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7. 07:09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5:13-20
찬송가 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천국 백성은 누구냐
예수님은 모든 약한 것과 질병을 고치심으로 천국을 임하게 하셨습니다(마 4:23). 그렇게 하시고 천국 백성이 어떻게 복이 있는 사람들인지 가르치셨습니다(마 5:1-12). 가르치실 때 왕으로 좌정하셔서 권위 있게 가르치셨습니다(마 5:1-2). 그 가르치심이 계속됩니다.
3인칭이 2인칭으로
오늘 말씀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5장 서두의 심령이 가난한 자, 온유한 자 등의 3인칭이 2인칭, "너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예수님께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온 불치병자들과 그 가족, 친지, 친구들이었습니다(마 4:23-25). 이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습니다(마 4:15-16).
흑암에서 나오는 것과 행함
이 흑암은 무엇이냐 할 때 이 말씀을 인용한 이사야의 예언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흑암입니다(사 8:16, 20).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심한 흑암으로 들어간다고 하면서 그런 백성에게 빛이 비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합니다(사 9:1-2). 그러면 이들이 그 흑암에서 어떻게 나오느냐를 생각할 때, 그들이 흑암에서 나오는 것은 육체적으로 온전해져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행함으로 나오게 됩니다(마 5:19).
배운 것은 실습해야
사람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뭔가를 배웠으면 그대로 해 봐야 그 배운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실습입니다. 용접을 배웠으면 용접기를 가지고 철판을 붙여보아야 합니다. 운전을 배웠으면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고 나가보아야 합니다.
운전실습
운전을 해 보신 분이라면 처음 운전할 때 얼마나 긴장되고 떨리고 무서웠는지 생생히 기억하실 겁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를 1분 1초마다 계속 생각하는 것입니다. 배운 이론을 계속 떠올리면서 차선변경은 어떻게 하는지, 오른쪽 차선변경과 왼쪽 차선변경이 어떻게 다른지, 우회전과 좌회전 중에서 무엇이 더 쉽게 느껴지는지를 온몸으로 체득합니다. 그렇게 체득하고 나면 다 똑같이 느껴지고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그때는 그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느껴집니다. 요리도 마찬가지고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봐야 아는가 모르는가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의를 행한다는 것
의를 행한다고 할 때 당시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입니다. 이들은 뒤에 보면 구제도 잘하고(6:2) 기도도 잘한 사람들(6:5)입니다. 구제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행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함은 계명들을 성취하는 행함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제와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상이라고 하심으로 그들의 의가 "자기 의"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계명들을 성취하는 의가 아니요 자기에게 돌아가는 의, 자기 의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의"와 "제자들의 의"
이 자기 의와 제자들의 의는 다릅니다. 제자들의 의는 어떤 의냐가 본문 17-18절에 나옵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셨다는 말은 가득채워서 충만하게 하심으로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말과 18절에 나오는 "이루리라"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충만하게 성취하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또한 천지가 없어지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성취되는 일이 연결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충만하게 성취하신 의
앞에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 요한에게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 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성취는 예수님의 세례, 즉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연관됩니다. 예수님의 누구신가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 이것이 구약 모든 말씀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이룬다고 할 때의 그 성취, 율법대로 살면 의롭다고 할 때의 그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생각하는대로 율법의 뜻이 이거다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수행하는 의가 아닙니다. 율법과 선지자가 말한 모든 것을 이루는 의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의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의가 바로 우리의 의입니다. 이 의는 받아서 누리는 것이지 나름대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취하신 의를 받아서 믿고 실제로 해보면서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가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경험하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선하신 분이신가를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이지 스스로 의를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 조목 하나하나를 따지는 것의 헛됨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 조항을 세세하게 구분해 놓고 각 조목들의 경중을 따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공경을 경하다고 하는 우를 범했습니다(막 7:11-13). 이것은 자기가 율법을 행하려고 하니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계명들 전체를 행하는 것은 그것들을 다 외우고 경중을 따져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결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음
다시 비유로 하자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자기 의는 운전을 하는데 우측 차선 변경은 어렵고 좌측 차선변경이 쉽우니 좌측차선 변경만 해라 가르치면서 자기들도 좌측차선 변경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좌측차선만 변경하면서 운전을 하면 목적지에 결코 다다를 수 없습니다. 운전을 한다면 운전 전부를 해야 하는 것이지 이것은 쉬우니까 하고 저것은 어려우니까 못하고 그렇게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건 운전이 아닙니다. 운전을 왜 합니까? 차를 가지고 목적지에 가려고 하는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이들이 하는 것은 운전이 아닙니다. 목적지에 못 가는 것이 어찌 운전입니까? 절대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운전을 하면서, 실제로는 운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운전 잘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입니다.
믿느냐 못 믿느냐의 문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율법 조목이 경하냐 중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지키기 쉽냐, 어렵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우측 차선변경이 쉽냐 어렵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거기로 가셨고 또 가라하시니 믿고 가는가 못 믿고 못 가는가의 문제입니다. 믿는 자는 갈 것이요 믿지 못하는 자는 못 갈 것입니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믿음
믿고 자꾸 우측차선 변경을 해 본 사람은 점점 믿음이 자라서 우측차선 변경뿐만 아니라 우회전이나 좁은 길 운전, 고속주행 등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운전을 체득합니다. 그렇게 점점 능숙해 집니다. 그렇게 믿고 가다보면 목적지에 당도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의 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성취하신 의를 믿음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경험하는 자는 이미 임한 천국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을 가르칩니다. 자기가 믿은 대로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쉬우니까 하고 저것은 어려우니까 하지 마라, 결코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19절).
소금과 빛
"너희"를 설명하다가 흑암에 앉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이 율법을 깨닫는 것과 연관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소금과 빛에 관한 말씀을 넘어갔습니다.
소금의 본질은 맛이요, 빛의 본질은 비치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은 어디를 가나 맛을 내고 빛을 비춥니다. 내는 맛과 비추는 빛은 착한 행실로 요약되는데(16절), 이 착한 행실의 기준이 바로 율법과 선지자이고(17절), 율법과 선지자가 전하는 계명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이루어집니다. 온 교회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하지 않고 예수님을 진정 믿고 따르기를 소망해 봅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성경 | 마태복음 5장 33-48절 | 믿음, 모든 의를 성취하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4) | 2023.01.29 |
---|---|
매일성경 | 마태복음 5장 21-32절 | 부하직원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안 되는 이유 (0) | 2023.01.28 |
매일성경 | 마태복음 5장 1-12절 | 천국, 가난함과 박해 받음 사이에서 누리는 행복 (0) | 2023.01.26 |
매일성경 | 마태복음 4장 1-25절, 학원 폭력 드라마를 보면서 예수님이 떠오르는 이유 (8) | 2023.01.25 |
매일성경 | 마태복음 3장 13절 - 4장 11절 | 예수님의 세례, 필요해서가 아니라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12) | 2023.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