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32장 26-35절 | 기도로 여쭌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시는 하나님

2024. 7. 15. 14:32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32:26-35

    찬송가 295장 큰 죄에 빠진 나를


    하나님께 기도로 여쭌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궁금한 것을 여쭈었습니다. 그가 궁금했던 것은 "왜 이 때에 밭을 사서 증인을 세우라고 하시는가?" 였습니다(32:25). 그 때는 바벨론이 곧 와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또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백성들이 곤란을 당하던 때였습니다(32:24). 이 때에 왜 밭을 사서 증인을 세우라고 하시는가 여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26절 이하). 

    대답하시는 하나님, 성도의 특권

    26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는 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여쭈었고 하나님께서는 대답을 하십니다. 신자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 특권은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여쭙기도하고 답을 듣기도 하는 특권입니다. 이러한 특권은 신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32:12)는 신자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납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 만유의 주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도로 알현하는 것입니다.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당신님께서 누구신지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요"라고 하십니다. 문맥으로 보면 27절의 "여호와"는 모든 생명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이어 나오는 말씀이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모든 생명이 의존하는 분,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라는 뜻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말에 대한 반론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설마 성전을 버리시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버리실 수 없으시다,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버리시는 이유는 뒤에 나옵니다(29-35절).

    보라 내가 이 성을

    2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인즉 그가 차지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인, 즉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당시 가장 강한 강대국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로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27절). 바벨론으로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치게 하셨습니다. 유다 민족이 벌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큰 악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30절).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을

    29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을 사르리니

     

    갈대아인이 와서 예루살렘에 불을 놓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알에게 분향하여 다른 신에게 전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분향할 때 향이 살라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다른 신들에게 분향한 집들을 다 사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

    30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눈 앞에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하게 한 것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눈 앞에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하게 한 것뿐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뿐이라"라는 말이 두 번 연거푸 나옵니다. 사람들은 선보다 악을 더 좋아합니다. 악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악으로 그 땅을 채웠습니다.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31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그들은 그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옮기신다고 하십니다. 죄악된 것, 부정한 것은 하나님의 땅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나서 유배를 당한 것입니다. 

    다 그러하였느니라

    32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으켰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공히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켰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악을 행했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들이 너도나도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다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왕, 고관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주민들 할 것 없이 다 악을 행한 것입니다. 

    인간의 자율주의 

    33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그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등을 하나님으로부터 돌렸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끊임없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은 듣지 않는 그들의 등에다 대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교훈을 듣지도 않고 받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을 박윤선 목사님은 자율주의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50쪽). 

    인간은 타율주의(他律主義) 곧 계시의존주의(啓示依存主義)를 배척하고 자율주의(自律主義)를 좋아하나니, 이것이 타락한 인생의 성향이다. 그들은 자율주의에 의하여 피조물들로써 신을 만들어 섬기며, 또한 결국 자기 자신을 섬기나니 이것은 신화주의(神話主義), 또는 우상주의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현대인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가장 고차적인 사색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도, 결국 인간이 만든 사상을 최고의 표준으로 만드는(신을 만드는) 신화주의에 불과하다. 이 신화주의에는 고대인이나 현대인이 마찬가지로 참예하고 있나니, 이것을 파괴시키는 것은 오직 위에서 계시된 하나님 말씀 뿐이다. 

    두 가지 악

    34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그들의 악은 굉장히 가증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집" 즉 성전 안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전을 더럽게 했습니다(34절). 또한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했습니다.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했습니다(35절). 이 두 가지 가증한 일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셨던 것도 아닙니다(35절 하). 

     

    이 두 가지 가증한 일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업신여겼으면 성전에다가 가증한 물건, 즉 우상의 물건을 세웠을까요? 또한 하나님을 얼마나 업신여겼으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귀한 자녀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바쳤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손들로 키우라고 맡기신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을 우상숭배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가증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업신 여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께서는 이 죄에 대해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그들에게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든 우상숭배자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쏟아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시고 무한한 지옥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35절)는 원어로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지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는 역사입니다. 

    십자가는 부활로 이어짐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다시 땅을 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 후에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온전한 회복을 이루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씀(32:36-44)은 부활을 바라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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