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22장 1-20절 |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 통곡하는 요시야

2024. 10. 11. 19:29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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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왕기하 22:1-20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요시야가 왕이 되다

    히스기야의 아들은 므낫세였습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와는 달리 악한 왕이었습니다(21:2). 그의 아들 아몬도 악한 왕이었습니다(21:20).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왕이 된 지 2년 만에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20:23). 그 다음 왕으로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21:26).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아몬이 갑작스롭게 2년 만에 죽었으므로 요시야가 왕이 될 때 나이가 겨우 여덟 살이었습니다(1절). 어려서 정치를 할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요시야의 어머니 "여디다"가 경건했기 때문에 어린 요시야가 나라의 일을 바르게 했을 것이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74쪽). "여디다(יְדִידָה)"는 "사랑 받는(beloved)"이란 뜻입니다. 여디다의 아버지는 아다야였습니다. 아다야(עֲדָיָה)는 "여호와께서 당신님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신다(Yah has ornamented Himself)"라는 뜻입니다. 아다야는 보스갓 출신입니다. 보스갓(בָּצְקַת)은 "높은 곳"이란 뜻으로 라기스와 에글론 사이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성읍입니다(수 15:39).

    태어나기 전에 예언된 왕

    요시야는 태어나기도 전에 그 이름이 예언된 왕입니다(왕상 13:2). 이 예언은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제단을 요시야가 없앨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로보암에게 예언되었던 요시야는 약 280년 뒤에 태어나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혜를 후하게 주실 것입니다. 꾸짖지 않으실 것입니다(약 1:5).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요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2절 상). 그는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2절 하). 정직하게 행했다는 것은 곧게 나아갔다는 뜻입니다. 요시야가 곧게 나아갔다는 것을 뒤에서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부연합니다. 요시야가 따라간 길은 다윗의 모든 길이었습니다. 요시야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성전을 수리함

    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4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5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서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7   그러나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진실하게 행함이니라

     

    요시야는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했습니다(6절). 이때는 주전 623년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74쪽). 

    그때에 성전이 퇴락하였던 것은 우상 섬기던 왕들이 그것을 등한히 했을 뿐 아니라 그 시설들을 많이 훼파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왕하 16:14-18). 요시야는 즉위한 지 18년에 성전 수리에 착수하였다. 그가 여호와를 찾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였고(대하 34:3), 예루살렘에 있는 여러 우상들을 훼파한 것은 20때 였고(대하 34:3-4), 각 지방에 있는 우상들과 그 단들을 다 훼파하기까지는 6년이 지나서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대하 34:3, 8). 이만큼 그는 일찍부터 신앙생활에 굳게 섰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는 서기관 사반을 시켜 성전 수리비를 여러 책임자들에게 조달케 하였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가 배울 것은, 1)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을 공적(公的)으로 여러 사람들이 취급하였다는 것(4-5절). 5절의 "감독자"란 말은 "감독자들"이다. 대하 34:12에는 "감독자들"의 이름(네 사람)이 밝혀져 있다. 2) 감독자들은 재정을 "진실히" 취릅하였다는 것(7절).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교회의 재정을 취급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건덕(建德)에도 만전을 기하였다(행 11:29-30; 고후 8:20-21). 

     

    일을 맡길 때에는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알고 함께 책임질 수 있도록 공적(公的)으로 맡겨야 합니다. 특별히 돈이 왔다갔다 하는 일은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탈이 나지 않습니다. 

    율법책을 발견함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요시야는 믿음으로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면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던 율법책을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했습니다. 율법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성전을 수리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새롭게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눅 15:20). 

     

    이 율법책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75쪽). 

    이때에 발견된 책은 하나님의 율법책이었다. 혹설에 이 책이 신명기라고 하며, 혹은 모세의 율법 선집(律法選集)이라고도 하나(Otto Thenius) 모두 억측에 불과하다. "율법책(סֵ֧פֶר הַתּוֹרָ֛ה)"이란 말은 "그 율법책"이란 뜻이니 이미 알려져 있는 책을 가리킨다. 이것은 모세 오경이다(Delitzsch).  

     

    요시야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전을 수리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 오경을 발견하게 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요시야의 마음을 받아주신 것입니다. 

    책의 내용을 듣고 깨달음

    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10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서기관 사반은 왕에게 보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 관련해서 보고를 하면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습니다(9-10절). 그리고 그 책을 왕 앞에서 읽었습니다(10절 하). 요시야는 그 율법책의 말을 듣고 곧 그의 옷을 찢었습니다(11절). 그가 옷을 찢은 이유는 조상들이 책에 나온 말씀을 듣지 않고 행하지 않아서 여호와의 진노가 크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13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고 요시야는 그 말씀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그 말씀과 함께 일하셔서 요시야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말씀이 요시야의 마음에 떨어졌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요시야는 그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요시야는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졌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을 말씀에 비추어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사람을 보내서 이 책의 말씀에 대해서 여호와께 물어보라고 명령했습니다(12-13절). 박윤선 목사님은 "이와 같은 탐문(探問)은 그 율법책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믿는 신앙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도의 표본이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76쪽).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은 올바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바른 질문을 할 수도 없습니다. 믿어야 하나님께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으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답을 듣고 다시 물으면서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여선지 훌다의 예언

    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15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
    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17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요시야의 물음에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 백성에게 임하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답을 준 사람은 "여선지 훌다"였습니다(14절). 훌다는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둘째 구역은 스바냐 1장 10절에도 등장하는데 여기는 히스기야 시절에 건축된 구역입니다. 이 구역은 다윗성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성전과 왕궁을 기준으로 하면 남서쪽입니다. 비교적 최근 연구자들은 앗수르의 침공 때 예루살렘으로 유입된 난민들을 위해서 히스기야가 이 구역을 건축했다고 봅니다. 하여튼 여선지 훌다는 이 둘째 구역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둘째 구역
    예루살렘 둘째 구역, 자료출처: http://m.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93

     

    그런데 훌다의 어투가 조금 이상합니다.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이라고 합니다. 또한 요시야를 가리켜서 내 종이라고 하지 않고 "유다 왕"이라고 합니다(17, 18절). 이 어투 때문에 학자들은 여선지 훌다가 북이스라엘 난민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과 어떤 거리가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선포하시면서 거리를 두시는 것 같은 느낌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좋은 것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재앙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더욱 힘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은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의지해서 그것에게 좋은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런 것이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신에게 분향하는 것은 하나님을 심히 노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나요?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복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복된 마음입니다. 

    요시야에게 임할 은혜

    18   너희를 보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들은 말들에 대하여는
    19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

     

    훌다는 재앙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요시야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합니다(19절). 요시야는 재앙의 말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된 사람만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즉 성령님의 감화가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항상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느끼게 하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는 말씀과 함께 역사하셔서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하실 것입니다. 

     

    통곡하는 요시야
    옷을 찢으며 통곡하는 요시야

     

    하나님께서는 요시야가 평안히 묘실로 들어갈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0절). 안 믿는 사람이 보기에 이게 무슨 복이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죽는 것도 복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죽음 이후도 주관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활을 바라보면서 죽기 때문입니다. 다만 살 동안 우리는 요시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그 은혜는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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