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애가 2장 11-22절 |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2024. 10. 20. 07:3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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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애가 2:11-22

    찬송가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안정된 나라에 사는 은혜

    에루살렘이 멸망할 때 그 백성들은 그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지도자들이 먼저 심판을 당했기 때문입니다(2:9-10). 유다는 더 이상 나라의 모양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2:2). 나라를 이루어 안정되게 살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덕분입니다. 우리는 이것에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기근의 참상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12   그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기절하여 그의 어머니들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머니들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12절은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함으로 인해서 임했던 기근을 묘사합니다. 기근을 묘사하면서 특별히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주석, 670쪽). 

    사람이 아무리 강퍅하여도 어린 것들의 말이나 그 당하는 일로 인하여 감동을 받는 일이 많다. 특히 어린 것들이 기근으로 인하여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는 그때의 사람들로 하여금 죄감(罪感)을 느끼게 한다. 이런 비극은 그때 사회의 죄악을 벌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본서를 읽을 때에, 거기 묘사된 환난의 내용이 이와 같이 죄를 깨닫게 하는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재앙이 임할 때 가장 크게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입니다.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이 그들입니다. 어느 사회이든지 사회가 잘 돌아가면 약한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귀히여김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악이 만연하면 약한 사람들부터 죽어나갑니다. 이 구절은 당시 유다 사회가 얼마나 악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약한 사람이 얼마나 잘 지내는가 하는 것은 그 사회의 건강 정도를 나타내줍니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그 안에 포함됩니다. 

    비교할 수 없는 고통

    13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까 처녀 딸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까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당한 일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참담한 일이라고 합니다.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까",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까",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이 말이 그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이렇게 심하게 벌하신 이유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71쪽).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통하여 자기의 살아 계심을 만방에 보여 주신다. 그들이 잘하면 그가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그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고, 그들이 잘못하면 벌을 주어 역시 그리 하신다. 특별히 그 벌이 죄 값인 것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그는 아주 두드러지게 벌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많이 준 자에게서는 많이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 원리이다(눅 12:47-48).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이 말은 예루살렘이 당한 재앙이 너무 심하여 아무도 고쳐주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예루살렘이 큰 재앙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문제,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를 사람들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죽음보다 더한 문제가 죄의 문제입니다. 죄 많은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처럼 끔찍한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죽음은 죄를 제어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이 죄를 없앱니다. 이것이 놀라운 신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되셔서 죽으심으로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효력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짐을 지면서 곤비할 때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그것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를 고쳐줄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들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가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거짓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만 보았도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원인으로 "네 선지자들"이 등장합니다. 이 선지자들은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본 자들입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이 참 선지자였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묵시를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방향으로 백성들을 꾀었습니다. 거짓 경고를 했고 백성들의 마음을 미혹하게 할 것만 보고 전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죄악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님은 한 가지를 더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71-672쪽). "이 거짓 선지자들은, 민족의 죄악을 올바로 지적하는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를 계속적으로 핍박하였다." 맞습니다. 혼돈의 시기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유혹하여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멸망의 원인입니다. 

    원수의 조롱

    15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예루살렘은 모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처참하게 무너진 예루살렘을 보면서 조롱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라고 하였습니다(15절). 이것은 예루살렘을 더욱 비참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이라 일컬음을 받던 성읍이 한순간에 망했으니 자기들의 치욕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도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원수들은 비웃으면서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원수가 능력이 있어서 이룬 일이 아닙니다. 원수는 자긍할 수 없습니다. 혹시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17절에 나옵니다.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대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범함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심입니다. 또한 원수가 즐거워하고 대적자들의 뿔이 높이 들린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고난을 당할 때에 마땅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임을 알고 겸손하게 마음을 찢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18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고난의 때 사람은 정신을 차립니다.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이렇게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시적인 표현으로 예루살렘 성벽에게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라고 합니다. 성벽은 공동체를 아우르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벽에게 눈물을 흘리라는 것은 예루살렘 공동체 모두 눈물 흘리며 부르짖으라는 뜻입니다(18절 하, 19절 상). 

     

    유대인들의 통곡
    유대인들의 통곡

     

    예루살렘 공동체는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어야 하는데 초저녁에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을 때에는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구해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손을 들어 자기의 무력함을 표하고 자기 전부를 바치는 심정으로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21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내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나이다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
    22   주께서 내 두려운 일들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 때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나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예레미야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여호와여 보시옵소서"라면서 호소합니다. 바벨론이 포위했을 때 기근이 임해서 여인들은 자기 아이들을 잡아 먹었습니다. 이것은 극히 비참한 참상입니다. 이 참상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신 28:53-57). 이 일은 신명기에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유대인들은 반성하면서 자기들이 왜 그런 극도의 환난을 당했는지를 깨닫고 율법을 제일원칙으로 해서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우상숭배와 다름 없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위해서 그것을 지킨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20절). 그들은 자기 직임을 다하지 못한 벌을 받았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 처녀와 청년들이 다 칼에 죽었습니다(21절).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을 정도로 원수가 와서 다 멸했습니다(22절 하). 신명기에 기록된 모든 두려운 일들이 사방에서 몰려와서 예루살렘 성을 쳤습니다(22절 상).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73쪽). 

    위의 몇 가지 참변들을 목도(目睹)하는 자로서 어찌 죄 생각이 나지 않으랴? 그뿐만 아니라 이 참변들은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도무지 변동 없이 관철된다는 것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회개를 독촉하시되 끝까지 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회개치 아니할 때에는, 그의 거룩한 계약에 내포된 원리대로(공의대로) 변을 내리신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런 참변들을 볼 때, 하나님의 계약을 회상하고 하나님의 신실성과 공의를 깨달아 회개할 수밖에 없으며, 그대도 그들이 회개치 않는다면 그들의 영혼까지도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깨달았지만

    바벨론 유수 이후 유대인들은 절대 어떤 형상도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주 에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넘겨주는 끔찍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그들의 눈은 계속 가려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올바로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돌이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은혜 없이 살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미리 정하신 일

    예루살렘이 멸망 당한 것은 이미 정하신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17절). 에베소서에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로 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엡 1:3, 5). 우리에게는 이런 복된 운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미리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처럼 자기 의를 위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킵니다. 믿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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