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욥기 21장 17-34절 | 고난을 당한다고 다 악인이 아님, 시야를 이 땅에 한정시키면 안 됨

2023. 11. 27. 10:5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욥기

목차


    욥기 21:17-34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하나님께서 죄인을 다스리시는 방법

    욥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같이 되었도다(17-18절)" 개역한글에서는 몇 번인가가 맨 뒤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악인에게 재앙이 닥쳐서 그들이 곤고하게 되고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된 것이 몇 번이냐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 말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17절과 18절을 나눠놓았습니다. 원문을 보면 개역개정처럼 해석될 수도 있고 개역한글처럼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NIV에서는 개역한글처럼 번역해 놓았습니다. 17절과 18절을 묶어서 몇 번이냐라고 묻는 것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문맥상 개역한글과 NIV의 번역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다스리시는 방법은 세상 국가가 다스리는 방법과 다릅니다. 세상 국가는 동일한 죄에 대해서 동일한 형벌을 선고합니다. 죄가 반복되면 가중처벌을 합니다. 그런데 처벌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아있을 동안만 가능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처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땅에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그가 죽었을 때까지 관여하실 수 있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죄로 살아 있는 동안 벌을 받아 망하고(행 12:23) 어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호화롭게 살다가 죽어서 비참해집니다(눅 16:23). 하나님의 처벌 방식이 이렇게 다양하기 때문에 악인들이 이 땅에서 잘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된다고 선인이고 재앙을 받고 있다고 악인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에 대한 형벌은 자기가 받아야 함

    "하나님은 그의 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19-21절)" 19절의 번역이 아리송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개역한글이 낫습니다. 개역한글과 NIV의 의미가 같은데 개역한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악을 쌓아 두셨다가 그 자손에게 갚으신다 하거니와 그 몸에 갚으셔서 그로 깨닫게 하셔야 할 것이라(19절, 개역한글)" 개역개정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에게 쌓아 두신다는 말을 긍정하는 것처럼 나옵니다. 하지만 개역한글을 보면 욥은 그것을 반대합니다. 욥이 반대하는 이유는 자기가 행한 악에 대한 처벌을 자기 몸에 받아야만 그가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NIV도 같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것이 이어지는 20절과 21절에도 부합합니다. 20절은 자기의 멸망을 자기 눈으로 보게 하고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21절은 그가 죽으면 나중에 자기 집에 내리는 재앙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합니다. 즉 자기가 범한 악에 대해서는 자기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친구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친구들은 악인의 죄값이 이 땅에서 치러지지 않는다면 그 자손이 그 죄값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5:4; 20:10; 21:19). 욥은 이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온당한 처벌이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비의 죄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긍정합니다(출 20:5; 신 5:9). 왜냐하면 가정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망하면 아버지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까지 고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관찰되는 일입니다. 욥은 이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처럼 이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공의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벌을 자기가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욥의 논지입니다. 범한 죄와 그에 상응하는 벌에 대해서는 그것을 보는 시각을 이 땅에만 국한해서 볼 수 없습니다. 

     

    매일성경 | 욥기 21장 17-34절 | 고난을 당한다고 다 악인이 아님, 시야를 이 땅에 한정시키면 안 됨

    시야를 이 땅에만 한정시키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22절)" 욥은 자기 논지에 천사들을 동원합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들도 심판하십니다. 여기서 높은 자들은 천상의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혜가 닿지 않는 존재들, 즉 천상의 존재들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는 그런 뜻입니다. 사람이 어찌 알지도 못하는 일에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욥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로 악인과 선인을 가르는 친구들의 시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비판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23-26절)"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똑같습니다. 그 둘 다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는 구더기가 덮입니다. 여기서 욥이 제기하는 의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런 차이가 벌어지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죽음의 비참함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야를 이 땅에만 한정시켜 볼 때에는 풀릴 수가 없는 의문입니다. 

    재앙을 당한다고 다 악인이 아님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27절)" 욥은 친구들의 논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재앙을 당하면 곧 악인이라는 논지를 펴고 있습니다. 그 논지에 따라서 지금 재앙을 당하고 있는 욥도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계속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28절)" 여기서 귀인의 집은 욥의 집입니다. 욥의 집이 망한 것 때문에 욥은 졸지에 귀인에서 악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악인의 끝이 자기 같지 않다고 합니다.

    악인은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갑자기 죽음

    "너희가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악인은 재난의 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29-30절)" 여기서 길 가는 사람들은 여행자들을 뜻합니다. 이 여행자들은 길을 따라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악인이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악인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남겨두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번창한다는 뜻입니다. 그가 계속 번창하는 이유는 재난의 날이 그에게 갑자기 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31절)" 악인은 사는 동안 계속 번창하기 때문에 그의 면전에서 그가 망할 것이라고 영원히 벌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악인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32-33절)" 악인이 아무리 번창할지라도 악인은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그가 생전에 이루어 놓은 일들은 다 허무로 돌아갑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의 번참함이 헛된 것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왜 헛된 것이냐면 그가 하나님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악인이고 번창하면 선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번창해도 하나님 없이 살면 악인입니다. 그 마지막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욥의 친구들의 말은 틀렸음

    욥은 친구들의 말이 헛된 위로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34절)" 친구들은 너의 악을 당장 버리고 돌이키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형통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것은 헛된 위로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논지가 틀렸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당한다고 다 악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버릴 악이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친구들의 말은 거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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