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2장 13-23절 | 마태의 구약 인용, 예수님은 어떤 구원자인가?

2023. 1. 22. 08:29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2:13-23

    찬송가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


    창세기의 요셉과 마리아의 남편 요셉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처럼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 꿈에서 이르신 것을 깨닫고 대로 즉시 행동합니다. 14절에 보면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애굽에서 보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포괄하는데 그렇게 보면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한 것과 같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예수님을 애굽에서 보호합니다. 그러다가 헤롯이 죽은 후 또 꿈을 꾸고 꿈에 지시하신 대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데리고 올 때도 꿈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았습니다(마 1:20). 이렇게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처럼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데 그 역사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할 때 여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 밝히 드러내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 마태에 의해서 드러납니다. 창세기의 요셉도 예수님을 밝히 드러내는 사람이요, 이스라엘이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간 것도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누구냐할 때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되는 분이십니다. 

    꿈에 대하여

    꿈에 대해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꿈으로 역사하실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물론 지금도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시려고 하실 때에는 비상한을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호세아 11장 1절의 인용

    예수님께서 하나님 백성과 동일시 되는 것은 호세아 11장 1절의 인용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호세아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기 어렸을 때라는 말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겹칩니다. 이어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가 나오는데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인 것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신 예수님 안에 그 의미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시는가도 나타납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예수님을 가리키는 역사임도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피신 간 것과 거기에서 나온 것이 장차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를 모형으로 보여줍니다. 

    더 깊이 생각해보자면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계속 반역을 저질렀지만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반역자가 받는 고통을 그대로 당하십니다. 호세아 11장 2절에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이렇게 반역하였고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 당하고 마는데(호 11:5)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자기 백성과 동일한 자리로 오셔서 죄로 인해서 상하는 자리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예레미야 31장 15절의 인용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어린 아이를 두 살 아래로 다 죽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바베론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마 1:12). 그들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실 것인데 마태는 그것을 예레미야 31장 15절을 인용해서 말씀합니다(마 2:18).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는 인용으로 슬픔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레미야 31장은 회복을 말씀하는 장으로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이렇게 나옵니다(렘 31:16). 그리고 이어져서 31장 31-34절에 새언약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상태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정치적인 구원이 아니요 사람의 속을 고치는 구원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태는 예레미야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실 것을 바라봅니다.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마지막으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마 2:23). 이 말씀도 깊습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여기서 선지자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선지자 한 명이 아니라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예언하였냐면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이것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나사렛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사렛이라는 동네가 가지는 초라함이고 다른 하나는 나사렛의 어원 네체르의 뜻인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선지자들은 여러군데에서 장차 임할 메시아가 고운 모양도 없고 흠모할만 하지도 않다고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시 22편; 69편; 사 53장; 요 1:26).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입니다. 또한 나사렛은 "가지"라는 의미도 있는데 그것은 이사야 11장 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기서 싹이 네체르입니다. 그런데 이 싹은 어떤 싹이냐 이사야 11장을 쭉 읽어보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해서 이 땅에 천국을 임하게 할 싹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장에서 무너진 다윗 왕조에 예수님께서 그루터기로부터 나온 싹과 같이 등장함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나사렛 사람으로서 싹으로, 네체르 즉 가지로 등장하셔서 세상에 천국을 임하게 하실 분이라, 이런 뜻이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이 의미는 이제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이 외치는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글이 좀 어려울 수 있으나 여러 번 읽으시면서 마태가 구약을 어떤식으로 인용했는지 깊은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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