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0장 후반부, 죽음의 징계를 함께 당하시는 하나님

2023. 7. 28. 23:02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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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0:17-25

찬송가 397장 주 사랑 안에 살면


죽음을 통과해야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음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은 서로를 소유하는 친밀한 관계입니다(10:16).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헛된 우상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10:8).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무지하여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짐 꾸러미를 이 땅에서 꾸리라(17절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이 땅에서 내던져서 그들을 괴롭게 함으로 깨닫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8절). 하나님의 땅에서 내던져지는 것은 하나님 백성에게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내던져져서 쫓겨나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의 고난을 겪어야 비로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땅에서 사는 것, 즉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우리가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합하여 우리가 살았다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으로 나아갑니다. 죽음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십자가를 보면서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바벨론으로부터 당하는 환난이 자기 민족의 죄 때문임을 고백함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19절)"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자기 민족을 대표하여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탄식은 하나님의 탄식이기도 합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무너뜨릴 것은 성곽과 성읍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게 됩니다.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20절)" 장막이 무너지고 장막을 잡아 맨 줄이 끊어졌습니다. 거기에 그 장막을 세울 자녀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다 사로잡혀 가서 없는 것입니다(20절). 여기서 장막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가리키고 자녀는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했던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장막을 무너뜨리시고 그 장막을 맨 줄을 끊으시면서 그 자녀들을 깨닫게 하고자 하십니다. 여기에도 십자가가 암시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깨닫게 해서 돌이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님 스스로 고난을 당하시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이스라엘의 목자들, 즉 지도자들은 어리석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형통하지 못하고 그 모든 양떼가 흩어졌습니다(21절). 이것은 북방에서부터 쳐들어 오는 바벨론으로 인한 환난입니다. 그러나 이 환난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함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바벨론은 유다 땅으로 쳐들어와서 유다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고 승냥이의 거처가 되게 할 것입니다(22절). 

 

예레미야 10장 후반부, 죽음의 징계를 함께 당하시는 하나님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음 

예레미야는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23절)" 사람이 보기에는 자기 뜻대로 어느 쪽으로 갈지를 정하고 그 길로 가는 것 같으나 실상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 2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고난을 당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음의 길로 달려가지만 끝까지 죽음으로 치달아서 멸망받지 않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로 다 멸망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멸망받지 않고 당하는 고난 때문에 오히려 구원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걸음을 이렇게 지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정의 안에서 징계 하옵소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24절)"라고 간구합니다. 예레미야는 먼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하도록 하시는 일을 가리켜 심판이 아니라 징계라고 합니다. 심판은 죄를 정하고 그에 따라서 벌하는 것이라면 징계는 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는 사람을 깨닫게 해서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바벨론으로 당하는 환난이 징계라면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바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너그러이 하시고" 이 말은 정의(מִשְׁפָט)안에서 행하시라는 뜻입니다. 즉 징계하시되 진노 안에서 징계하시지 마시고 정의 안에서 징계해 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로 그들을 다루신다면 그들은 멸망하여 다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24절 하). 그러나 정의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면 멸망 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상을 숭배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죄입니다. 더욱 멸망을 받아 마땅합니다. 여기서 정의(מִשְׁפָט)는 마땅한 것을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적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정의가 시행이 되었는데도 다 진멸되지 않고 구원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 즉 우상숭배자는 진멸당한다는 것이 어떤 다른 대상에게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정의를 행하신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다 멸망 당해야 옳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금도 너그러이 대하시는 이유는 바로 십자가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거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입니다. 그들에게는 주의 분노가 부어질 것입니다(25절 상). 그들이 그렇게 진노를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씹어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25절 하). 예레미야는 이방 사람을 생각할 때에 주의 백성을 치는 북방세력, 즉 앗수르와 바벨론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시대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여기 나오는 이방 사람은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교회를 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주의 진노로 멸망당할 것입니다. 교회는 끝까지 이들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할 것이지만 끝까지 복음에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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