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21장 17-36절 |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를 성실하게 수행한 바울과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

2024. 6. 17. 20: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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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도행전 21:17-36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예고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예고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20:23; 21:11). 바울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21:12). 그렇지만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20:22). 그는 환난 당할 것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죽을 것도 준비했습니다(21:13).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난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환난을 미리 예고하시는 것은 그 길을 마음으로 준비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마음을 단단히 준비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17절).

    복음의 내용이 일치함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바울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났습니다(18절). 만나서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나누었습니다(19절). 누가는 "낱낱이 말하니"라고 하여 바울이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하게 보고했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상세하게 보고한 것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0절 상).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15쪽). 

     

    이것[이방 전도(복음)사역에 대하여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을 보면 그들의 생각이 바울의 복음 내용과 일치하였던 것이 명백하다. 바울은 그들에게서 배운 바 없었고, 다만 계시에 의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알게 되었는데(갈 1:16), 그것이 그들의 복음과 일치하였다(갈 2:6-8). 이 사실은 원사도들(예루살렘의 사도들- 예수님의 생전에 부름받은 사도들)에게 역사하신 성령께서 바울에게 역사하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따라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진리는 하나 뿐인 사실도 우리에게 알려진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낱낱이 나눌 때 두 가지 면에서 교회에 유익이 됩니다. 하나는 복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가운데에서도 자기들에게 일하신 것과 같이 일하신다는 것을 예루살렘 교회는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이 천하 만민을 위한 것임을 재차 상기시켰을 것입니다. 게다가 에베소에서 한 도시가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방을 복음으로 정복하시는지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을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면은 위에 박윤선 목사님이 지적한 대로 복음의 내용이 일치함을 확인하는 유익입니다. 교회는 한 성령 안에 있습니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엡 4:4-6). 이것을 확인하면서 교회는 서로를 용납하고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수 있습니다(엡 4:2-3). 그러므로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교회들마다 각자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서로 낱낱이 보고하는 것은 유익이 있는 일입니다.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

    교회가 서로의 일을 낱낱이 고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20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 중에 믿는 사람이 수만 명이 있고 그들은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20절). 그들은 구약의 의식법이 몸에 베어 있고 동시에 시민법에 속해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거기에 사는 유대인들과 갈등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방의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한 오도된 소문을 퍼뜨렸고 그것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까지 퍼졌습니다. 유대인 사회는 넓으면서도 상당히 좁았을 것입니다. 지역적으로는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었지만 혈연과 절기로 상당히 가깝게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 좁은 사회에서 바울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유대인 신자들에게 퍼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오도된 소식을 계속 접한 것입니다(21절). 

     

    이렇게 교회의 차이는 서로 오해하는 것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이방인들을 믿게 하시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동시에 유대인들의 대적과 박해를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전하다 보니까 유대인들이 그렇게 오해할 만한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서원한 사람들의 머리 깎는 의식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야고보를 위시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받는 오해를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풀 방안을 제시합니다(23-24절). 그 방안은 바울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유대인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서원한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23절). 이 서원은 민수기 6장에 나오는 나실인 서원입니다. 이 서원은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으로 일정 기간 술을 마시지 않고 시체와 접촉하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는 서원입니다(민 6:4-6). 이 서원이 끝나면 머리털을 깎아서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서 태웠습니다(민 6:18).

    큰 비용이 드는 일

    그런데 이 서원을 행하려면 큰 비용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이 서원이 무효가 된다면 속죄제물과 번제물로 쓰일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민 6:10-11), 속건제물로 쓰일 일년 된 숫양 한 마리(민 6:12)를 드려야 했습니다. 또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번제물로 쓰일 일 년 된 숫양 한 마리, 속죄제물로 일 년 된 어린 암양 한 마리, 화목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드려야 했습니다(민 6:14). 무교병과 무교전병들과 전제물도 드려야 했습니다(민 6:15).

     

    박윤선 목사님은 그 서원한 사람들의 머리 깎는 비용을 담당하는 자도 그들의 서원 행위를 찬성하는 자로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요세푸스를 인용합니다. 요세푸스 사기에 의하면 아그립바 왕이 이런 서원자들의 머리 깎는 비용을 도와준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네 사람의 서원자들의 비용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 교회는 흉년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원자들의 머리 깎는 의식에 드는 비용을 도와주어야 했을 것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16쪽).

    이방인들에게는

    바울이 그런 비용을 내면서 네 사람의 머리를 깎게 하면 모든 사람이 바울도 율법을 행하는 줄로 인정할 것입니다(24절).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는 이미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기 때문입니다(25절). 이방인들은 율법을 다 지켜 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교회는 이미 결의한 것입니다. 

    권면에 순종한 바울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권면대로 바울은 그 네 사람을 데리고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26절 상).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서원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했습니다(26절 하). 바울은 교회의 지도에 성실하게 따랐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 군중들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머리 깎는 의식의 기간이 거의 다 찼을 무렵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박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27절). 그들은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붙잡았습니다(27절 하). 그러면서 바울이 하지도 않은 일로 그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들이 뒤집어 씌운 죄는 바울이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28절). 물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한 정황이 있었습니다(29절). 그들은 시내에서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러비모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바울이 그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온 성이 소동했습니다. 그들은 무턱대고 바울을 잡아서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서 죽이려고 했습니다(30-31절).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행동 습성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17쪽). 

    성전을 신성시하는 것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성전을 그렇게 신성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과 그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미 이방인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를 성전 삼으시고 성령님께서 그 안에 좌정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을 신성시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대와 맞지 않는 종교적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후 70년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온 세상에 그것을 공식적으로 알리셨습니다. 지금 성전 터에는 이슬람 사원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곳에 더이상 의미를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루살렘 성전 산에 있는 이슬람 사원

    로마 군인에게 잡힌 결과

    유대인들은 바울을 때려서 죽이려고 했습니다(31-32절). 바울이 무차별적으로 맞고 있을 때 천부장이 군인들과 달려 내려갔습니다. 그 덕분에 바울은 살았습니다(32절 하). 무리는 분노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것이 36절에 나옵니다. 바울이 로마 군사들에게 들려가는 것(35절)을 보면서도 무리는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면서 따라갔습니다. 그만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천부장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바울은 죽었을 것입니다. 로마 군대의 개입으로 바울이 두 쇠사슬에 묶인 것은(33절) 그의 생명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을 막으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417쪽). 바울이 영내로 잡혀 들어간 것(34절 하)은 오히려 보호 받기 위해서 안전한 곳에 옮겨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

    예루살렘 교회는 사람의 방법으로 유대인 신자들이 바울에게 가진 오해를 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바울의 목숨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의도는 선했지만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로마 군병에게 잡혀서 두 개의 쇠사슬로 묶인 것은 악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바울을 잡아들인 천부장에게는 그 어떤 선한 의도도 없었습니다. 그저 소요가 날 것 같으니까 그것을 그치게 하고자 바울을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선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은 바울을 보호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부활을 전하고 이어서 로마로 가서 가이사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변하게 하셔서 선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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