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5. 10:3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52:12-34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예레미야 예언의 성취
예레미야 52장의 내용은 앞에서 나온 내용의 반복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반복이 아니고 예레미야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여주고 강조하는 반복입니다. 11절까지는 시드기야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서 나왔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는 장면입니다.
불살랐으며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이었던 느부사라단(12절)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살랐습니다. 특별히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습니다(13절). 고관들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 결과를 고스란히 당했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고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시드기야를 압박해서 친애굽 정책을 펴게 했습니다. 그에 대한 형벌로 그들은 불사름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강포함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심판하시고는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9:11-17). 물 심판은 이제 없습니다. 대신 불 심판이 남아 있습니다(벧후 3:6-7).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불로 심판하십니다.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이 다 불살라진 것은 하나님의 불심판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불 가운데에서도 타지 않는 사람들
그런데 이런 불 가운데에서도 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믿는 우리들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심히 노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불 가운데 집어 넣었습니다(단 3:19). 불이 얼마나 거셌던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벧느고를 붙잡고 던져 넣으려고 한 사람부터 태워 죽였습니다(단 3:22). 그런데 그런 거센 불길에 던져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멀쩡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보니까 불 가운데 네 사람이 다니는데 상하지 않았습니다(단 3:25).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나오라고 부르자 그 세 사람이 나왔는데 불에 상한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냄새도 없었습니다(단 3:27). 이처럼 불심판을 피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저항하지 못하도록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습니다(14절). 느부사라단은 백성을 사로잡았고(15절) 가난한 백성은 남겨두어서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했습니다(16절). 이것은 유다 백성이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도록 내린 조치였습니다. 우선 성벽을 헐어서 방어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인적 자원을 다 끌고 가서 저항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32:29; 1:15; 20:4). 이 일은 만약 시드기야와 고관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항복하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었습니다(27:11-12).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놋대야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바벨론 군대는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기물도 약탈해 갔습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성전의 두 놋기둥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50쪽).
"두 놋기둥". 이것들은 성전 건물을 받치는 지주(支柱)가 아니고, 다만 장식품으로서 영적 의의를 위하여 제조되어 있던 것이다(왕상 7:15 이하). 이 둘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인데(왕상 7:21), 야긴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다는 뜻이요, 보아스는 하나님께 힘이 있다는 뜻이다. 이제 바벨론 사람이 이 두 기둥을 파괴시켜 가져감은,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세워 주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받침"과 "놋대야"는 성전 제사를 위해서 씻는 용도로 쓰던 것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운반해 가기 너무 컸기 때문에 깨뜨려서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더이상 받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지런히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듣지 않았던 죄의 결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 힘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 의지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이 큰 복이고 가장 귀한 특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특권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공경해야 했건만 그들은 하나님을 소홀하게 대했습니다. 그 결과 그 모든 특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신자는 평소에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고 찬송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는 것이 큰 특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특권을 열심히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귀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귀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참 큰 병폐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전 기구들을 약탈해간 바벨론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바벨론 군대는 성전의 가마들, 부삽들, 부집게들, 주발들, 숟가락들, 그리고 섬길 때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습니다.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 주발들, 솥들, 촛대들, 숟가락들, 바리들을 가져갔습니다.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다 가져갔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들은 그저 전리품으로 보였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촛대들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벨론 군대가 빼앗아갔습니다. 이것은 마치 죽음이 임할 때 사람이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절대 빼앗기지 않습니다.
놋 기물들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20절에 보면 놋 기구의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21-23절은 두 놋기둥을 다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놋기둥과 바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열왕기상 7장을 설명한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잡혀서 죽임당한 사람들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24-27절은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만 쓸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모든 일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이름과 직임과 명수를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성전을 맡았던 대제사장과 부제사장과 성전 문지기가 바벨론 왕에게 죽었습니다(24, 27절).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도 죽고 왕의 내시와 군지휘관과 서기관과 평민도 다 잡혀서 죽었습니다(25-27절). 이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완강하게 버틴 사람들입니다.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다 죽고 말았습니다(15:2).
느부갓네살이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이 구절을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51쪽).
여기 기록된 포로의 수효는, 첫 번째 포로에 추가되어 간 자들의 수효까지 포함된 것이 아니다. 느부갓네살이 첫 번으로 잡아간 유대인들의 수효는 3,023명인데(28절), 그 뒤에 또다시 10,000명이 추가되었다(왕하 24:11-16; 겔 1:2).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두 번째로 잡아간 유대인들의 수효가 29절대로 832명이고, 세번째로 잡아 간 것은 30절 대로 745명이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멸망 4년 후에 된 일이다. "사천 육백인"이란 총수는, 여기 예레미야가 기록한 대로의 수효만 통합한 것이다.
만약 여기까지 기록되고 예레미야서가 마쳤다면 예레미야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망했다는 기록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왕기서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는 희망의 빛을 비추어줍니다. 그 내용이 31-34절입니다.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납니다(31절). 그는 높아지고(32절) 왕의 앞에서 먹고(33절) 날마다 쓸 것을 공급 받았습니다(34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1)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면, 폭군이 한 일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서도 변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37년 동안이나 가두었으되, 그 아들 에월므로닥은 그를 놓아주고 또 높여주었다. 이는 마치 사울이 죽이려던 다윗을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늘 보호해 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2) 이 세상은 늘 변한다는 것도 이 사건으로 알려진다. 여호야긴이 입던 포로의 옷은 왕의 옷으로 바뀌었다. 3) 하나님의 권능은 그 백성으로 하여금 불신자들의 손으로 말미암아서도 선한 대우를 받도록 하실 수 있다(시 106:46).
여호야긴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우셨습니다. 다윗의 왕위는 그에게서 끊어졌지만 그는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시드기야나 여호아하스, 여호야김은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지 못했지만 여호야긴은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그의 생명이 전리품을 얻듯이 건짐을 받았습니다(21:9 참조). 또한 그의 지위가 복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 뜻대로 그를 세우신 것입니다. 재앙이 선포될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회개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은 삽니다. 반면, 그렇게 하지 않고 끝까지 말씀과 반대로 가는 사람은 재앙을 당해서 죽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22장에 대해서 쓴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소망으로 마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야긴을 세우시는 장면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도 똑같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 가운데에서도 우리 안에서 여전히 건재하십니다. 이 분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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