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1장 후반부와 12장 처음, 주변의 미움을 받는 예레미야와 예레미야를 단련하시는 하나님

2023. 7. 30. 11:5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예레미야 11:18-12:6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예레미야를 미워하는 사람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재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11:17). 그가 재앙을 선포했기 때문에 그는 미움을 당했습니다. 그를 미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와 친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그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미워해서 그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한 것입니다(21절). 예레미야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서 알았습니다(18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귀한 진리를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그 선지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주시기도 하십니다. 예레미야와 가까운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해하려고 꾀했습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는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그들이 이끄는 대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해하려고 꾀하면서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19절). 이 말은 예레미야를 죽이는데 예레미야가 이룬 모든 것을 다 없애 버리자는 말입니다. 나무와 열매를 박멸하고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도록 그를 당대에서뿐만 아니라 후대에서까지 없애자는 음모를 꾸몄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아나돗 사람들이 그런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18-19절). 하나님께서 그렇게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이유는 아직 예레미야에게 남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여러 번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잘 빠져나가셨습니다. 이런 의미로 예레미야는 예수님의 모형이었습니다. 

보복을 하나님께 맡김 

예레미야는 보복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 대한 주의 보복을 내가 보리이다(20절)" 이러한 예레미야의 간구와 믿음에 하나님께서는 아나돗 사람들을 벌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21-23절).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방해에 부딪치고 박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를 막고 방해하고 해하려고 하는 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 말씀이 잘 보여줍니다. 그들을 다루는 방법은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로마서에서도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원통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아나돗 사람들이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 

반면 아나돗 사람들은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21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재앙을 피하려면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죽이려고 하니 말씀을 듣고 돌이켜서 재앙을 피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 듣는 것은 회개할 귀한 기회입니다. 

악한 자가 형통함을 보고 탄식함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12:1)"라고 묻습니다. 악한 자는 자기들이 범한 악 때문에 이 땅을 살면서 고난을 당하고 잘 안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잘 되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잘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12:2 상)" 악인이 잘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잘 되는 것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치에 맞지 않음은 그들의 입은 하나님께 가깝지만 그들의 마음은 멀기 때문입니다(12:2 하).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는 분이신데 어찌 그들의 외식을 그대로 두시고 그들을 형통하게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탄식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사람이 악을 범했으므로 채소가 마르고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4절).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하게 되면 이렇게 자연계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예레미야 11장 후반부와 12장 처음, 주변의 미움을 받는 예레미야와 예레미야를 단련하시는 하나님

그것은 예레미야를 단련하기 위한 것임,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이러한 예레미야의 탄식에 하나님께서는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 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12: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하는 일이 큰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예레미야는 지금 작은 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말과 경주할 사람이고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도 능히 그것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전할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악인이 그렇게 득세한다고 해서 흔들리면 안 됩니다. 오히려 예레미야와 가까운 형제와 아버지의 집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알도록 

이러한 예레미야의 처지는 바로 하나님의 처지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님의 백성들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거기에 십자가를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즉 자기 백성에게 죽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하여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도록 예레미야에게 어려움이 닥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손길 안에서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 이루기를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