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5장 1-12절 | 천국, 가난함과 박해 받음 사이에서 누리는 행복

2023. 1. 26. 07:02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5:1-12

    찬송가 427장 맘 가난한 사람


    누가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을 바라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 잘 믿고 죽어서 천국에 가야지,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 잘 믿어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천국이 어떤 천국이냐 하면 개념이 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가는 것도 맞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지금 당장 내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모태신앙이 아니라면 회심 체험을 하셨을 텐데, 회심했을 때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회심하면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것으로 보이면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천국이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할 때 누가 죽어서 천국에 가냐면 살면서도 천국에 사는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갑니다. 그러면 누가 살면서도 천국을 누리는 사람인가 의문이 드는데 예수님은 팔복의 말씀으로 누가 그런 사람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천국, 육체가 온전하게 됨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마 4:23). 천국이 임하면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가 할 때 먼저는 육체가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의 컨디션이 좋으면 그날은 뭔가 활기 있고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누릴 때 육체가 온전하면 거기에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육체로만 천국을 누리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야 또한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신 8:3)"는 말씀의 뜻입니다. 

    천국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사람의 본질에 따라서 예수님은 먼저 사람의 육체를 회복하셨고 그 다음으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도 상통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두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입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먼저는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임의로 먹으라고 하니까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문을 보면 반드시 먹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생명을 누리는 것이 먹는 것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먹는 것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고 또 먹음으로 생기는 힘과 에너지로 활동을 하면서 또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먹지 말라고 하신 나무의 이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사람이 생명을 누리는 것이 또한 먹지 않는 것에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누리는 생명은 선악을 아는 일과 연결되는 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헤아려 아는 것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가지 말씀, 먹으라와 먹지 말라를 가지고 깊이 생각해서 아, 하나님의 뜻은 나로 하여금 생명을 누리라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깨달아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로구나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에 사람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먹는 부분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으로, 그 결과 하나님을 앎으로 누리는 생명입니다. 

    천국을 맛보는 두 가지 방향

    예수님도 동일하게 먼저는 사람의 육체를 성하게 하심으로 천국을 맛보게 하시고 다음으로는 이제 5장 1절부터 말씀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아 알게 하심으로 천국을 맛보게 하십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먹는 것으로 생명을 누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말씀을 깨달음으로 생명을 얻고 천국을 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바로 깨닫고 그 맛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것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일이요 말씀의 전후좌우를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일입니다. 

    왕으로 좌정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먼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올라가 앉으셨다는 말은 왕이 보좌에 앉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게다가 산에 임하여 앉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여 온 천지가 울리도록 언약의 말씀을 엄중히 선포하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나아왔는데 이것은 왕 앞에 알현하는 신하의 모습이고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이냐,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왕으로 좌정하신 곳이 천국이라,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장면입니다(마 5:1).

    천국 복음을 가르쳐주시는 예수님

    그렇게 왕으로 좌정하셔서 말씀을 주시는데 그 말씀의 주제가 천국입니다. 산상수훈을 여는 여덟가지 복에 관한 말씀의 주제는 천국입니다. 이 복은 천국에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이 천국은 복과 연결됩니다. 누가 지극한 복을 받는 사람인가 할 때 천국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 이것을 가르쳐 줍니다. 

     

    천국, 가난함과 박해 받음 사이에 누리는 행복

    복의 핵심, 하나님을 알고 누리는 것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복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는 것인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복입니다.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아 누리는 복입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모인 무리의 면면을 보시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흑암에 앉았던 백성, 사망의 땅과 그 그늘에 앉았던 백성이 예수님을 따라서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을 왜 따라갔는가에 이들이 얼마나 빛에 갈급한 자들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육체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에게서 빛을 보고 빛을 따라간 사람들입니다. 육체의 회복에 만족하지 않고 영혼의 갈급함으로 영혼의 생명을 누리고 싶어서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이어서 나오는 대로 애통하는 자요 온유한 자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앞에 나오는 네 가지 복에 해당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맛보고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얻고 싶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 영혼의 갈증과 배고픔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를 바라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 복이 있는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부족을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네 가지 복도 하나님과 연결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도 복이요 하나님을 보는 것도 최고의 복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도 복입니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이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에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고결해지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팔복에 대한 잘못된 이해

    이 복을 잘못 이해해서 내가 도덕적으로 고결해지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리라 이렇게 이해하고 읽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리새인처럼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내가 복 받을 일을 하니까, 율법대로 사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인격적 관계가 아닙니다. 인격적 관계는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서 서로를 아는 관계이지 어떤 법칙이 지배하는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복 받을 일을 해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법칙을 그렇게 세워 놓으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누리는 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에 해가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받으셔야 하는 영광을 자기가 받고 앉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해받는 행복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역해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했습니다. 심지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라고 할 때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순결하다, 이런 차원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 교제를 갖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아는 의입니다. 

    모르는 게 약? 알아서 박해받는 것이 복!

    옛말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알아서 고통스러운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별히 의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의가 무엇인지 깨달으면 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서 마음 상하고 분하고 의롭지 못한 자들에게 당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의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그것보다 한 차원 더 깊은 의입니다. 이 의는 하나님을 깊이 아는 의라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의입니다. 교회가 세상에게 당하는 박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나라 안에서 생긴 일,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의를 알아, 즉 하나님을 깊이 알아 박해를 당하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박해를 당하는 것은 내가 하늘에서 상 받을 사람이구나, 천국에서 상급을 얻을 사람이구나 이것을 나타내는 일이므로 복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지금 천국 안에 있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행복을 새롭게 정의하시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께서 정의하신 대로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까? 그 행복은 먼저 육체적으로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데에서 옵니다.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의지해서 몸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면서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누리는 것이 또한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심지어 육체적 행복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행복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행복으로 고난도 행복으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행복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 즉 선악을 깨달음으로 육체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과 상통하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을 위해서는 오히려 육체적인 고난과 고통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모인 무리의 면면이 그러합니다. 

    혹시 현재 고난 당하고 있습니까?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의 관점에서 그것은 예비된 상을 위해서 받는 것이므로 행복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입니다. 그러한 즐거움을 항상 누리는 복된 하루로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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