). 첫째, 왕궁의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합니다(17절). 둘째, 히스기야의 자손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환돤이 되는 모욕을 겪을 것이라고 합니다(18절, 왕하 24:15; 25:6-7). 이 예언은 주전 586년에 성취됩니다. 586년은 히스기야가 죽은 해인 주전 687년에서 약 100년이 지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00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언에 대해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라고 덧붙입니다(19절). 여기서 태평은 히브리어로 샬롬(שָׁלוֹם)입니다. 샬롬은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좋고 이웃이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샬롬입니다. 진실은 히브리어로 에메트(אֶמֶת)입니다. 에메트는 기본적으로 진실이라는 뜻인데 "믿음"과 "굳건함"이라는 파생적인 뜻으로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 그러므로 믿을만 합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섭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유다가 샬롬과 에메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힘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그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67쪽).
그의 이 말은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표현된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다. 히스기야의 이 말은, 하나님의 예언이 그 약속 내용대로(6절) 될 것이니만큼 그 말씀 자체가 선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나 그 자손들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믿은 그의 신앙 고백으로 보입니다. 좋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당한 민족적인 고난은 선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는 집단적으로 죽음의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일에서 선한 일을 이루십니다. 유다 민족을 정화시키신 것입니다. 정화시키시고 바벨론에서 다시 이끌어 내셔서 거듭남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겔 37:12-14). 이 일은 죄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겔 37:1-14). 그러므로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선합니다. 그 어떤 악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악이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영광을 더욱 드높입니다.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처지에 있든지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정 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세우신 이유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히스기야는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20절). 이 수로는 지금까지 남아있어서 많은 성지순례객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성 밖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 샘 물을 예루살렘 안 실로암 연못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수로를 만든 이유는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포위 공격을 믿음으로 극복한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기의 때에 놀라운 믿음의 사람을 세우셔서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앗수르에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은 후에 므낫세가 왕이 되었습니다(21절). 므낫세는 악한 왕입니다(21:2).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 열왕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성경 | 열왕기하 22장 1-20절 |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 통곡하는 요시야 (13) | 2024.10.11 |
---|---|
매일성경 | 열왕기하 21장 1-26절 | 므낫세와 아몬의 악행 (9) | 2024.10.10 |
매일성경 | 열왕기하 20장 1-11절 |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기도한 히스기야 (45) | 2024.10.08 |
매일성경 | 열왕기하 19장 20-37절 | 완벽하게 보호를 받는 유다와 자기 집에서 죽임 당하는 산헤립 (48) | 2024.10.07 |
매일성경 | 열왕기하 19장 1-19절 | 히스기야의 믿음 (24) | 202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