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애가 2장 1-10절 | 성전을 더럽히는 죄와 그에 대한 심판

2024. 10. 19. 14:2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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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애가 2:1-10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나님 나라를 사랑한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슬픔으로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호소하면서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라고 회개의 기도를 올렸습니다(1:20). 이것은 유다 전체를 마음에 품고 드린 기도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 감정없이 선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바벨론 왕이 지우는 멍에를 지라고 선포했습니다(렘 27:8). 얼핏보면 민족에 대한 반역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역이 아니고 사랑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얼마나 자기 민족을 사랑했는지가 애가에 잘 드러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던지셨음이여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딸 시온은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습니다. 구름으로 덮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얼굴을 비추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67쪽).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은 하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땅에 던지셨습니다. 신자는 우리의 아름다움이 하늘의 아름다움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름다움은 하늘의 아름다움입니다. 죄를 지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그 아름다움이 땅에 던져집니다. 교회의 제도와 행사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으로 하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풍겨나는 아름다움은 하늘의 아름다움이어야 합니다.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성전은 하나님의 발판입니다(시 99:5; 132:7).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발판 삼으셔서 성전에 임재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심으로 그 발판을 기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셨습니다. 성전이 더이상 기능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맹렬한 진노로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

     

    바벨론이 와서 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진노하셔서 그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모든 거쳐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노하셔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셨습니다. 또한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라는 다스림을 뜻합니다.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다는 것은 유다의 모든 제도와 다스림과 그것을 이루는 지도자들을 다 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유다가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습니다. 여기서 뿔은 권세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권세가 잘라져서 더이상 아무 권세가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 어떤 세력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세력이 있어야 외세로부터 자기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권세가 강하면 외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진노로 다 없어졌습니다.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침략했을 때에는 보호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우상을 숭배한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돌이키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원수들이 침략했을 때 그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들이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른손으로 보호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로 야곱을 불사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이었습니다(렘 17:27). 하나님께서는 아무 예고 없이 진노를 쏟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셔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살 길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말씀대로 심판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살 길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은 살 것이고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 영원한 죽음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대로 일어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역사의 끝에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원수 같이

    4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마치 그들의 원수처럼 행동하셨습니다. 4, 5절에는 "원수 같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68쪽).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하여 "원수 같이" 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애호자(愛護者, 도울 호: 사랑하고 소중히 보호함) 이렇게도 원수처럼 나타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시는 태도를 취하셨기 때문이다. 성도가 징계를 받을 때는 하나님을 그렇게 보기 쉽다. 그렇지만 그 내막에 있어서는, 그가 그 성도를 사랑하는 열심을 지니고 계신 것이다(히 12:6). 그러므로 그때에 성도가 회개하는 심정으로 참아 나가면 필경 은혜를 받는다(참조. 욥 5:17, 18).

    그의 초막을

    6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그의 초막"은 성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초막에 거하듯이 성전에 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거처를 헐어버리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성막은 거룩한 시설에 불과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그것이면 그만으로 생각하였다(렘 7:4). 성막을 이렇게 취급할 바에는 그 존재조차 필요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동산처럼" 여겨 서슴치 않고 헐어 버리신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69쪽).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성전을 잘 가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예배에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들의 안위와 안정, 성공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의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도 폐하셨습니다. 절기와 안식일도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기뻐하기보다 절기와 안식일이라는 제도 자체만 중요시하고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안식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참된 안식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기뻐하지 않은 결과 그들은 안식을 빼앗긴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 모형도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왕과 제사장도 멸시하셨습니다. 왕과 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인들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베풀어서 백성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유다 왕들 중에서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순종한 왕은 몇 명 없었습니다. 제사장 직임은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직임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올바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나아가도록 제사장은 백성에게 율법을 하나하나 잘 가르쳐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 직임을 잘 감당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백성은 율법을 모르고 방자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저 형식만 지키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직임도 폐하셨습니다.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제단을 버리셨습니다. 이 제단은 여호와 당신님께 나아오도록 만든 제단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을 버리신 것입니다. 또한 자기 성소를 미워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69쪽). 

    그가 이렇게 행하심은 그것들 자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잘못 사용하여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여기 "자기"란 말이 두 번 나온다. 곧, 위에 말한 시설들이 자기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폐기하시기를 아까워하지 않으신다는 뜻을 보여 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우리 인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고 제단과 성소를 잘못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원수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드는 것을 그대로 두셨습니다. 마치 절기 때 하나님의 백성이 성전에 가득한 것처럼 원수가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애가 주석, 669쪽). 

    이 말씀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유다 민족이 종교적 절기들을 오용하였으므로 이제 그것들은 폐기되고, 도리어 이방 군대가 그 대신 침입하여 절기를 지키는 것처럼 떠들어댄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타난 환난은, 종교적 절기를 외식(外飾, 꾸밀 식)으로 지킨 유대인들의 죄악을 알게 해 준다. 

    줄을 띠고

    8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여호와께서는 시온의 성벽을 허실 때 줄을 띠고 무너뜨리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70쪽).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훼파하시되 "줄을 띠고" 하심은, 어디까지나 그의 훼파 행위는 공의(公義)에 의한 정확한 심판 원리대로 된 것임을 보여 준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때에 예루살렘 멸망이 너무 처참하기 때문에 허투로 된 것처럼 생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선지자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측량줄이 있었음을 기억시킨다. 

     

    사람의 분노는 대부분 무차별적으로 발산됩니다. 사람은 사리에 정확하게 분노를 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공의를 정확하게 이루십니다. 마치 줄로 측량한 것처럼 정확한 공의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진노가 맹렬한 것처럼 보일지라도(3절) 그 진노 중에 살릴 사람을 반드시 살리십니다(렘 38:2 항복하는 자; 39:18 에벳 멜렉; 45:5 바룩).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당시 예루살렘의 멸망이 얼마나 원통하고 슬펐는지 선지자는 성벽과 성곽이 통곡했다고 합니다. 성벽과 성곽은 무생물로 통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보고 얼마나 심하게 통곡을 했는지 마치 성벽과 성곽이 통곡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성벽과 성곽은 보호하기 위해서 지은 것인데 그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도 심한 통곡거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벽과 성곽이 함께 쇠하였습니다. 아무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왕과 지도자들이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성벽과 성곽뿐만 아니라 성문도 넘어져서 땅에 묻혔습니다. 빗장은 부서져 파괴되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을 든든히 지키던 모든 방어시설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왕과 지도자들은 율법 없는 이방인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있어서 큰 나라였던 이스라엘은 이제 율법 없는 이방인들에게 점령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70쪽). 

    "왕과 지도자들"은 한때 백성을 다스리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였다. 율법을 무시하던 그들은 이제 율법 없는 세계(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천대와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선지자들"(거짓 선지자들)은 한때 백성을 속이면서 자기들이 받은 묵시(默示)를 믿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거짓 묵시를 주장하던 그들도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이 묵시를 받지 못하는 자들로 드러나는 날이 왔다. 속이는 자가 언제까지나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정체는 필경 드러나고야 만다. 

    예루살렘 처녀들은

    10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시온의 지도자들 중에는 장로들도 있었습니다. 장로들은 율법을 그대로 행한 삶을 살면서 얻은 지혜로 백성들을 지도하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삶을 살지 못했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백성을 바르게 가르치지도 못했습니다. 평소에는 성문에 앉아서 재판하던 그들은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두르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70쪽). 

    또한 유다 민족의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로"들은 한때 거짓되게 지도하면서 세력을 썼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그들도 별 수 없이 "땅에 앉아 잠잠하여" 속수무책(束手無策, 묶을 속, 대쪽 책, 계책 책,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함)의 처지로 떨어지는 날이 왔다. 이렇게 지도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백성을 지도하지 못하게 되니, "예루살렘 처녀들"(일반 백성을 의미함)은 실망 중에서 "머리를 땅에 숙였다".

    성전을 더럽히는 죄와 그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 중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바울은 "너희"가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공동체가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공동체는 사람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고전 3:21).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자랑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자랑하는 것은 마치 옛날 이스라엘이 하나님 아닌 성전이나 율법이나 제도를 자랑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과 같습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멸하십니다(고전 3:17).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성전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아 이런 죄를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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