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상 6장 14-38절 | 성전 내부 모양과 두 그룹의 의미

2023. 9. 15. 17:0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상

목차


    열왕기상 6:14-38

    찬송가 38장 예수 우리 왕이여


    성전 내부 모양 

    열왕기상 6장 전반부에서는 성전 건물을 어떻게 건축했는지가 나왔습니다(6:1-13). 14절 이하에서는 성전 내부에 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성전 내부는 백향목 널판으로 사면을 다 입혔습니다(15절). 또한 백향목 널판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했습니다(16절). 어떻게 구분했냐면 성소의 길이를 40규빗, 지성소의 길이를 20규빗으로 구분했습니다(17절). 성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습니다(18절). 또한 내 외소 사방 벽에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습니다(29절). 백향목 널판을 아무 무늬 없이 입힌 것이 아니고 백향목에 박과 핀 꽃과 그룹들과 종려나무의 형상을 아로새긴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온 성전을 금으로 입혔습니다(22절). 성전을 나무로 입히고 그 나무에 나무와 열매와 꽃 형상과 그룹 형상을 새긴 것은 처음 성소였던 에덴 동산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에덴에 있었던 나무들과 그룹들을 형상화해서 새김으로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계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성소가 이스라엘 나라 안에 회복된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아담과 하와가 처음 성소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회복되어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 가운데 성소를 두시고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 내부 상상도

    성소 안을 모두 금으로 입힌 것의 의미 

    성소 안을 모두 금으로 입히고 그 안에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등불이 성소 안에 입힌 금에 반사되어 모든 공간이 금빛으로 빛났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성취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입니다(계 21:18, 23).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계 21:22). 또 거기에는 해나 달이 쓸 데 없는데 왜냐하면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계 21:23). 성전은 이러한 장면을 이 땅에 구현해 놓은 것입니다. 

    성전 내부에 쓰인 나무들

    성전 내부에 쓰인 나무는 백향목과 감람나무(23절, 31절)와 잣나무(34절)입니다. 감람나무로는 내소, 곧 지성소 안에 두 그룹을 만들었습니다(23절). 두 그룹은 날개를 펴고 있었는데 그 날개가 연하여 있었고 날개의 길이의 합이 20 규빗으로 성전 폭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날개 한 쪽씩이 벽에 닿았고 두 그룹의 날개는 가운데에서 서로 닿았습니다(27절). 이 두 그룹은 크기와 모양이 같았고(25절) 높이는 10 규빗이었습니다(26절). 이 두 그룹은 속죄소를 감싸고 있는 법궤의 그룹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룹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출 25:22; 민 7:89; 삼상 4:4; 대상 13:6; 시 80:1; 시 99:1; 사 37:16). 감람나무로는 또한 외소 문을 위한 문설주를 만들었습니다(33절). 그 다음으로 잣나무로는 그 문을 만들었습니다(34절). 또한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았습니다(15절). 잣나무는 백향목과 더불어 히람 왕에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왕상 5:8, 10). 잣나무는 백향목과 함께 레바논에서 나는 귀한 목재로 성경에 등장합니다(왕하 19:23; 대하 2:8).

     

    열왕기상 6장 후반부, 성전 내부 모양과 두 그룹의 의미

    이방신전과 완전히 다른 성전 내부와 그 의미 

    성전 내부의 모양을 볼 때 성전은 이방신전과 완전히 다릅니다. 이방신전은 그 규모도 웅장할 뿐 아니라 내부도 그냥 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전은 다 목재로 감쌌습니다. 목재로 감싸고 거기에 에덴 동산의 모양을 아로 새김으로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시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을 표현했습니다. 원래 성소로 에덴이 있었음을 나타냈고 또한 하나님께서 온 우주에 충만하심도 나타냈습니다. 거기에 등불을 두고 금으로 입혀서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온 우주를 나타낸 것입니다. 또한 이방신전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신속히 움직이는 두 그룹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그 천사들을 숭배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조화롭게 신속히 움직이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도 그렇게 해야 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앞의 12-13절에도 명백히 나타납니다(6:12-13). 이렇게 해서 솔로몬 성전은 총 7년 반 동안 지어져서 완성되었습니다(38절). 

    두 그룹의 의미

    그룹이 둘인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진행시키시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을 연하여 사용하시거나 두 사람을 증인으로 함께 사용하십니다. 가깝게는 다윗과 솔로몬이 그렇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러합니다. 또한 예수님 이전에 세례 요한을 보내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다녔습니다. 또한 스가랴에는 두 감람나무가 등장합니다(슥 4:11-14). 이 감람나무 둘을 가리켜서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라고 합니다(슥 4:14). 이 두 사람은 바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11자에서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가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연이어 등장하는 둘은 증인의 역할을 하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 두 그룹은 하나님의 명령을 신속히 수행하는 두 영적 존재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곧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신속히 수행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을 세상에 증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하나님을 증언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를 이러한 사상과 연결해서 가르쳤습니다. 이 기도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신속히 수행하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신속히 수행하기를 구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과 긍휼에 풍성하심과 지극한 은혜와 복이 하나님의 임재로 이 땅에 베풀어져야 합니다. 그 일을 누가 하느냐, 바로 교회인 우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지극한 복과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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