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27장 11-26절 |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바라바와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2023. 4. 5. 12:29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27:11-26

    찬송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놀라는 빌라도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섰다고 기록합니다(11절). 이 총독은 빌라도입니다(13절).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본문은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는 말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놀라워하다(θαυμάζω)는 말에 이미 강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크게 놀라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놀라워하면서 그 대상을 기이히 여긴다, 더 나아가서 존중한다는 뜻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강조하는 단어에 크게(λίαν)라는 말로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무엇에 그렇게 놀라워했을까요? 

    예수님을 놓으려고 함

    요한복음을 보면 빌라도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요 19:8).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 19:7)"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썼지만 무리의 목소리에 압도당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도 예수님을 놓아주라고 사람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19절). 빌라도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정치인은 다 악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치인은 무리의 눈치를 본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는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하였습니다(24절).

    예수 바라바

    여기서 바라바가 등장합니다. 17절에 보면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이렇게 물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바라바의 이름이 예수로 나오는 사본들이 있습니다. 그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게 됩니다.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예수 바라바냐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냐?" 이렇게 됩니다.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름은 히브리어 호세아를 헬라어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바라바와 구원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바라바, 아버지의 아들

    게다가 바라바라는 말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바라바는 그 뜻이 구원자, 아버지의 아들, 이렇게 됩니다. 이것은 대속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는 사건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바라바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열심당원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바라바는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정치적인 해방을 구원이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사형수가 되어서 로마군에게 잡혀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를 풀어주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형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할 자는 스스로 구원자라고 칭하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로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참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스스로 구원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해서 죄의 종으로 갇혀 있었던 바라바에게 자유를 주시고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심

    그렇게 해서 바라바는 놓임을 받았고 예수님은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맞으시고 상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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