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27장 12-22절 | 징계를 내리시기 전에 살 길을 알려주시는 하나님

2024. 7. 4. 22:4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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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27:12-22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말씀대로 행하는 예레미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상징행동을 명하셨습니다. 그 행동은 줄과 멍에를 만들어서 목에 거는 것이었습니다(27:2). 예레미야는 그렇게 하고 시드기야 왕과 동맹국의 사신들에게 가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했습니다(27:6, 7, 11).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예레미야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12절). 

     

    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13   어찌하여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4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15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살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시 남 유다뿐만 아니라 동맹을 맺은 모든 나라들에게 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7쪽). 

    일국의 대권을 잡은 임금에게 다른 나라 왕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얼핏 보면 큰 모욕이고, 그 임금을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떨어뜨리는 두려운 말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임금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이런 말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그렇게 낮아지는 것만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이며, 따라서 그것만이 그의 살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에, 우리가 감심으로 순종하면 그는 도리어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 고전 11:31에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세우신 것은 유다 왕과 그 민족을 징계하시기 위함이니, 그 민족은 이제 거기에 감심 순종하는 것만이 구원받을 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본문에, "그리하면 사시리라(12절)"라고 한다.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기에 앞서 살 길을 먼저 알려주십니다. 회초리를 들지만 아이에게 뉘우치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얼른 용서해주려고 하는 아버지와 같은 모습입니다. 

     

    예레미야는 살라고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찌하여 ...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13절)"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와 같은 마음으로 전도합니다. 살라고 복음을 전합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하고 살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때로는 지옥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 때 조나단 에드워즈는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해당 구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8쪽).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으로 하여금, 그 받을 벌(바벨론을 순종치 않을 경우)을 기억시켜 회개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회개케 하심에 있어서, 회개의 결과인 생명과 회개하지 않을 때의 결과인 환난을 대조적으로 그에게 보여 주시면서 경성시키신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14절)"라고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 선지자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이때의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로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회개로 이끄는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자긍하게 하는 예언으로 회개할 생각이 없어지게 만드는 예언이었습니다. 자긍하게 하는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자긍하게 하는 말은 그를 사망으로 이끕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는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슴을 치게 하는 말씀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가슴을 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자긍하게 하는 말씀을 듣고 자긍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망하게 됩니다. 디모데후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 우리는 벌써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기구를

    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17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

     

    거짓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도 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성전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16절)" 이것도 거짓 예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8쪽). 

    이것은 유다 민족을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70년 동안 벌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에누리하여, 그들(거짓 선지자들)의 낙관주의를 교훈을 끝까지 세워 보려는 궤계이다. 그들은 일찍이 예언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면서(렘 6:14) 예레미야의 예언(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는 예언)과 대립하였다. 그러나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 군대는 내침하여 성전 기구를 바벨론으로 가져가기까지 하였다(제1차 침략: 여호야김 왕 제 3년 주전 605년; 제2차 침략: 여호야김 왕 때, 주전 597년). 이 장면에 있어서 거짓 선지자들은 교묘하게 설명하기를, 오래지 않아서 성전 기구도 속히 귀향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에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줄 모르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들었던 모양이니, 그 시대가 얼마나 부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제사장들의 입술에서 지혜의 말씀을 찾을 수 있어야 할 터인데(말 2:8), 그때는 그렇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들도 백성과 함께 거짓 예언 듣는 것을 회개해야 된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회개의 결과와 회개치 않을 때의 결과가 여기서도 대조적으로 표현되었으니, 곧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게 되게 하려느냐"라고 한 말씀이다. 

    복음의 내용 그대로를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유명해집니다. 돈과 명예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듣기 좋도록 전하는데 너무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의 내용 그대로를 회중들의 영적 상황에 맞추어서 전해야 합니다. 영적 상황에 맞추어서 회개를 선포해야 할 때가 있고 위로의 말씀을 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는 복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진실로 살 길이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설교를 채우면 안 됩니다. 

    고대 바벨론 성벽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과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0   이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인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가져가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 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됨을 고발합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빙자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정말 선지자였다면 하나님을 만나서 구했어야 했습니다(18절). 여기서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יִפְגְּעוּ)"라는 말은 원어로 만나다(פָגַע)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선지자가 맞다면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하나님께 그 뜻을 돌이키도록 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남은 성전 기구도 다 바벨론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21-22).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정반대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이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참된 기도가 없었다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9쪽).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은 놋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큰 대야는 놋바다를 뜻합니다. 이런 기구들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59쪽). 

     

    바벨론 군대의 침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 있은 것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합 3:2) 하나님의 자비의 표적이다.

     

    위에서 말하는 바벨론 군대의 침략은 제1차 침략과 제2차 침략입니다. 제1차 침략(주전 605년)은 다니엘서 1장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는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3년째 해였고 느부갓네살이 성전 기구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주께서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 안에 다니엘도 있었습니다. 제2차 침략(주전 597년)은 열왕기하 24장 14-16절에 나옵니다. 그 때는 여호야긴 때로 그 때 느부갓네살은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의 성전 금 그릇을 다 파괴했습니다(왕하 24:13). 그 때 여호야긴과 대장장이 천 명과 용사 칠천 명이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6). 이런 두 번의 침략에도 성전 기구 중에서 놋 기물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남아있던 놋기물은 제3차 침략 때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미리 경고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21-22절). 그런데 이 놋기물과 성전 기구들은 때가 이르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60쪽).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성전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옮김이 된 것은 바벨론 군대의 제3차 침략 때였다(주전 587, 왕하 25:9, 10). 제3차 침략 시에는 바벨론 군대가 이렇게 철저히 옮겨 갔고 대제사장들은 피살되고 시드기야 왕은 눈이 뽑히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왕하 25:1-21). 이때에 예루살렘이 당한 침략의 결과는 문자 그대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17절). 그러므로 고고학적 발굴로도 솔로몬 성전과 다윗 왕통 궁전의 유적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22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로, 이런 모든 비참한 사실들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필경은 그가 유다 민족을 돌아보시며, 심지어 성전 기구들까지도 도로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징계를 베푸시나 반드시 그들을 도로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 사 49:15 에 말하기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항상 심각하게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느 절대 실패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막지 못합니다. 죄인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나님께 징계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징계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징계를 내리신 후에는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십니다(호 6:1).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고 부활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다 없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고 지키시고 이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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