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32장 16-25절 | 믿음으로 의문을 표시하는 예레미야의 기도

2024. 7. 14. 11:37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32:16-25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순종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멜의 밭을 사라고 하셨습니다(8절). 예레미야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10절). 예레미야의 행동은 비록 지금은 그 땅이 바벨론 때문에 황폐해지지만 날이 이르면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15절)"는 소망을 주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암울한 때에 가장 희망찬 말씀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하나님께 의문을 표시합니다. 이 의문은 불신앙이 아니고 믿기 때문에 이해하기 위해서 묻는 것입니다. 

    기도로 나아가는 예레미야

    16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 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19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20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23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24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갑니다(16절).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고 믿어지지만 그 일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성도는 기도로 나아갑니다. 먼저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슬픔을 표현합니다(17절 상). 슬픔을 표현하는 이유는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게 함락되기 직전이기 때문입니다(24절).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어 파괴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3절).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천지를 지으셨습니다(17절). 그렇게 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죄를 벌하십니다(18-19절). 하나님께서는 죄를 정확하게 벌하십니다.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19절).

    건지시고 땅을 주셨으나 불순종으로 멸망당함

    그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표적과 기사를 행하셔서 이스라엘을 건지셨습니다(20절). 그 구원으로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20절 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서는(21절 하) 언약하신 대로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22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철저하게 멸하시고 계십니다. 멸하시는 이유는 불순종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주의 말씀대로(24절)" 되는 것입니다. 언약에 이미 이런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는데 사라고 하시는 이유를 묻습니다(25절). 

    예레미야의 기도

    성도는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권능과 의로우심에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의문스러운 것을 묻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땅한 태도입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44쪽). 이 구절들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설교문을 남겼습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45-448쪽). 

    예레미야는 이 기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 우리가 그의 믿음을 참 믿음이라고 할 만한 이유는 그가 옥고를 당하면서도 그렇게 믿은 까닭이다. 그가 옥중에 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시는 권능을 아직 나타내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믿었다. 과연 믿음은 환난의 물결을 타고야 비로소 뚜렷하게 성립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법이다. 신자들이 평안한 때에 믿는다고도 하고 또한 믿기를 힘쓰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인식하는 바와 같이 그런 믿음은 아직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과 같은 관념적 믿음에 불과하기 쉽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과연 신자 자신이 믿음의 맛을 느껴 보리만큼 뚜렷한 믿음의 움직임은 환난을 그 바탕으로 가진다. 흰 글씨는 검은 바탕에 쓰고, 검은 글씨는 흰 종이에 쓰는 법이다. 그와 같이 믿음의 정상적인 발휘는 평안한 시기보다 환난의 시기를 좋은 기회로 가진다. 나의 이 말은 믿음이란 것이 평안한 시기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가 그런 환난의 시기에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와 공의를 더욱 신앙하게 된 원인이 어디 있었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위(32:8)에 벌써 알려진 것과 같이, 그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기 기록된 대로, "여호와의 말씀같이"(כִּדְבַ֣ר יְהוָה֮)란 표현과,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וָאֵדַ֕ע כִּ֥י דְבַר־יְהוָ֖ה הֽוּא)란 표현들은 예레미야의 신앙 동기를 잘 보여준다. 여호와의 말씀의 진실성이, 그처럼 그의 심리를 점령하여 그의 마음속에 단 맛을 느끼게 하며 그(여호와)를 믿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하는 노래(시 19:10)가 이 때문에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과 그 감미(甘味)와 그 아름다움이 우리의 심령을 적실 때에,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쁨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1. 여호와의 권능에 대한 신앙. 우리 본문은 17절에 말하기를,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이다"라고 했는데, 여기 "슬프도소이다"(אֲהָהּ֮)라는 히브리 원어는, 반드시 비애를 표시하는 말이 아니고 일반적 감탄을 표시하는 말일 수도 있다. 신자가 하나님의 권능을 표시함에 있어서 그의 천지 창조 이상 더 큰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시 121:1-2에 말하기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한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 우리 본문에 18절에,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라고 한다. 여기 "천만인"(אֲלָפִ֔ים)이란 말은 많은 수효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은혜는 은혜니만큼 몇몇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미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몇몇 사람에게만 전매특허(專賣特許)된 듯이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오해한 것이다. 

    3. 하나님의 공의를 믿음. 18절에 또 말하기를, "아비의 죄악을 그 후 자손의 품에 갚으시오니"라고 한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들에게까지 선조의 죄 값을 받게 하는 듯이 오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이유는, 1) 아비와 그 후손들은 육신의 원리에 있어서는 한 몸이니만큼, 조상의 죄 값이 후손에게 미칠 수 있는 까닭이다. 2) 하나님은 온전히 성결하시며 모든 성결의 근원이시다. 성결은 죄를 용납하지 않고 벌하는 것을 그 성질로 가진다. 그러므로 이러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결단코 전자(專恣, 오로지 전, 방자할 자, 거리낌 없이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함.-옮긴이 주)가 아니다. 이것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으며 불이 마른 털을 태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이다(합 3:2). 여기서는 예레미야가, 다만 하나님의 진노 방면만 생각하고 말씀하면서, 그의 긍휼 방면에 대해서는 접촉하지 않은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하시는 방법은 우리 인간의 좁은 마음으로 다 측량하기 어렵다.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징벌 행위를 "오묘"라고 했으며, 또한 우리가 이것을 생각할 때에 겸손할 것밖에 없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하나님의 징벌 행위가 이렇게 오묘하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19절)"라고 하였다. 

    이렇게 예레미야는 옥중에서 새삼스러이 신앙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공의를 믿는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이 세 가지 덕을,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로써도 증명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와 이스라엘 역사상에 나타내신 징조와 기사를 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고(21, 22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바벨론 군대가 유대 땅을 점령하게 된 사실을 들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증거하였다(23, 24절). 

    1) 하나님의 덕과 행사를 나타냄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어서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 이유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세계 인류를 위한 계시 운동을 하셨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계시 운동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인류에게 등대와 같은 것이다. 

    2) 이스라엘을 상대한 하나님의 계시 운동은 모든 인류로 하여금 믿도록 이루어진 것이다. 곧, 그 운동은 계약 체제에 속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후 그대로 이루시는 운동이었다. 우리 본문 22절에 말하기를 "맹세하신 바(미리 약속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라고 하였고, 24절에는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라고 하였다. 

    4.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문을 말함(25절). 선지자의 의문은 그 현재에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를 점령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밭을 사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곧, 국토가 전부 이방인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이제 땅을 사서 무엇하랴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행사를 옳지 않게 여기는 의심이 아니고, 하나님의 행사라면 무엇이든지 다 믿는 마음으로 더 밝히 알아보고자 하는 것뿐이다. 

    믿기 위해서 지식을 구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믿기 위해서 지식을 구하는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성을 계시보다 위에 두지 않습니다. 계시에 가장 높은 권위를 둡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믿는 것이 먼저입니다. 먼저 믿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질문하면서 믿음이 자라갑니다. 이것을 박윤선 목사님은 "계시 의존 사색"이라고 부릅니다. 안셀무스도 말하기를 "저는 믿기 위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믿습니다.(Neque enim quaero intelligere ut credam, sed credo ut intelligam)"라고 했습니다.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역사

    둘째로 역사는 언약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어떻게 망할 수 있는가?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전이 파괴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에 이미 그렇게 될 것이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빼앗기고 유배갈 것이 이미 언약에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일을 그대로 당한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모든 것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고 싶으면 말씀을 열심히 보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이루십니다. 약속하신 것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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