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5. 17:1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예레미야 20:7-18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저주와 재앙을 선포하는 일의 어려움
20장 1-6절에서 예레미야는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에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 때문에 매맞고 차꼬에 채워져서 하루 동안 감금당했습니다(20:20). 감금당했다가 풀려날 때 예레미야는 바스훌에게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더 이상 바스훌이 아니고 마골밋사빕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방에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할 것이라는 저주를 바스훌의 면전에다가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저주를 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전하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예레미야에게서 저주와 재앙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7절) 모욕하기(8절)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전했더니 도리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됨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7절)" 여기서 권유한다는 말은 파타흐(פָתָה)입니다. 이 말은 "넓게 하다, 열다"라는 뜻을 가지는 말인데 파생되는 말 중에서 "속이다, 사기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해석하자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마음을 넓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 살게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속인 것도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전했더니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레미야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보다 강하시고 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예레미야가 하기 싫은데 하나님 눈치를 보면서 억지로 행했다기 보다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 아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데 그 결과가 종일토록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니 예레미야의 고통은 심히 컸습니다.
마음이 불붙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음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8절)"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의 키(כִּי)로 문장이 시작됩니다. 예레미야가 종일토록 조롱거리가 되는 이유는 그가 말할 때마다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임의로 하는 말이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말씀 때문에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전할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예레미야는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 하지만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이 뜨거워 골수까지 그 열기가 사무쳐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렇게 견딜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받은 말씀이 그의 속에서만 머물 수 없는 중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받은 말씀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가 받은 말씀은 그 말씀대로 재앙이 임할 때에 그중 몇몇이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는 말씀이기 때문이고 재앙 임할 것이 너무 명백하고 또 그 재앙이 임박해 있어서 가두어 둘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히 4:12). 이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습니다. 전해져야만 하는 그 말씀의 생명력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전한 저주가 자기에게 임하는 것 같은 상황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하여 말씀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방과 두려움이었습니다(10절). 여기서 "사방이 두려워함"이 나옵니다. 이 말은 3절에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에게 선포한 저주 "마골밋사빕"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바스훌에게 선포한 저주가 도리어 자기에게 임한 것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은 자들은 예레미야를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친한 벗들도 예레미야가 실족해서 넘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예레미야에게서 흠을 찾고 그것으로 그를 치고 이기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친한 벗은 원어로 보면 샬롬의 사람들입니다. 즉 예레미야와 서로 평안을 비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앞에서는 예레미야와 좋은 말로 교제하지만 뒤에서는 예레미야를 치고 조롱하고 그를 없이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는 사방으로 적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가 왜 이렇게 하나님께 한탄하고 있는지가 이해가 됩니다. 그는 저주와 재앙의 말을 선포하면서 그것이 도리어 자기에게 임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어떻게 보면 예레미야의 존재 자체가 듣는 자들에게 저주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11절)" 예레미야가 저주하므로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박해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돌아오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그 말 전하는 선지자를 박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더 큰 치욕이 임합니다. 예레미야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돌과 같이 됩니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12절)" 예레미야를 치는 자들은 하나님께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이 받는 저주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핍박합니다. 그 결과 그들의 죄에 더 큰 죄가 더해집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자를 핍박하고 박해한 죄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시편 118편 22절과 다니엘 2장 34-35절로 말씀하면서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들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거치는 돌과 부딪치는 반석이 되신다고 하였습니다(롬 9:33; 벧전 2:8). 이 말씀은 이사야 8장 14절과 28장 16절을 해석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실 것인데 이스라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시겠다고 하십니다(사 8:14). 그러시면서 여호와께서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으실 것인데 그것을 믿는 사람은 다급하게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사 28:16). 이렇게 보면 예레미야는 예수님께서 어떤 대접을 받으실 것인지, 그리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심지어 자기 생일을 저주합니다(14절).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합니다(18절). 자기 생일날에 즐겁게 자기가 태어난 소식을 전하는 자가 저주를 받았더라면 좋을 뻔하였다고 까지 합니다(15-16절). 이것은 그 사람을 까닭없이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날리 없는 일로 한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기가 어머니의 태에서 무사히 태어난 것이 한탄스럽기 때문입니다(17절). 17절에서 "그"는 하나님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예레미야의 출생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한 자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자기 아버지에게 출생소식을 전한 그가 자기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이 한탄스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럴 정도로 예레미야는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죄인에게 죄를 지적하고 그 죄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목이 곧은 백성들에게 그것을 전하는 것은 박해와 핍박 죽음을 각오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들로서 그 일을 감당하시다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죽임을 당하실 때 그들의 죄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무한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죄에 대한 진노를 당신님께 쏟으셨습니다. 그 모든 진노를 다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진노를 다 당하시고 죄인들이 살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모든 죄에서 돌이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죄로 인해서 저주를 받는 인생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지극한 복과 은혜를 누리는 인생을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구원을 받아 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모든 일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가장 크게 감사를 드리면서 특별히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사역을 고통스럽게 감당한 수많은 선지자들, 하나님의 종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에도 깊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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