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22장 15-22절 | 가이사에게 세금을, 시험한 자들이 오히려 놀라다.

2023. 3. 19. 08:39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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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마태복음 22:15-22

    찬송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의논한 바리새인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에서 처음에 청하였던 자들은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았습니다(마 21:45).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의논했습니다(15절). 비유를 듣고 회개한 것이 아니라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아들을 대적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헤롯 당원들과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이 의논한 결과는 헤롯 당원들과 합세하자는 것이었습니다(16절). 바리새인들은 민족주의자들로서 헤롯 당원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헤롯당은 헤롯 왕가를 지지하는 친로마 성향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유대교에 철저한 민족주의자들로서 민중의 지지를 받고 세력을 형성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친로마파 사람들을 싫어했고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세리를 멸시한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눅 18:11).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헤롯 당원들과 합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고발할 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올무를 놓으려는 칭찬

    바리새인들은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보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이 말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칭찬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띄워주는 것 같으나 올무에 걸리게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참되시니까 곧이곧대로 말하시오, 하는 것이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니 지금 헤롯 당원이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시오, 이런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말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입니다. 

    질문 안에 숨어있는 올무

    질문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에 대한 납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헤롯 당원들은 로마에 대한 납세를 반대하는 세력을 불순세력이라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 문제는 어느 쪽도 옳다고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세금 내는 것이 옳다고 하여 로마의 식민 통치를 정당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금을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해서 민중을 부추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의도한 것 이상으로 예수님께 시험이 됨

    이들은 단순하게 예수님을 민중을 돌아서게 하거나 아니면 당국에게 고발할 거리를 찾거나 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물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잡을 생각에 그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잡히실 예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잡히느냐 잡히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답을 잘해서 민중의 지지도 받고 로마에 고발도 안 당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무슨 일을 하러 오셨는가, 이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민중을 선동해서 그들을 세력 삼아서 왕국을 건설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마 1:21). 이런 의미에서 이들의 올무는 이들이 의도한 것 이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시험한 자들이 오히려 놀라다.

    예수님의 대답에 놀람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고 데나리온을 보시면서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이들이 놀란 이유

    단순히 올무에 걸리지 않았다는 차원에서 놀라운 말씀이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깊은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다 놀랍게 여겼다고 합니다(22절). 그만큼 이 말씀은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냐, 가이사에게 권세를 주신 분이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말씀에도 신적 권위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에도 큰 권위가 실렸습니다. 이들은 시험하러 왔다가 놀라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실 수 있는 권세

    당시 은전인 데나리온에 가이사의 형상과 가이사의 글이 들어가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이사를 그렇게 사용하신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하셔서 잠시 그 제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스스로 제도에 매이셨습니다. 그렇지만 권세가 없으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말씀에서 놀랍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외부적 환경이나 제도를 바꾸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람 속을 바꾸시기 위함입니다. 돌 같은 마음을 살 같은 마음으로 새 마음으로 바꾸시기 위함입니다. 죄에 매여서 살던 사람, 죽음에 매여서 살던 사람을 충만한 생명으로 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어떤 제도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참 생명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람 속을 바꾼다는 것과 교회의 위치

    사람 속을 바꾸는 것이 어렵지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것은 쉽습니다. 많은 교회들에서 정치적 문제로 사람의 마음이 나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냐 바치면 안 되냐로 싸웁니다. 각자의 생각은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하는 생각들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모든 것 위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이는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고 어떤 이는 옳지 않다고 할 것이지만 그 위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예수님의 몸으로 하나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옳습니다.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도 그 안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 위에 있는 교회입니다(엡 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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