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9장 마지막, 앞에 있는 사망을 바라보고 애곡하는 것의 유익, 사망 앞에서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

2023. 7. 26. 08:37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예레미야 9:17-26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잘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누가 지혜가 있어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이 왜 망했는지를 깨달을 것인가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12절). 그러시면서 그들이 재앙을 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13절). 이 내용이 17절로 이어집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해 보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17절). 먼저 잘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망할 것이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생각을 해야 깨달음이 옵니다. 생각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면 잘못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멈춰서서 이 길이 맞는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맞는 방향으로 가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가는 그 길 끝에 멸망과 재앙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의 뜻을 잘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곡하는 부녀,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와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잘 생각해서 얻은 결론이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곡하는 부녀는 곧 지혜로운 부녀입니다. 왜 곡하는 여자를 불러와야 할까요? 그 이유는 그 때가 바로 시급하게 애곱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의 끝에 멸망과 재앙이 있고 그들은 거기로 빨리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빨리 달려가는 것을 먼저 멈춰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멈추는 사람이 바로 곡하는 여자입니다. 곡하는 여자를 불러와서 애곡하게 하여 마음을 찢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 재앙으로 달려가는 것을 멈추는 방법입니다(18절).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재앙에 대해서 애곡하고 눈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게 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게 되고 재앙을 면하고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재앙에 대처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선포하시고 그 임할 재앙을 대처하는 방법은 아직 임하지 않은 재앙을 미리 바라보고 잘 생각해서 곡하는 여자를 불러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곡하는 여자를 불러와서 그가 애곡하는 소리를 듣고 함께 마음을 찢고 애곡하는 것이 재앙을 대처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에 따라서 애곡하면서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든 죄인"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할 때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지옥을 미리 보고 애곡했습니다.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 때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하고 돌이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깨닫고 느끼고 그 형벌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형벌이 내려진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을 찢고 애곡함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돌이켜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죄의 결과를 미리 생각해서 죄로 임할 재앙을 보고 미리 애곡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9장 마지막, 앞에 있는 사망을 바라보고 애곡하는 것의 유익, 사망 앞에서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

 

사망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라도 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들에게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냈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듣지를 않으니 애곡소리와 슬픈 노래를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20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을 돌이키고자 하십니다. 시급하게 애곡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사망이 창문을 통하여 넘어 들어오고 밖에서는 자녀들과 청년들을 멸절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21절). 이러한 재앙의 때에는 사람의 지혜나 용맹이나 부함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23절).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4절)" 사망이라는 재앙이 닥칠 때에는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아무리 용감한 자라도 아무리 부한 자라도 그것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사람만 그 사망을 넘어서 부활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의지하는 자만이 사망을 넘어서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과 정의와 공의에서 사랑은 헤세드(חֵסֵד)이고 정의는 미슈파트(מִשְׁפָט)이고 공의는 체네카(צְדָקָ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데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면서 구원하십니다. 죽음을 통과하게 하시되 죽음이 우리를 완전히 망하게 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죽음의 형벌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당하게 하시고 우리가 당하는 죽음은 생명으로 가는 문이요 우리를 바르게하고 겸손하게 하는 징계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만이 사망에서 우리를 건집니다. 이 지식은 복음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다 죄인임 

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할례 받은 자나 할례 받지 못한 자나 이 복음을 듣지 못하면 다 멸망 받게 됩니다(25절).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26절). 마음의 할례가 없으면 그에게 있는 할례는 없는 것처럼 됩니다(롬 2:25, 29). 중요한 것은 먼저 다가오는 사망을 보며 애곡하는 것이고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피할 길을 찾는 것이고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안에서 피할 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애곡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을 힘있게 의지해야 합니다.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서 당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되는 사람과 사망으로 아주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망마저 유익이 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는 사람, 복음을 자랑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