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17장 24-41절 | 앗수르의 식민정책과 선교

2024. 10. 3. 18:3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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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왕기하 17:24-41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쫓겨난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당신님 앞에서 내쫓으셨습니다(17:23). 이스라엘은 고향에서 쫓겨나서 앗수르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잡혀가서 유배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주 원인은 우상숭배였습니다(17:7-12).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던 그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켜 ... 행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13).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의 죄

    우상 숭배는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타락하여 우상을 숭배로 나아가기가 너무 쉽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자기가 우상을 숭배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상체계를 잘 배워서 자기 안에 있는 이교도의 관습, 우상 숭배의 특징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은 신자가 평생에 싸워야 하는 싸움입니다. 신자는 개인의 사상 체계 안에서 이런 싸움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하나님 나라의 광채가 비치도록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을 옮겨다가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24절에는 앗수르 왕이 펼친 정책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36쪽). 

    "구다"는 바벨론의 동북쪽으로 15마일(24.1km) 되는 곳에 자리하였고, "야와"는 유브라데 강변에 있고, "하맛"은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 있는데 이스라엘의 북쪽 변경이다(민 13:21; 왕상 8:65). "스발와임"은 메소포타미아의 남단 유브라데 강 양 언덕에 걸쳐 있었다. 이렇게 여러 지방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식민(植民)된 것만큼 거기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후대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족이다. 

     

    구다와 스발와임과 아와
    앗수르인이 살던 지역, 구다, 아와, 스발와임

     

    여기에서 하맛은 다메섹에서 북쪽으로 230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나마 하맛이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나머지 지역은 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이들은 굉장히 먼 곳에서 이스라엘 땅까지 옮겨 온 사람들입니다. 가까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25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27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구다와 스발와임과 아와는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곳으로 가나안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옮겨왔기 때문에 이들은 이스라엘의 풍습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땅에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셔서 몇 사람을 죽이셨습니다(25절).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36쪽). 

    이때에 사마리아에 식민된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한 고로" 그들이 사자들에게 물려 죽는 화를 당하였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방편으로 하여 인간의 죄를 벌하시기도 한다(왕하 2:23-24)(참조. 암 5:19). 이스라엘 민족은 사로잡혀 갔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교만한 이방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사실이 이 사건으로 증명된다. 이 사건 때문에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포로 중에서 제사장 한 사람을 사마리아로 보내어 그곳 사람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제사장은 우상 숭배도 인정하는 혼합주의 종교인이어서 다른 미신(迷信)들을 용납하였다. 

    하나님의 땅에 거하는 방법

    신명기 11장에 보면 가나안 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이 땅은 애굽 땅과 다른 땅입니다. 애굽 땅에서는 나일강을 이용해서 물을 댈 수 있었습니다(신 11:10). 그러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셔야만 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즉, 이 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 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명령을 잘 듣고 따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신 11:13).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법칙은 이방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이방인이 하나님 나라의 땅에 들어와서 살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식입니다. 이것을 이방인이 알게 됩니다(26절).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심판이 이방인에게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 11:11하-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이방인을 치신 이유는 그 땅을 소중히 여기셔서라기 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28절). 

    자기들의 신상들을 만들어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그러나 이주해 온 민족들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들도 혼합 종교를 갖게 되었습니다. 즉, 각자의 우상들도 섬기면서 동시에 여호와도 경외하게 된 것입니다(33절). 이것은 엄연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로마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은 이방인들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긍휼이 다시 이스라엘에게 향합니다. 즉, 사람이 순종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섬긴 우상들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36쪽). 

    여기서는 그때 사마리아의 종교가 혼합주의였음을 말해준다. 각 민족이 자기들의 신을 만들어 자유로이 섬기도록 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동물들도 신으로 섬겼다. 델리취(Delitzch)에 의하면, "숙곳브놋"은 암탉의 형상이고, "네르갈"은 수탉의 형상이고, "아사마"는 숫염소의 형상이고, "닙하스"는 개의 형상이고, "다르닥"은 나귀의 형상이다. 그리고 "아드람멜렉"은 공작의 형상이고, "아남멜렉"은 꿩의 형상이다. "아드람멜렉"은 바람과 비의 신이요, "아남멜렉"은 하늘의 신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그 민족의 풍습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33절). 그들이 여호와는 공포심으로 섬겼고, 자기들의 신은 사랑으로 섬겼을 것이다(Matthew Henry). 

    사랑과 두려움

    박윤선 목사님께서 메튜 헨리를 인용하여 주석한 대로 이들은 자기들의 신을 가져와서 섬기면서도 여호와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본문에 나온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여기서의 경외는 사랑이 담긴 인격적인 경외가 아니고 단지 두려움만 있는 경외입니다. 섬기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자를 보내서 죽일 수 있는 신으로 알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만 섬기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가령 재앙이 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달래기 위해서 주일 예배에만 겨우 참석하는 식입니다. 그렇게 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것, 예를 들어서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추구해 나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을 다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본능대로만 살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지 않는 사람은 사람 이하의 존재로 격하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만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참된 모습을 나타내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게 되면 그것을 닮아갑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동물들의 형상을 한 신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긴 것처럼 그들은 닭, 염소, 개, 나귀, 공작, 꿩 같은 가축의 형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간의 인격적 교제를 누리지 못하고 마치 가축처럼 자기들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본능에 따라서만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만약 본능대로만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가 참되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5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37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큰 능력과 편 팔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이십니다. 그들의 구원자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만 예배하고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36절).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에 이주한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부터 배웠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기(28, 32절) 전에 하나님께서 누구신가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신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 역사에 잘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큰 능력과 편 팔로 ...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일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

    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40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오직 자기의 하나님만 경외해야 합니다(39절).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아야 합니다(38절). 왜냐하면 자기를 구원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39절 하).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 복음을 듣지 않았습니다(40절).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우선으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칠 것은 하나님께서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배울 것은 하나님과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3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해 온 이방인들에게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 기회, 하나님과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갈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교

    선교는 신약 시대가 되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구약 시대에 이미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선교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는 선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그 일을 행하셔야만 사람이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듣고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덕분입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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