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27장 1-11절 | 스스로 구원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2024. 7. 3. 21:44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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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27:1-11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26장의 내용

    예레미야는 성전과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재앙을 선포했습니다. 그런 그를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고발했습니다(26:11). 그러나 백성의 고관들과 일반 백성들과 장로들은 예레미야를 변호했습니다(26:16). 특별히 장로들은 히스기야 때 미가 선지자의 예를 들어서 예레미야를 죽이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26:19). 여호야김 당시 우리야라는 선지자도 예레미야와 같은 내용을 예언했는데 그는 여호야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26:20-23). 하지만 예레미야는 아히감의 도움으로 보호를 받았습니다(26:24).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

     

    1절은 시점에 대해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라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오렐리(Orelli)와 알더(Aalder)를 기반으로 시드기야라고 써야 하는데 여호야김이라고 잘못 쓴 것이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1쪽). 그리고 성경에 보면 각주에 여호야김을 시드기야라고 써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시드기야가 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한 해는 주전 597년입니다. 참고로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해는 주전 608년입니다. 약 9년의 차이가 납니다. 또한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둘 다 요시야의 아들들입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이고 시드기야는 셋째 아들입니다(대상 3:14). 저는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때는 26장 1절과 같이 여호야김 때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9년 후의 일을 예레미야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26장과 27장의 내용이 연속성 있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 즉 성전과 예루살렘 성에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그 말씀은 시드기야 때에 성취됩니다. 이 말씀이 시드기야 때 이루어지는 이유는 여호야김 때 왕과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26장과 27장은 같은 시점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서 너의 목에 걸라고 하셨습니다(2절). 여기서 줄은 멍에를 매기 위한 것이고 멍에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2쪽).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그의 목에 "멍에"를 메고 다니도록 하신 것은, 유다 나라와 그 맹방들이 장차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을 예언하는 행동 예언이다. 이것은 침묵적인 설교이고 견학시키는 교훈이다. 시국이 급박하여 올 때에는 하나님께서 말없는 인상 깊은 행동으로 사람들을 경고하신다. 그뿐 아니라, 그때에 유대인들이 너무도 완강하게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고로, 말 없는 상징적 예언으로써 그들의 눈앞에 인상 깊게 한다. 

    상징행동

    전에 어떤 청년부 교역자가 청년들에게 설교하기 전에 교회 앞에서 노숙자 차림으로 변장해서 앉아 있었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서 그 교역자는 노숙자 차림 그대로 설교단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는 변장을 풀고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본문은 요한일서 4장 20절이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 사랑할 수 없느니라" 청년들은 그 교역자의 설교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청년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예배 드리러 들어올 때 본 노숙자가 자기들의 담당 교역자였고 그가 설교단에서 사랑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말씀만 전했으면 전해지지 않았을 충격이 전해진 것입니다. 상징행동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가 종결된 시대에는 상징행동이라고 하면서 이런 일들을 행하는데 굉장히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청년들이 무감각하고 말씀을 전해도 전혀 변화가 없고 불순종하면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이런 충격 요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청년들에게 이런 충격요법을 써야만 했는가는 의문입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돌볼 때에 목자는 양들을 귀하게 여기고 주님께서 피값으로 사신 귀한 양들인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멍에 멘 소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3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주어 에돔의 왕과 모압의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의 왕과 시돈의 왕에게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주에게 말하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의 주에게 이같이 전하라

     

    이때 시드기야를 보러 온 사신들은 남유다와 동맹을 맺은 나라가 보낸 사신들입니다. 그 나라들은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두로와 시돈이었습니다(3절). 하나님께서는 이 사신들에게도 상징행동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4절). 이 부분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2쪽). 

     

    이 나라들은 유다와 연합하여 바벨론을 대항할 태세를 갖추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 나라들이 바벨론을 대항하지 말고 순종하여 섬기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저 열국의 사신들의 손에도 "줄과 멍에"를 주어 그들의 "왕"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하였을 때에, 1) 그것은 유다 왕과 그 사신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단합하여 바벨론과 겨누어 일전을 준비하는 단계인데, 싸움도 해 보지 않고 항복하라는 권고는 그들에게 납득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2) 그뿐 아니라 예레미야의 그 행동은 위험한 것이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의 따가운 전쟁 준비를 일개인으로서 만류시켜 보겠다는 것은, 그때의 정치가들의 분노를 격동시킬 만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만군의 여호와의 대명을 받아 담대히 그대로 행한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전도자의 정신이다. 3) 예레미야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하나의 정치적 간여가 아니다. 예레미야는 단지 하나님에게서 받은 대로 말씀하는 것 뿐이니, 그것이 비록 정치면에 저촉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니만큼 종교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치면에서는 관계할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가 창조하신 천지 만물 중 무엇에 대해서든지, 그의 말씀은 주권으로 임한다. 진정한 종교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귀정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 사역 방법이 영적인 것이지만 그 관계 영역은 피조 세계 어디든지이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 생활의 어떤 방면에서는 무관주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4)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 요지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일으켜 그때의 세계를 주장하도록 경륜하셨으니만큼, 유다와 그 맹방들은 바벨론에게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다. 곧 이것이 그들의 살 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예언을 유다에게뿐 아니라 이방에도 전하게 하셨으니,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살 길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이시니만큼, 살게 하는 복음을 이방인들에게도 전하여 주신다(롬 3:29, 30).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성호는 두 가지 의미를 가졌으니, 1) 천지 만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군의 여호와")이신 동시에, 2) 이스라엘 민족에게 계시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천지 만물을 주장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신들에게도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주장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모든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리고 그 주권을 모든 이방 나라에 알리셨습니다. 주권을 알리실 때에 박윤선 목사님께서 잘 말씀하신 대로 살 길을 제시하시면서 알리셨습니다. 살 길, 즉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면서 알리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5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에게 주신 말씀이 5절 이하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당신님의 주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땅과 땅 위의 모든 사람과 짐승을 만드셨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사람에게 주셨다고 하십니다(5절). 여기서 옳다는 말(יָשַׁר)은 의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샤르(יָשַׁר)는 "곧은", "알맞은" 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알맞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는 역사가 진행되면서 계속 바뀝니다.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는 "내가 보기에 옳은 대로 그것을 누구에게 든지 주었노라"라고 번역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든지 알맞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권력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라

    이 때에 하나님께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들과 심지어 짐승들까지 주신 사람은 바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입니다(6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3-354쪽).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와 그 맹방들에게 바벨론을 섬기며 순종하라는 상징 예언을 주신 것(3, 4)은 그가 바벨론을 높이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에 순종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벨론이 스스로 바벨론이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 때 국가들을 공의대로 심판하시기 위하여 바벨론을 일으키셨기 때문에 강국이 된 것이다. 그가 어떤 나라들은 낮추시고 어떤 나라들은 높이시나니, 그것은 역사상 나타난 그의 심판 행위이다. ... 이 세계에 있어서 어떤 나라가 권세를 잡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장중에서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어떤 강국을 볼 때에도 그 강한 나라 자체를 찬양할 것이 아니라, 심판권을 가지고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찬양해야 된다. 신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강화할 수 있는 깨달음을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신자는 국가들이 움직이는 현상을 보고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엄을 깨닫게 되며 그를 두려워하게 된다. 

    이렇게 국가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절대적 주권을 가지시고, 그때 알려진 세계의 모든 땅을 느부갓네살에게 주셨다. 그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그(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때 세계의 독재자인 느부갓네살도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이 되었으니, "내 종"이라는 말씀이 그 뜻이다. 

    하나님 경외하기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세우신 이유는 심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심판의 도구로써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잘 말씀하신 대로 신자들은 정치적 상황을 보면서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할 수 있습니다(딤전 2:1-2). 

    기한이 이르기까지

    7   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들어서 쓰시는 일은 기한이 있는 일입니다. 그 기한은 그 아들과 손자까지 정도입니다. 그렇기 길지 않은 시간동안 바벨론이 집권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일어날 것이고 바벨론은 그들에 의해서 점령될 것입니다.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이 부분은 애매합니다. 개역한글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 마는" 표준새번역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그 때가 되면) 그의 나라도 강한 족속들과 위대한 왕들을 섬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여러 나라 왕들이 연합하여 바벨론을 치므로 바벨론이 패배를 당하고 여러 나라를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예언은 바사 왕 고레스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5쪽). 

     

    박윤선 목사님은 이 말씀으로 순종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5쪽).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권세를 주시면서도 그 권세를 받는 자에게 대하여 계속해서 주장하시고, 그의 집권의 시기까지 작정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계를 전적으로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서나 언제나 하나님에게 순종할 준비를 가지고 살아야 된다. 

     

    바벨론의 집권은 일시적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벨론이 어떻게 망할지를 먼저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벨론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알리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바벨론을 높이는데 있지 않고 심판하시는데 있으십니다. 바벨론은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고 나서는 곧 자기도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살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 길은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 그것을 순순히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태도는 다윗에게서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쫓겨갈 때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살려보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달게 받았습니다(삼하 16:5-13). 

    그 민족을 벌하리라

    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8절에서 바벨론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을 멸망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않는 백성과 나라를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5쪽).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바로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는 그런 자를 벌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에 순종하는 것은 결단코 비굴한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미의 순종이니, 그 행동으로 인하여 순종자의 양심의 자유가 파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순종 행위로써 하나님을 섬긴다(롬 13:1). 이 세상 국가들이 자주독립하는 것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원칙이로되(행 17:26), 때로는 하나님께서 강국을 일으켜 범죄한 나라들을 벌하시는 일이 있다. 이런 때에는 그 벌 받는 민족들이 회개하며, 그들에게 와서 통치하는 강국에 순종하는 것(하나님의 계명에 배치되지 않는 일들에 있어서)이 하나님의 뜻이다. 

    잘 구분해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배치되지 않는 일들에 있어서" 강국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강국에 순종한다는 명분으로 우상숭배를 하면 안 됩니다. 로마는 초대교회에 우상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은 타협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신자는 어떤 경우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고 어떤 경우가 우상숭배인지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거짓 예언자

    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
    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을 무시하라고 하십니다. 진리에는 반드시 거짓이 따라 붙습니다. 살 길로 행하지 못하도록 거짓이 따라붙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6쪽).

     

    여기 "너희 선지자"란 말은 거짓 선지자를 의미하고, "복술가"란 말은 살촉을 던져 그 떨어진 위치에 의하여 예언하는 점술가를 가리키고, "술사"란 말은 시일의 길흉을 점치는 자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하늘에 있는 구름을 보고 인간이 어떻게 행할 것을 말해 주는 자라고 한다. 그리고 "요술자"란 말은 주문 외우는 자들을 가리킨다. 위의 모든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가 아니고, 이방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나오는 속이는 자들이다. 그때에 유다 민족이 부패할 대로 부패한 사실은, 그들이 이런 속이는 자들의 말을 잘들은 사실을 보아 알 수 있다. 이런 속이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수단 방법에 의하여 신의 지시를 가르쳐준다고 하였다. 부패한 사람들은 공명정대한 계시의 말씀(성경)에 흥미를 가지지 않고, 저렇게 기괴하게 속이는 자들의 수단에 많이 넘어간다. 계시의 말씀이 부패한 인간본성에게는 흥미 없어 보여도, 실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그때에 직접 받은 계시의 말씀에 의하여 유다 민족이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위에 관설된 거짓 선지자들은 그와 반대로 민중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속이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였다.  

    뱀의 유혹

    만일 백성들이 거짓 예언을 듣는다면 백성들은 그들의 땅에서 멀리 떠나게 되고 쫓겨나게 되고 멸망하게 됩니다(10절). 이것은 아담 때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탄의 거짓말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나서 유배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살리는 말씀 

    하나님은 살리시기 위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런데 살리는 말씀은 박윤선 목사님이 지적하신 대로 흥미가 떨어집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것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말씀을 깨닫는 것이 살 길입니다. 신기한 것을 찾아다니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탄은 그런 자를 유혹합니다. 하와가 당한 유혹이 그런 것입니다. 뱀이 말을 하니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깨달아 믿는 것이 살 길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만이 살 길인 것입니다. 

    살게 하리라

    11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나라, 곧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보증하십니다. "내가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증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7쪽). 

     

    이 말씀을 보면, 1) 모든 참된 평안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참된 평안을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참된 감사를 드려야 한다. 2) 하나님은 모든 불신 세계에도 대주재이신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모르시는 일이 없고, 그의 주권이 관계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밭을 갈며 살아가는 것까지도 가능하게 해 주시는 이로서, 극히 평범한 일에도 관계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든지 그를 찾아 만나볼 수 있다. 

    스스로 구원하려는 시도를 멈추라

    핵심은 스스로 구원하려고 하는 시도를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을 달게 받는 것입니다. 벌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벌을 달게 받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붙잡아주시고 끝까지 보호해 주십니다.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피하면 더 큰 재앙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피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살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

    이런 의미에서 살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주어진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충실하게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 신자가 살 길입니다. 닥치는 재앙을 피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피할 길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는 것이 더 좋은 피할 길입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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