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누가복음 19장 28-48절 |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2025. 5. 19. 09:47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목차


    누가복음 19:28-48

    찬송가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예루살렘으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십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길은 당장 왕권을 차지하러 가시는 길이 아니고(19:11) 고난 당하시고 죽임 당하시기 위한 길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통과하셔서 지금 왕으로 좌정해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시기 위해서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하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승천하시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다만 이 다스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스림입니다. 믿음으로 그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19:27). 

    앞서서 가심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나서 예루살렘을 향해 앞장서서 가셨습니다(28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맡으신 일은 실로 무한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 길을 가실 때 앞서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열정을 다해 수행하셨습니다. 당신님의 백성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나귀 새끼를 친히 선택하시고 제자들에게 끌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30절). 그 나귀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으셨지만 그 나귀 새끼를 아무도 타지 않았던 것을 아셨고 어디에 있는지도 아셨습니다. 또한 그 주인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기꺼이 내주도록 하셨습니다(31, 33, 34절).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피조 세계가 함께 동참하고 받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길은 당시에는 그 의미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길이었지만 그 길에도 순종하는 나귀와 그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 나귀는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로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예비된 나귀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쓰이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쓰여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거룩하게 구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만을 위한 나귀가 예비되어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타셨습니다. 

    공의와 구원

    제자들은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웠습니다(35절). 그렇게 하고 예수님의 앞 길에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습니다(36절). 겉옷을 길에 깔았다는 것은 복종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공경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왕이 나귀 새끼를 탔다는 것은 평화를 선포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스가랴 9장 9절의 성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고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슥 9: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공의를 이루시고 동시에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선포하시기 위함입니다(슥 9:10). 

     

    하늘에는 평화요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입니다(38절). 이렇게 찬송한 무리는 그 일을 십자가로 이루실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난 일을 보고 그렇게 찬양했습니다(37절).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죄와 사망 세력을 멸하시는 일입니다. 죄와 사망 세력을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멸하셨습니다. 

    온 우주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는 일

    바리새인들은 무리의 이런 찬양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39절).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열렬히 소망했지만 동시에 현상을 유지하기 원했습니다. 백성들에게 경건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고 존경을 받으면서 동시에 하나님께도 의롭다는 느낌으로 사는 그 생활이 좋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로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너무 위험해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뭔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라는 바리새인들의 요청에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라고 답하셨습니다(40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그만큼 전우주적으로, 온 피조세계에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온 우주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는 한 주의 시작이 바로 그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셔서 그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41절). 깊이 슬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슬픔은 예루살렘이 심판을 당하는 것에 대한 슬픔이었습니다(44절). 우리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멸망 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런 악한 예루살렘이 심판을 당하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 성읍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시고 악인이 멸망당하는 것은 슬퍼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긍휼에 풍성하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당시 성전 안에는 제물을 파는 사람들과 로마의 돈을 성전에서 쓰이는 세겔로 바꿔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폭리를 취했습니다. 칼만 안 들었지 마치 강도와 같았습니다(46절). 그런 성전을 예수님께서는 정결하게 하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누구든지 나아와서 하나님께 자기 사정을 아뢰는 곳인데 돈이나 제물이 없으면 가기 어려운 장소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것은 장차 이 성전이 폐하여질 것을 알리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성전에서 기도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제위로 그 기능이 없어졌습니다. 그 결과 폐하여졌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때 성전도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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