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민수기 22장 36절 - 23장 12절 | 발람의 첫 번째 축복, 대적자의 입으로 축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2023. 5. 5. 09:43성서유니온 매일성경/민수기

목차


    민수기 22:36-23:12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발람의 명예욕을 자극하는 발락

    발락은 발람을 만나면서 "내가 특별한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하면서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37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람의 명예욕을 자극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높아지고 싶었던 발람의 명예욕을 자극해서 발람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발락의 심산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단속하심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자를 보내셔서 발람의 앞길을 막고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하라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명예욕에 눈이 먼 발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단단히 단속을 당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38절)" 명예보다 생명이 소중합니다. 발람은 오는 길에 자기가 단숨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탐심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있는 상태이지만 최소한 저주의 말은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비상한 방법

    이것은 비상한 방법입니다. 보통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상식적인 것이고 보통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죄로 물든 세상에서는 보통의 방법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말하는데 악인이 진리를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대적자가 진리를 말하고 자기가 말한 진리에 자기가 망하는 일이 많습니다. 

    대적자의 입으로 진리를 말하게 하심

    거짓 선지자 발람의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를 생각할 때 발람은 거짓 선지자이지만 그의 말은 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자를 들어서 참된 것을 말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대적자는 자기 말이 자기를 파멸로 이끄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발람은 자기가 축복한 이스라엘의 칼에 죽게 됩니다(수 13:22). 말로는 축복했으나 마음으로는 대적한 결과를 그렇게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발람은 나중에 탐심에 눈이 멀어 이스라엘을 대적할 계략을 발락에게 알려줍니다. 발람의 그 계략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브올에서 여호와께 범죄 하여 많은 이들이 염병으로 죽었습니다(민 31:16).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한 말들을 주의 깊게 생각했더라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계략을 베풀기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섬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가진 영적 지식을 오히려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사용했습니다. 영적으로 밝다고 다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참된 지혜를 주시고 진리 안에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런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발람의 첫 번째 축복, 대적자의 입으로 축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 백성이 홀로 살 것이라

    발람은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특별한 민족임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민족처럼 자기의 신을 자기가 만들어서 섬기는 자들이 아닙니다. 참 신이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여러 민족들이 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연합하고 동맹조약을 맺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맺은 언약은 오직 하나님과 맺은 언약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홀로 사는 자들이고 여러 민족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라고 합니다. 야곱이 더 많아지고 번성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사분의 일도 셀 수 없다는 말은 그만큼 이스라엘이 확장되고 부강해진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4라는 숫자는 지상의 모든 곳을 뜻합니다. 네 방향, 즉 동서남북과 연결되는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굉장한 축복의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전세계 모든 곳에 들어가 살 것이고 그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아담에게 약속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고 동시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는 온 땅에 충만하라 하셨고 아브라함에게는 너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와도 같고 하늘의 별들과도 같아서 능히 셀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계시록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의 충만한 수는 세계 곳곳에 퍼져 있고 많습니다. 많아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경건한 자손들을 얻고 계십니다. 우리가 자녀의 신앙교육에 힘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의를 위하여 죽는 죽음이 값지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과 같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의를 위하여 사는 민족입니다. 이 말은 그들은 죽지 못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죽음을 피하려고 사는 자들이 아니요 의를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 생명을 기꺼이 의를 위해서 드리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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