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전반부, 믿는 사람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2023. 6. 10. 11:08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로마서 8:1-17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로마서 8장 전반부와 7장 후반부의 관계

로마서 7장 후반부에서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율법은 선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만 그 선을 행할 능력까지 주지는 않습니다. 율법으로 선이 무엇인지 알더라도 사람의 힘으로는 그 선한 것을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일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8장에서는 믿는 사람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는지를 말씀합니다. 

율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이 복음 안으로 들어감

율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7:25). 왜냐하면 아직 죽을 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몸의 지체 속에서 역사하는 법칙이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습니다(7:23). 그렇기 때문에 이 몸은 사망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 자신이 곤고한 사람인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7:24).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복음이 들려옵니다. 그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7:25 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

이것이 왜 복음이냐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1절). 죽을 몸 안에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 싶으나 행할 수 없고 도리어 죄만 범하는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죄를 짓고 싶지 않으나 죄를 범하고 죄를 범하는 자신을 보며 그럴 때마다 가슴 깊이 아파하는 상태가 바로 이 곤고한 상태입니다. 이 곤고한 상태는 나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노예의 상태입니다. 사람이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할 때에는 이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복음이 들려옵니다. 죄를 아무리 지어도 그것으로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복음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정죄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를 지으려고 하지 않음을 이미 설명함(롬 6, 7장)

사도 바울은 논지를 전개하면서 한 가지를 확실히 했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는 은혜를 더하게 한다면서 또는 정죄가 없기 때문에 나는 더 죄를 짓겠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6장, 7장에서 길게 설명했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해서 죄를 짓고 싶지 않지만 죄를 짓는 자기를 보면서 정죄감에 아파하는데 복음이 들려옵니다. 그것은 그 죄에 대해서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는 복음입니다. 모든 정죄를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정죄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했다는 것을 믿음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한 결과입니다(2절). 앞에 7장 6절에서 영의 새로운 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은 죄와 사망의 법과 연결됩니다. 즉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영의 새로운 것, 즉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만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받았다는 것은 계속 이야기한 대로 영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뜻입니다. 아직 죽을 몸 안에 있지만 그 죽을 몸이 나를 영원히 죽게 만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영적으로는 새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할 것이 없음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3절 이하에 나옵니다. 율법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즉 율법에 있는 요구는 육신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7장 후반부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하느냐, 바로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어떻게 하셨냐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서 육신에 죄를 정하셨습니다. 즉 아들을 정죄하셨습니다. 여기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라는 말은 예수님께 죄가 있으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했듯이 몸이 죽을 몸이라는 뜻입니다. 죄가 육신 안에서 역사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는 죄가 없으셨지만 예수님은 몸을 입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의 몸을 정죄하셨습니다. 이 몸에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 지우고 거기에 무한한 진노를 쏟으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할 것이 남지 않게 하셨습니다. 

영을 따라 행하는 것

앞에서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났음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주장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영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의 반대는 율법의 문자를 보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죄를 피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 마라, 또는 행하라, 이런 명령을 행할 때에 그 명령을 행하지 않을 때 받는 보응을 피하려고 그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 받는 보응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은 그 동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영을 따라 행합니다. 

 

로마서 8장 전반부, 믿는 사람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아이가 아빠를 기쁘게 하려고 할 때

마치 예닐곱 살 짜리 아이가 아빠를 사랑해서 아빠를 기쁘게 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빠를 위해서 요리를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요리를 준비하면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집안 곳곳에 기름이 튀고 여러 식재료가 바닥에 떨어지고 김치 국물이 사방에 묻습니다. 아이가 가만히 있었다면 아빠가 좀 편했을 것인데 아이가 아빠를 사랑한다고 한 일이 아빠에게는 훨씬 많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아빠를 기쁘게 하겠다는 마음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리를 완성해서 아빠에게 가져왔습니다. 좋은 아빠는 그 요리를 해 온 아이의 마음과 그 행동을 칭찬합니다. 아이가 주방과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혼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할 때

마치 이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면서 이것 저것 시도하고 행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완벽하게 율법에 딱 맞지 않습니다. 분명히 정죄 받을 일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죄 받을 일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가 다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죄는 예수 그리스도께 쏟아졌습니다. 그 어떤 것을 망쳐도 아무 것도 망하지 않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더 나아가고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죄를 지으려고 하면서 일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닐곱 어린이가 아빠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만들 때 의도적으로 집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연약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정죄 받을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생각

생각도 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죄다, 저렇게 하면 죄다, 이런 것에 머물러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자꾸 죄를 생각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죄에 머무는 것입니다. 영의 생각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이것도 해봐야겠다, 저것도 해봐야겠다, 이렇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결국 믿음이 성장합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를 경험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깊어집니다.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줄 믿음

아이가 아빠를 기쁘시게 한다고 무엇을 만드는데 아, 이렇게 집안을 어지러 놓으면 혼나겠다 하면서 아빠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 집의 종이라면 그것을 무서워할 것입니다(15절 상).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즉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15절 하). 그러니까 무엇을 할 때 당차게 시도할 수 있습니다. 당차게 시도할 수 있는 동력은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 받지 않는다는 복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을 따라 행할 수 있고 또 죽을 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10절). 영이 살아 있다는 것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우리 죽을 몸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처럼 살아난다는 뜻입니다(11절). 이것도 복음입니다. 

죽을 몸이지만 영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몸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은 더이상 죽을 몸이 아니라 영을 따르는 몸이고 여러 가지를 망치기도 하지만 오히려 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몸입니다. 이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치는데 그런 어려움도 능히 통과할 수 있는 몸이 바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몸인 것입니다.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고 그것을 기뻐하는 몸입니다(17절). 이것이 영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 8장 후반부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우리 몸의 부활을 고대한다는 논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